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3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탈북작가 선무, 경계선 위에서 북한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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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39

탈북작가 선무, 경계선 위에서 북한을 묻다

, 선무, 194x130cm, 2008

<김정일>, 선무, 194x130cm, 2008

선무라는 작가의 이름은 ‘선이 없다’, 즉 경계가 없다는 뜻으로 화가가 작명한 가명이다. 예상했겠지만, 선무는 탈북화가다. 30년 넘게 북한에서 살다가 2001년 북한을 탈출, 2002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북한에서 사범대학 미술교육을 전공하다 탈출한 선무는 남쪽에 정착하여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서 대학원 과정까지 졸업했다.

선무의 첫 전시가 2008년 여름 열렸고, 이후 첫 개인전이 쌈지에서 열리자마자 대성황을 이루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통신사, 일간지뿐만 아니라 방송사를 비롯한 TV, 각 미술잡지들이 그의 전시를 다루었으니 성공적인 전시였음이 틀림없는 듯하다. 이 때 언론을 통해 부각된 작품은 ‘아디다스’와 ‘나이키’ 브랜드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김정일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정치팝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화려하게 세계미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현대 미술가들의 부각이 천안문사태 이후 정치팝 작품들의 성공적 매매가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미술 시장이 선무의 등장을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결국 선무는 2008년 쌈지에서의 첫 개인전 후 그해 국제비엔날레 출품에 성공하게 된다.

중국 개인전, 열자마자 전시회장 폐쇄돼

그런데 부산 국제비엔날레 오픈 전날, 선무의 작품이 작가의 허락도 없이 철거되는 일이 벌어졌다. 작가는 부산비엔날레에 <김일성화>, <조선의 태양>을 출품했다. 김일성과 김일성화를 그려 출품한 것이다. 아마도 부산비엔날레는 앞서 언급했던 선무의 <김정일> 그림의 정치팝적인 요소를 언급했던 수많은 언론의 평가에 익숙하여 ‘국가보안법’을 의식하지 않고 그의 작품을 출품시켰을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작가가 그리고 싶다고 해서 그릴 수 있는 그림의 소재가 아니다. 마치 전통시대 임금의 초상화, 어진을 아무나 그릴 수 없었던 것과 같다. 조선시대 어진 화가가 되는 것이 모든 화원의 궁극적인 꿈이었듯, 현재 북한에서도 그러하다.

이제 막 화단에 등장한 신인작가 선무는 국제비엔날레에 김일성을 그린 작품을 출품하고 싶었다. 작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신이 그리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김일성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바로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탈북한 자신이 이제 남한에서 국제비엔날레에 초청받는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는 자긍심은 김일성 주석의 얼굴을 그려내 자신이 찾은 자유를 전 세계에 선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픈 전날, 외국 작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작품은 철거되었다.

, 선무, 130x193cm, 2010

<풍경2>, 선무, 130x193cm, 2010

선무는 이후에 그 때까지도 남한을 잘 몰랐다고, ‘자유’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자신의 작업실에서 처음으로 그리던 날, 간첩이라도 나타나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자기 검열에 짓눌려 제대로 그림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그의 토로는 그가 살아왔던 삶을 증언한다. 지난해에는 중국에서 선무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러나 오픈 하자마자 전시장은 폐쇄되었다. 북한 사람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중국 땅에서 탈북자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이 역시 문제였다.

선무. 선이 없다는 그의 이름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있지만, 선무는 탈북한 이후 여전히 수많은 경계선들을 만나고 있는 듯하다. 선무의 대표작인 ‘아이들’을 소재로 한 시리즈는 배경을 단순화시켜 포스터 같은 효과를 내면서, 화면 안에 구호마저 적어 넣어 북한 미술의 선전화를 정치팝의 형태로 패러디 해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는 그가 북한 속에서 살아왔던 삶과 여전히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있는 북한 땅에 대한 애증이 교차한다.

이제 선무는 자신의 그림이 갖고 있는 애증을(작가는 이 부분을 두 나라 모두에 속하지 않은 자신이 남북을 바라보는 ‘객관적 거리’라고 말한다.) 읽어주지 않고, 흑백의 논리로만 자신의 작품이 읽혀지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모든 것을 개의치 않고 자기 식대로 그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 모습이 <세상에 부럼없어라> 시리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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