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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먼지 속에 파묻힌 ‘학교관리규범’ 201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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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26

먼지 속에 파묻힌 ‘학교관리규범’

한국 학교를 참관하며 부러웠던 것들이 많다. 드넓은 운동장, 푸르른 나무, 깨끗한 복도, 체육기자재는 말할 것도 없고, 화장실이 실내에 있다는 점이나 교사용 화장실이 따로 있는 것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일 부러운 것은 강당이었다. 넓은 강당에서 비 오는 날에도 실내운동을 할 수 있고, 전교생이 다 모여 조회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체육관? 실내 수영장? 그저 쓴 웃음만…

북한에는 교육위원회에서 발행하여 각 교육국을 통해 배포하는 ‘학교관리규범’이 있다. 학교 시설에 관한 매뉴얼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탈북교사들도 생소한 내용일 수 있다. 나 또한 학교관리규범이 있다는 것을 교단에 선 지 20년이 지난 2006년에야 알았다. 어느 날 교무과에 갔더니 교무지도원 책상 위에 관리규범이 놓여 있었다. 이것이 북한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이전에도 있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당시 관리규범을 보며 ‘우리 교육도 막무가내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우선 학교 교사(건물) 위치부터 운동장 넓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첫째, 학교 건물은 햇빛이 잘 드는 곳, 소음이 없는 곳, 대도로나 주민 가옥에서 떨어진 곳에 지어져야 한다. 또한 교실은 남향으로 배정되어야 하며, 분과실의 위치가 교실보다 더 밝고 아늑한 곳에 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규정을 보며 “아이들에게 더 좋은 곳을 배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교무지도원은 이에 대한 답 대신 관련 항목을 짚어주었다. 교사들이 일하는 환경이 좋아야 수업준비를 착실히 할 수 있고, 교수준비가 곧 수업의 질을 좌우한다고 되어 있었다.

둘째, 총 학생 수에 따라 운동장의 평방수가 정해져 있고, 저학년(1~3)과 고학년(4~6) 학생수와 남·여학생 수에 따라 체육기자재가 얼마나 어디에 구비되어있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다. 또한 총 학생 수, 남녀비율에 따른 화장실 위치와 칸의 개수, 쓰레기장 크기, 담장의 높이, 배수로의 깊이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교내에 심은 나무의 종류는 어떤 수종이 좋으며, 나무 간격은 어때야 하는지와 교재림이 별도로 꾸려져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말 그대로 규정이었다.

셋째, 교사(건물) 내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가령 현관 정문 바로 앞 입상실(1호 영상, 김 부자를 그린 그림이 있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1호 영상은 아이들에 대한 수령의 자애로움이 넘쳐나는 그림들이어야 한다고 꼭 짚고 있었다. 한편 계단도 양쪽에 있어야 하며, 복도 너비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하고, 복도 벽에 직관들을 어떻게 배정할 것인지도 규정하고 있다.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비상로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던 문제점이 기억난다. 만일 있을지 모를 화재나 사고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탈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 북한에서 ‘사고’라는 영역까지 신경 쓸 정도로 문화와 의식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교원들이 이런 규정 모르는 건 누구 탓일까”

넷째, 교실에서 창문의 위치는 항상 왼쪽에 있어야 한다, 칠판으로부터 첫 줄 책상들까지의 거리는 2m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전등은 교실 평방수 대 몇 개의 전등을 설치해야 하며 총 룩스는 얼마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교실 문제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책상과 의자의 높낮이는 학생들의 나이와 키에 따라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양식화해뒀다. 칠판 색깔은 반드시 연녹색이어야 하고 교실 출입문은 앞쪽과 뒤쪽에 각각 있어야 한다.

다섯째, 실험실과 다른 여러 용도의 실들도 종류별로 분류해놓았다. 실례로 학습실(3대 장군 따라 배우는 곳)은 제일 밝고 아늑한 곳에 꾸려야 한다. 도서실, 컴퓨터실, 시청각실, 생화학실은 반드시 꾸려야 하는데 학생 500명을 기준으로 개수가 달라진다. 즉 학생이 1,000명일 경우 1관, 2관식으로 꾸려 두 학급이 동시에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 체육관과 실내 수영장에 대한 언급에서 교무지도원과 큰 소리로 웃던 기억이 난다. 관리규범 중 현실과 가장 괴리 있는 대목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략 이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결론은 북한 교육도 갖출 형식은 갖춘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자신과 이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당시 교원 연한이 20년이 넘어 북한 교육 현실에 나름의 고민이 깊었던 것 같다. ‘왜 이런 관리규범이 있으면서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까’, ‘왜 위대성, 충실성 교양과 성적제고에는 열을 올리면서 이런 규범들은 교무실 먼지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하나’, ‘하물며 교원들이 이런 규정을 모르는 것이 누구 탓일까.’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것은 북한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넓게는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겉치레만 중시하고 현실에서는 규정과 규칙이 무시되기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얼렁뚱땅 일하면서도 만세만 목청껏 부르면 충신으로 평가받는 북한 사회 곳곳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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