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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사령관 뜯어먹기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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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58

사령관 뜯어먹기

인민군 호위국 출신인 김 씨와 마주 앉아 술 한 잔 기울이는데 식당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북한 이을설 원수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당년 94세 1921년생,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뉴스에 나는 ‘살만큼 살았네’ 하는데 김 씨가 옆에서 ‘저 사람, 괜찮은 영감이었는데…’ 한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1년 여름 당시 호위국사령관이었던 이을설은 전투준비가 완성된 부대를 찾고 있었다. 최고사령관인 김정일에게 산하 부대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어느 날 호위국 산하 부대인 427여단을 찾았다고 했다. 여단장 장석철의 우렁찬 영접 보고를 받고나서 부대 내 여러 장비들과 병사들의 정신상태를 둘러보고선 이을설은 “좋아, 됐어. 이만하면 이 부대에 장군님을 모실 수 있겠어.”하며 아주 만족해했다고 한다.

이 아바이, 수준 있는데?”

이을설은 돌아가는 길에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해서 길가의 호수에 차를 멈추게 했다. 1930년대 중반 열네 살 때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있으면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왜놈과 싸울 구상을 했다는 김일성을 옆에서 보며 이후부터 낚시를 즐기게 됐다고 하는데 그날도 이을설은 호수수면에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을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호위원들은 멀찌감치 물러나 나름 산촌의 호수가 지닌 자연풍광을 즐기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꾀죄죄한 군인 하나가 영감님 앞에 나타났다. 사복 차림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이을설은 영국산 로얄 담배를 입에 문 채 이미 낚시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아바이(할아버지), 입질 좀 해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을설은 고개를 들었다. 군인의 풀어헤친 군복이며 더부룩한 머리가 꼴불견이었다. “이 아바이, 이거 수준 있는데? 이 담배 어느 나라 거요?” 이을설이 미처 답하기도 전에 군인은 다짜고짜 옆에 놓인 담배 곽에서 담배를 꺼내 양쪽 귀에 끼우고 나서 또 한 대 입에 문다. “아바이, 라이터!”

기가 막혔지만 이을설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황금색 라이터를 꺼내 군인에게 주었다. “어라, 이거 봐라. 이 아바이 폴(외화의 속칭) 좀 쓰는 모양인데…” 담뱃불을 붙이고 나서 군인은 아무 말도 없이 라이터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미안합니다. 만났던 기념으로 가져갑니다. 그냥 가지겠다는 건 아니고 내 것과 꽝 합시다.” 허줄한 라이터를 툭 던져주고 나서 군인은 신나게 휘파람까지 불며 돌아섰다고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이을설은 아래턱을 떨며 저만큼 걸어가는 군인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놈아. 거기 못 서? 얘들아, 저놈 잡아라!” 질겁해 소리치는 사령관의 목소리에 호위원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그 군인을 잡아 꿇어 앉혔다. 뒤늦게야 노인이 호위사령관 이을설이란 사실에 그 군인은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었다.

“용, 용서해 주십시오.”, “너 어느 부대냐?”, “그게 저…”, “괜찮다 일러바치지 않을 테니 겁먹지 말고.”, “저 427군부대 부업소대 소속입니다.”

이을설도 놀랐고 호위원들도 놀랐다. 방금 현지시찰 했던 427부대 병사라니. 영양실조에 걸려 부업소대에서 염소방목하고 있는 병사였는데 사령부에서 현지시찰을 내려온다고 하여 자기네 부업소대는 방목지로 대피해 있다가 지금쯤 사령관이 현지시찰을 마치고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하고 식사운반을 하러 내려오던 길이라는 것이었다.

만났던 기념이다. 라이터 너 써라

기가 막힌 이을설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병사에게 다가갔다. 병사는 얼른 자기 주머니 속에 넣었던 황금색 라이터를 꺼내 사령관 앞에 두 손으로 내놓았다. 이을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병사를 바라보다가 라이터를 다시 병사에게 주었다. “그건 네 놈 말대로 만났던 기념이다. 그냥 써라.”

이을설은 병사에게 부대에서 담배 공급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평상시 식사 메뉴는 어떠한지, 군인들의 훈련 실태와 군복무 과정에서 군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현지 시찰했던 부대의 만족했던 모습은 지휘관들이 사령관인 자기에게 잘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개탄했다고 한다.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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