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12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크리스마스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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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77

크리스마스가 뭐야?

남한에선 세 살 난 애도 다 아는 크리스마스란 말을 북한에서 중학생 시절에 처음 들었다. 당시 20부로 된 탐정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이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었다. 6·25전쟁 때 남한에서 활약한 북한 탐정 조직을 그린 내용이었는데 거기서 ‘크리스마스’,

‘성탄절’, ‘부활절’과 같은 기독교 용어가 등장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 저쪽엔 그런 명절이 있나보네.”하고 생각했다. ‘유다’란 말도 거기서 듣고 ‘유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어림짐작으로 감을 잡고 배신하는 친구를 보면 “유다 같은 놈”이라고 욕하곤 했다.

징글벨연주했다가 문초 당한 선전대원

그 영화에 나오는 고급식당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려 국군 장교들과 미군 장교들, 기자들과 정객들이 식당에서 서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 왠지 멋져보였다. 또 트럼펫으로 연주되는 ‘징글벨’ 음악이 정말 신나고 경쾌했다. 그 곡에 반한 예술선전대의 한 연주자가 대낮에 연습실에서 트럼펫으로 ‘징글벨’을 냅다 불어댄 일도 있다. 그런데 창문까지 열어놓은 채 신나게 불어대는 그 소리를 당 비서가 들었다. 무사히 넘어갈리 없었다. 당장에 불려가 문초를 당했다.

‘무슨 목적으로, 누구의 사주로, 왜 대낮에 그것도 창문을 버젓이 열어놓고 불어댔는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배우들은 누구며 제지할 대신 왜 보고만 있었나’ 등 아예 뿌리를 뽑는다며 난리를 쳤다. 젊은 연주자는 그저 곡이 좋아 불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다른 의도는 없었다. 실은 당 비서 본인도 그 곡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다만 영화에서 나오는 적들의 음악을 다른 사람도 아닌 선전대 배우가 불다니 그냥 뒀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난리를 친 것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보천보전자악단 인민배우 전혜영이 ‘징글벨’을 청아한 목청으로 신나게 부르는 장면을 선보였고 음반도 나왔다. 한때 ‘징글벨’ 때문에 혼났던 연주자가 그 음반을 만지며 느낀 감정이 어땠을까.

나는 중학생 시절 크리스마스를 처음 영화에서 접해본 후론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거둘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종교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이므로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를 만났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같은 호실 환자 중에 다른 학교 역사 선생님이 있었다. 중국에서 대학교를 나왔고 문화대혁명에 의한 핍박을 피해 북한으로 귀국한 분이었다. 그때 역사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 번은 문득 “너는 역사를 배울 때 기원전 몇 년, 기원후 몇 년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하고 물으셨다. 그때까지 나는 기원전, 기원후가 무슨 말인지 모르고 역사 수업을 받았다. 나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같았다. 어느 선생님도 그것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냥 기원전은 거꾸로 숫자가 많아질수록 더 먼 옛날이 되고 기원후는 숫자가 많아질수록 현재와 가깝다는 의미라고만 배웠다. 그런데 정작 질문을 받고 나니 그것이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나에게 다른 데 가서 얘기해 줄 필요는 없고 그냥 들어만 두라면서 이런 내용을 알려주었다.

“기원전, 기원후는 예수라는 존재가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역사를 나눈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땅에서 태어났다. 그게 약 2000년 전 12월 25일, 즉 크리스마스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뜻에 의해 새 역사가 기원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 이전을 기원전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를 다른 말로 성탄절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지금 쓰는 달력은 그 때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가 다 같다.”

하나님의 아들? 새 역사의 기원? 이건 무슨 의미지? 처음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이 컸다. 김일성이 가장 위대하고 그의 뜻에 따라 역사가 전진하는 줄 알았는데 세계는 왜 아득한 옛적 예수가 태어난 날을 명절로 삼아 기념하는지 의아했다. 하나님, 예수,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가.

종교탄압, 신앙의 맹아까지 제거할 순 없어

하지만 그 선생님은 그 이상의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다만 미신과 비슷한 허황한 얘기인데 옛날에는 과학이 낙후했던 관계로 그런 일이 마치 진짜처럼 전해지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관습이라고 보면 된다고, 우리가 죽은 조상이 먹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로 인해 말이 퍼질 경우 입게 될 후과를 모면할 의도였던 것 같다.

남한에 와서 기독교인이 된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그 역사 선생님이 기독교에 대해 알만큼 아는 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문화대혁명을 피해 북한에 넘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 나는 종교 관련 부분이 북한 책과 영화 등에도 은연 중에 사소하고 와전된 형태로나마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곤 했고 몰래 듣던 남한 방송에서도 종교 이야기를 간혹 접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때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북한 당국의 종교 탄압이 아무리 극심해도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신앙의 맹아까지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내 경험을 봐서도 그렇고 북한 내부에 지하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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