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12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신나는 겨울방학! 어떻게 보낼까? 2015년 12월호

print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36

신나는 겨울방학! 어떻게 보낼까?

북한 학생들의 겨울방학은 보통 한 달이다. 소학교는 12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이고, 초급중학교는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고급중학교는 1월 한 달이다. 그러나 대부분 중학교들이 연말의 명절 분위기로 12월 27일 정도면 방학에 들어간다.

겨울방학이면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방학숙제가 주어진다. 방학숙제는 과목별로 제시되는데 혁명, 수학, 외국어, 물리, 화학 등 기본과목은 어김없이 방학숙제가 있고 학년에 따라, 과목 선생님에 따라 그 양도 천차만별이다. 최근 북한 교육당국도 방학숙제를 과도하게 내지 말라고 지시를 내려 적어지긴 했지만 과목별 숙제를 다 하다보면 아이들의 놀 시간은 늘 부족하다.

쌓인 눈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하는 북한 아이들

쌓인 눈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하는 북한 아이들

북에만 있는 방학숙제?

어려서부터 조직적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북한의 학교규율은 방학에도 여전히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주 1회씩 학교에 나가 방학숙제 수행정형 검열을 마쳐야 하고, 조직별 생활총화를 해야 하며, 꼬마계획과제를 바쳐야 하는 등 바쁜 하루를 보낸다. 또 한 가지 북한에만 있을 만한 과제는 새벽 동상관리이다. 인근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가서 동상을 깨끗이 관리해야 한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 방학이니 만큼 이불 속에서 좀 더 푹 잤으면 좋겠지만 날이 밝기 전에 관리에 나서야 한다. 만약 나가지 않으면 단순히 성실하지 못하다고 꾸지람을 듣는 수준이 아니라, 정치조직에 의해 충실성을 의심받게 된다.

물론 북한 아이들도 놀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적 낙후성이 아이들의 놀이에도 반영되어 도시 아이들조차 마음껏 놀기 어렵다. 한국 아이들은 썰매장, 스키장, 얼음축제 등 겨울을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곳곳에 있지만 북한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아이스링크 하나 없다. 간혹 평양의 빙상관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빙상관은 이용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북한에는 국가대표를 배출하는 중앙체육단과 지방체육단이 있는데 빙상관은 중앙체육단도 이용하기 힘들다. 한 지방체육단 지인은 대관일정에 밀려 주 2회, 빙상 질이 제일 나쁜 시간대에 2시간을 사용했는데 그것도 빙상관 직원들에게 고급담배 10갑 정도를 뇌물로 바쳐야 가능했다.

농촌지역 아이들은 그나마 놀 것이 많다. 눈이 많이 오고, 산이 많고, 비탈이 많은 북한의 자연조건이 그대로 아이들의 놀이터이기 때문에 썰매를 타고 논다. 지방 아이들은 강이나 개천 가까이에서 외발기(날이 하나인 썰매)를 타고, 논에 물을 부어 얼음판을 만들어 썰매를 탄다. 수십 년 전 한국에서 있었던 시골 겨울풍경과 같다고 보면 된다.

내가 살던 양강도는 워낙 눈이 많이 오다보니 도로 양 옆은 늘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압록강이 얼면 아이들은 높은 곳에서 도로를 따라 외발기를 탔다. 워낙 위험하다 보니 겨울철이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익사, 교통사고 등 매년 사고가 반복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었다. 기껏해야 도로에 연탄재를 뿌리거나 아이들이 강에 나오지 못하게 단속하는 게 전부였다.

이 외에도 고학년 학생들은 외국영화나 한국 드라마를 몰래 보기도 한다. 또 남학생들은 집에 모여 주패(카드) 놀이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북한에도 치맛바람이 불어 잘 사는 집 아이들은 방학 동안 특별과외를 받는다. 영어, 수학 같은 과목을 받는가 하면 아코디언이나 기타, 성악과 같은 음악 레슨을 받는 등 엄마들의 극성이 아이들의 방학을 침범하는 건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우리처럼 불 밝은 학원에서가 아니라 가정집에서, 그마저도 잦은 정전으로 여건이 바쳐주지 않은 상태로 공부를 한다. 촛불의 빛만큼 엄마들의 자존심도 함께 커진다.

겨울철 다양한 문화축제들에서 부모님의 손목을 잡고 썰매타기, 눈꽃구경, 얼음축제, 낚시체험장에서 깔깔대는 아이들,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미래의 김연아들, 방학에도 기계적으로 학원순례를 이어가는 아이들, 경제적 여건에 따라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는 아이들, 어떠한 모습이든 좋다. 즐겁고 부러워 보이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지만 남과 북의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알찬 겨울방학을 보내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