자세히보기 2011년 11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짧은 혀 때문에 긴 목 날아가?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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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30

 짧은 혀 때문에 긴 목 날아가?

 

북한에 있을 때 가장 싫은 것 중의 하나가 지식인들의 위선이었다. 수령과 노동당에 대한 충실성, 주체사상 등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에 대한 신념이 누구보다 확고한 것처럼 보이려 했다.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행위였다. 입으로는 충성심과 이념을 외웠지만 속으로는 북한체제의 한계점과 변화의 필요성을 일반 주민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겉과 속 다른 남북 지식인

물론 일반 주민들의 경우에도 현실에 대한 불만을 숨기고 겉으로는 자기를 충성분자로 포장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들의 불만은 원리적으로 인식된 것이라기보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단순한 것이었다. 북한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만한 것은 아직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식량공급이나 재개되고 경제적 조건만 조금 개선시켜 준다면 얼마든지 진짜 충성분자로 되돌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인의 경우에는 다르다. 지식인이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 판단되면 바로 손보려 한다. 때문에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살아남는 문제로 여길 수밖에 없다. 이해는 되었다. 그런데 적당한 정도면 좋겠는데 지나친 사람이 더 많아 미웠다.

필자의 친척가운데는 대단한 공산주의 이론가처럼 행세하는 분이 한 명 있었다. 그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때가 많았는데 참 피곤했다. 필자의 말을 사사건건 꼬집으며 “당성”, “혁명성”, “사회주의 승리의 필연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노동당이 선전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그래서 필자는 일부러 삐딱한 대답을 했고 사회주의가 왜 역사의 오류가 되었는지, 다른 공산국가들보다 북한체제가 어떤 측면이 더 나쁜지를 역설하며 맞섰다.

나는 그가 친척사이에도 속에 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싫어 일부러 더 심술을 부렸다. 그리고 가까운 친척이므로 고발당할 일도 없었다. 내가 탄압받으면 둘 다 무사치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북한의 연좌제가 아이러니하게 내 입을 돕고 있는 격이었다. 그는 박식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고 현실감각이 매우 예리했다.

그런 그가 나와 같은 생각을 속에 품지 않았을 수 없었다. 어쩌다 술이 지나치면 “너만 똑똑한 척 말아. 속 터지는 사람 너뿐인 줄 아는가본데,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걸 명심해, 공부하려면 좀 제대로 했어야지. 왜 그렇게 우둔하냐.”고 핀잔했다. 그리고 가끔 나타나곤 하던 두 명의 절친한 친구가 찾아오면 집필실 삼아 쓰는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온 밤 지냈는데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런 일이 있은 후면 꼭 그 입에서 새로운 ‘뉴스’가 흘러나왔다. 참으로 살 줄 알았다. 거기에 대면 필자는 풋내기 글쟁이에 불과했다. 겉과 속이 다르게 살 줄 아는 능력이 없으면 도대체 지식인답지 않은 것이 북한이었다.

지식인이 눈치보면 그야말로 ‘식자우환’

남한에 올 때 남쪽의 지식인들만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기소신대로 솔직하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동안 살고 보니 남쪽도 문제가 많다. 북에서는 지식인들이 탄압이 두려워 거짓말로 살더니 남쪽에선 자기입지와 기득권 같은 것을 지키려고 속마음과 다른 소리를 한다. 한쪽에선 자유가 없어 거짓말하고 다른 한쪽에선 너무 자유로워 겉과 속이 다른 소리를 한다.

이해관계만 맞으면 식자의 입장에서 옳지 않은 일도 옳다고 주장하고 입지가 흔들릴 것 같으면 반대를 위한 반대도 서슴지 않는다. 실례로 어느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임이 확실시 되어도 거기에 박수를 치고 맞장구를 친 적이 있는 학자들은 속으로는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소신을 밝히는 경우도 신중한 이미지를 보이려고 그러는지 “그렇다.”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라고 표현하기 좋아한다. 그게 무난하니까.

지식인의 자존심도 자존심이겠지만 스스로 실책을 인정하면 밤을 밝혀 연구하고 집필한 모든 것이 제로가 되고 거취가 걱정인 것 같다. 정책과 관련한 모든 문제들에서 그런 경향을 보게 된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 해도 반대가 필요하면 반대하는 글을 쓰고 연설을 한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아는 상식적 문제도 지식이라는 영역에 올려놓기만 하면 이상한 논리와 결론이 추론된다. 상식과 지식이 충돌하고 있다.

어떤 이에게 공부깨나 한 사람들이 왜 그러는 가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가관이었다. “요즘은 정부정책에 박수를 보내거나 찬성하면 무식하고 꼴통이라는 말을 듣기 쉽다. 비판과 반대를 잘해야 지식이 있어 보이는 추세다. 그러니 아무리 박수치고 찬성하고 싶더라도 속에 묻어두고 기회를 보아 해야지 잘못 나섰다가 무식한 학자가 되면 수강생이 다 떠나버려.”

도대체 왜 그럴까. 답답하다. 지성의 등불을 켜야 할 지식인이 눈치를 보며 소신을 숨겨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식자우환”이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은 북에서도 거짓말, 남에서도 거짓말이다. 이제 통일이 된다면 남북의 지식인들은 어떤 거짓말의 통일을 이룰지, 그 모양이 궁금하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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