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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 “책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슴다!”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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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11

“책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슴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들어가지 않은 소설이나 동화를 읽어 본 적이 없슴다. 러시아 소설을 읽어보긴 했는데 대부분 주체사상이 들어가게끔 각색한 내용들이었습니다.”

북에서 온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북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온 아이들도 세계 명작을 듣도 보도 못했다고 한다. 하물며 우리나라 작가는 단 한 명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가? 아이들은 책 읽는 것을 힘들어했다. 수업 준비를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책을 읽은 게 없으니 쓰는 작업 또한 무의미했다. 많은 고민 끝에 책을 읽는 것만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재밌으면서도 의미가 깊은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라는 동화부터 읽고 많은 작업을 해 나갔다. 그림으로 책의 내용을 표현하기도 하고, 느낀 점을 그룹으로 나눠 토론한 뒤, 누군가 발표를 하게도 했다.

 

책 읽는 맛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 등 몇 권의 동화를 읽다 보니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재밌어하면서 다음 책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매주 두 학생씩 나와서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발표하게 하는 세미나식 수업이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스스로 만들게 했다. 내가 먼저 읽고 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선정한 책을 우선 순위로 했다. 처음에는 버거워하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진주는 더욱 그랬다.

고향이 무산인 진주는 두만강을 건넌 후에도 중국에서 7년을 살았다. 엄마와 단 둘이 살면서 중국 학교에 나가 제법 공부를 잘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국적을 가진 새 아빠를 만나면서 모진 고생을 하다 남한으로 넘어 온 친구다. 진주가 중국에 살면서 겪은 새 아빠의 학대 등 눈물겨운 사연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진주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임원 생활도 하면서 남한 생활에 뿌리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스럽고 안쓰러운지.

진주는 내가 추천한 책 중에 위화의 작품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를 택해서 열심히 읽고 그림과 영화까지 다운 받아 넣으면서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놀랍게도 진주는 이 작품을 읽고 중국어로 된 원작을 찾아 읽었다고 한다. 드디어 진주가 발표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책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습니다. 위화의 작품은 슬픈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그런 것이 장점입니다. 이 작품 속의 배경은 제가 북한에서 살던 때와 너무 비슷해서 가슴이 저렸습니다. 그래서 원작을 찾아 읽었습니다. 중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중국에 머물면서 고생한 것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이 책은 저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국경지대에서 고생하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도움이 될 외교관이 될 것임다.”

진주는 얼굴에 홍조를 띄면서 발표를 했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감동의 빛이 선연했다. 얼마 후, 진주는 한국외국어대에 원서를 넣었고 수시로 합격을 한 상태다. 얼마 전에 대학 준비를 하느라 바쁜 진주를 만났다.

“선생님,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거든요. 거기서 제가 위화의 작품을 중국어로 간략하게 설명을 했어요. 많은 선배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었어요. 그런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다는 한 선배의 말에 제가 어깨가 으쓱 했어요. 선생님. 제게 책 읽는 맛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진주의 말에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내가 아이들에게 ‘책…책…책을 읽어야 너희가 이 땅에서 남한 학생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누며 살아 갈 수 있다.’ 고 강조한 것이 효과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탈북 아이들을 만나 글쓰기라든가 논설문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해 보았다. 열심히 듣는 것 같은데 결국은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보며 답답하던 차에, 시도한 방법이 ‘책으로 만나는 인문학’ 수업이었다.

 

책을 통해 남북 교과 차이도 극복 가능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혹은 ‘책이 인생의 대학이다’라는 말이 어쩌면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믿는다. 그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책읽기를 시도했다. 특히 세미나식 수업에서 각자 몫을 정해 준 것이 큰 효과를 얻었다고 본다. 각자 맡은 책이 있기 때문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발표 자료를 스스로 만들면서 아이들은 책 속에 숨겨진 비밀의 방에서 즐거움을 발견해 나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남과 북 교과 과정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 또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명작과 함께 한국 작가들의 시집이나 소설을 읽게 한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북에서 온 친구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에 나가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독서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난 한 해 동안 독서 수업을 가열차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주 말고도 나와 함께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간 학생들이 졸업을 하면서 ‘책 읽기의 맛과 멋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을 많이 했다.

“선생님. 전 대학에 가서도 열심히 책을 읽을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읽는 책마다 짧게라도 독후감을 남기고, 거기에 내가 살아 온 이야기와 곁들여 언젠가는 저도 책을 써 보고 싶습니다.”

졸업식에 축하해주러 간 자리에서 또 다른 학생이 한 말이다. <연을 쫓는 아이>가 너무 재밌어서 두 번이나 읽었다는 학생이다. 나는 말없이 그 학생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책을 통한 인문학 수업을 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든, 대학에 가든 어디서든 잘 적응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주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면서.

 

Q. 북에서 온 친구에게 어떤 책을 권하면 좋을까요?

A. 북에서 온 친구들이 읽은 책들은 주로 김일성과 김정일 우상화를 주제로 한 것들입니다. 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북한의 소학교에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어린시절>,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원수님 어린시절>과 같이 김일성 일가의 행적을 정식 교과과정에서 가르치고 있을 정도예요.

그렇다고 북한에서 외국 문학작품을 전혀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같은 작품들이 교과서에 실려 있어요. 다만 북한에서 외국문학은 정책변화에 따라 번역·배포되어 읽히다가도 모두 수거되어 사라지기도 합니다. 1990년대부터는 경제사정의 악화로 많은 작품의 인쇄가 중단되고, 불필요하다 여겨지는 내용들은 삭제되어 요약 문고판이 발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원작의 내용이 왜곡되기도 했어요.

북에서 온 친구들은 한결같이 다양한 책 읽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동화를 주제로 ‘스피드 퀴즈’를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하나도 맞출 수가 없었다며 독서를 시작한 친구도 있고, 맞춤법과 표준어 공부를 위해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쓰는 친구도 있습니다. 어느 친구는 청소년 성장소설을 읽으며 이곳에서 태어난 친구들의 고민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해야 건강히 성장할 수 있듯이 다양한 장르와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거예요.

(전지현 / 화성시청 북한이탈주민 담당주무관)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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