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1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북 | 함께 만든 성당, 함께 하는 참회와 속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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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49

함께 만든 성당, 함께 하는 참회와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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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 가 보았다. 왜 성당 이름이 ‘참회와 속죄’일까? 성당 바로 옆에는 ‘민족화해센터’가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이유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 성당의 내부 조형물들은 남한과 북한의 미술가들이 만든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성당의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이 재단 위에 놓여진 대형 모자이크화였다. 예수와 8명의 성인들로 구성된 이 화면은 북한의 만수대창작사 공훈예술가들이 만든 것이다. 중국 단둥 근처 시골에 자그마한 체육관 하나를 빌려서 만수대창작사 공훈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나와 40일간 제작하였다는 작품이다.

모자이크의 밑그림을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이콘연구소에서 그려보내면 단둥에 있는 북한 미술가들이 작업했다. 북한 미술가들은 매일매일 작업 내용을 카메라로 찍어서 인터넷을 통해 이콘연구소장인 장긍선 신부에게 보냈고 여러 차례 보완 작업을 거치면서 작품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재단 위에 놓인 대형 모자이크화. 예수와 8명의 성인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북한의 만수대창작사 공훈예술가들이 40일간 중국 단둥에서 제작한 것이다.

재단 위에 놓인 대형 모자이크화. 예수와 8명의 성인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북한의 만수대창작사 공훈예술가들이 40일간 중국 단둥에서 제작한 것이다.

40일간 이어진 남북 예술가의 합작 모자이크 벽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모자이크화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남북한의 대표 성인 8명이 그려져 있었다. 남한 출신과 북한 출신의 성인들이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성당이 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실은 성당 건축물 때문이었다. 성당은 과거 신의주 진사동에 있던 성당 건물을 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당 내부의 모습은 함경남도 덕원에 있던 성베네딕도 대수도원 대성당에서 그 기본 형태를 따와서 건축적으로 완성해내고 있었다. 민족화해센터는 평양 외곽 서포에 있던 메리놀 본부의 건물 모습을 기본으로 하여 그 크기를 더 크게 하고 일부 변형하여 구성하고 있었다.

성당 내부 들어가는 입구에는 평양의 대동문과 관후리 주교좌 성당, 덕원의 성베네딕도 대수도원과 신학교의 모습도 되살아나 있었다. 만수대창작사 작가들이 모자이크화로 되살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당 외벽에도 만수대창작사 미술가들이 만든 모자이크화가 걸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은 모자이크화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다. 이는 야외에 설치된 작품들의 보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관련된다.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 한 작품들을 비롯한 주체미술의 기념비적 작품들이 세월의 눈비 속에 점차 퇴색되어 화폭의 생동성을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영구성이 강한 모자이크 벽화로 미술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모자이크 벽화는 1,200℃에서 구워낸 색유리와 타일, 가공된 천연석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재료의 견고성 때문에 자연 조건에서 비교적 오랜 기간 색이 변하지 않는 장점을 지니게 된다. 북한에서는 이를 ‘모자이크 벽화’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를 북한식 표현인 ‘쪽무이 그림’이라고도 칭하고 있다. 모자이크 벽화는 공정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집단창작으로 제작된다.

이 성당 작업을 총괄 지휘하였던 장긍선 신부는 북한 미술가들에 대해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미 그들의 재능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러시아나 이탈리아에서는 제작기간을 1년 반을 달라고 했던 작업이었는데 자신들이 허락 받은 체류 기간 내에 작업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날밤을 새면서 40일 만에 끝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충 어설프게 한 것도 아니고 열성을 다해 성실히 작품을 잘 만들어주었다. 북한식 용어로 하자면 전투식 작업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북한 화가들의 열정과 기술, 장긍선 신부의 열의가 파주에 있는 이 작은 성당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의 남북한 평화의 기상도는 어떠할까. 오랜만에 다시 찾은 파주의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잊고 있었던 그 출발의 자세와 평화의 가능성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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