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1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군사활동초보’ ‘심리와 논리’ 이걸 배워서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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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37

‘군사활동초보’ ‘심리와 논리’ “이걸 배워서 뭐해?”

2004년 북한은 중학교 5~6학년 과정에 일부 학과목을 신설했다. 바로 군사학, 논리학, 심리학이다. 지금의 학제로 보면 고급중학교 2~3학년에서 취급하는 과목들이다. 그러던 것을 김정은 정권이 등장하며 군사학을 ‘군사활동초보’, 심리학과 논리학을 ‘심리와 논리’로 학과목을 변경하고 통합했다. 하지만 이름이 바뀌었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학과목을 신설할 때는 당연히 교육 목적을 세우고 편성하겠지만 그 목적이 현실에서 타당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군사활동초보’ 과목을 보자. 이는 선군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교육위원회가 보조를 맞춘 것이다. 중등교정에 군사과목이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만약 있다면 이런 과목을 다루는 근거와 내용, 과목을 통해 달성하려는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북한의 의도는 선군시대에 맞게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군사지식과 현실능력을 갖춘 인재로 양성하자는 데에 있을 것이다. 당연히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환경과 조건에 능숙하게 대처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군사활동초보’의 내용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연기나지 않게 밥 짓기, 산에서 노출되지 않게 몸 은폐하기, 나무를 비롯한 자연조건을 보고 동서남북 갈라내기, 산에서 거리 측정하기 등 전시 유격활동에 필요한 상식적인 것을 위주로 가르친다. 형식도 이론과 실기 형식이다. 이러한 과목을 가르치는 것도 문제지만, 이 과목을 통해 미성숙한 세계관을 갖은 아이들이 전쟁에 대한 공포증 혹은 전쟁광신자로 자라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혁명 유자녀’ 교육기관인 평양 만경대혁명학원에 2014년 6월 7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혁명 유자녀’ 교육기관인 평양 만경대혁명학원에 2014년 6월 7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논리적으로 북한사회를 바라보라?

한편 ‘심리와 논리’ 과목의 대략적인 내용은 연역법과 귀납법 등을 통해 북한체제의 정당성, 즉 사회주의 우월성과 자본주의 취약성을 풀어가는 것들이었다. 이 과목이 신설됐을 때 대부분의 교원들이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걸 배워서 뭐해?” 겉으로 드러난 교원들의 비아냥은 이런 것을 몰라도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우리사회에서 과연 이런 과목들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북한은 통제된 사회이다. 그런데 어느 누가 감히 당의 노선과 정책에 대해 논리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과목을 배우고 나서 몇 십년째 이어지는 식량난과 계획경제의 파탄을 두고 주체농법이 과연 옳은지, 대안 사업체계와 방법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을까? 또 주체농법의 실체가 무엇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이런 논리적 사고로 당의 모든 노선과 방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다행인건지 현실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심리와 논리’를 배웠다고 젊은이들의 정신세계가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설사 생각한다고 해도 말 그대로 속으로만 끙끙 앓았을 것이다. 발설할 경우 그 즉시 반당, 반혁명, 종파적 요소로 분류될 게 뻔한데 감히 누가 논리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속으로는 다 알지만 체제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노선이나 정책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내가 나선다고 무엇이 달라지랴. 내 부모, 형제만 고통받을 게 뻔한데…’ 이런 식이다. 그래서 북한이라는 병영화된 나라에서 논리고 심리고 아무리 배워봤자 소용이 없었다. 현실에서 적용 불가능한 과목을 백날, 천날 배운다고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교원으로서 이런 과목을 만들었다는 시도 자체에는 의미를 두고 싶다. 농사가 천하지대본이라고 한다면 교육도 마찬가지다. 농사의 경우 봄여름 노력의 성과를 가을이면 알 수 있듯이 교육도 몇 십년이 지나서 그 성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목들이 생긴 지 12년이 됐다. 지금은 아무 의미 없이 보이겠지만 배운 지식이 유용하게 쓸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심리와 논리’에서 배운대로 노동당의 사상과 노선, 정책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선군정치의 필요성과 우월성, 정책 집행과정에서의 심각한 오류 등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그걸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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