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3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경제난이 초래한 학부모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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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27

경제난이 초래한 학부모 ‘갑질’?

한국에 온 후 교육부문에서 북한과 다른 점을 습관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아이들 등교시간에 교통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녹색어머니회, 아이들의 수업모습을 지켜보는 학부모 참관, 학교에서 무엇을 먹는지 직접 경험하는 학부모 급식모니터링은 참 이채로웠다. 드라마를 통해 보게 되는 엄마들의 파워도 놀라웠다. 때로는 감동을 받기도 하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북한에는 저런 것이 있었나?’, ‘북한 학부모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해 4월 1일 평양 제4소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학부모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한의 새학기는 4월부터 시작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1일 평양 제4소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학부모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한의 새학기는 4월부터 시작이다. ⓒ연합뉴스

학기 1회 학부형 연합회의 … 시범수업 안건은 조공?

교사와 학부모 관계를 큰 범위에서 보면 북한은 아직도 교사들의 힘이 세다.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쩔쩔맨다고 보면 된다. 지역과 교사들의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학생의 뺨을 때린다거나 종아리를 걷어차는 행위, 심하게 구타하는 행위도 곳곳에서 일어난다. 때로는 교사의 말에 복종하지 않거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아이들에게 보복 형태의 힘든 작업을 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근 북한의 교육현장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한 마디로 학부모의 힘이 세졌다. 우선 노동당, 교육위원회에서 학생 구타와 교사 비리와 관련된 방침과 지시가 부단히 전달된다. 하지만 지방, 농촌으로 갈수록 학부모들이 순종적이고 교사들의 횡포가 여전히 남아있다. 반면 이름난 학교, 도시지역일수록 교사들이 점잖고 학부모들도 수준 있게 행동한다.

북한에서 학부모들이 학교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는 학기에 한 번씩 학부모회의가 있다. 기말고사 후 진행하는 성적총화로 ‘1(2)학기 성적총화를 위한 학생·학부형 연합회의’라고 한다. 이 용어는 지역별로 다를 수도 있다. 그 외에 학교 공사라든지 교실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야 할 과제(지시)가 생길 경우 긴급 학부모회의를 진행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편 학생 성적이 좋지 않거나 잦은 지각, 친구와의 싸움이 문제가 되는 경우 학부모를 개별적으로 불러 조치를 취한다. 이때 결함의 엄중함에 따라 담임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소년단 및 청년동맹지도원(학생정치조직)과의 담화, 심지어 교장·부교장의 담화까지 있을 수 있다.

담임 임명까지 관여 … 교사들 설 자리 좁아지다

한국과 같은 학부모 참여(열린)수업은 없지만 담임의 계획에 따라 1년에 1~2번 30분 정도 시범수업을 보여주는 경우는 있다. 대체로 부모들을 위함이지만 최근 속사정은 다르다. 별도의 안건은 ‘조공’이다. 다시 말해 학기 동안 선생님의 수고를 현금으로 계산해주는 의식이다. 성적총화라는 본 이벤트가 끝나면 담임선생님은 조용히 교실에서 나간다. 이것은 학부모위원장이 조공 액수를 토의하라는 말 없는 신호이다. 그러면 학부모위원장과 열성 학부모, 우등생의 학부모 등이 주동하여 선생님께 드릴 총액을 말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돈을 걷는다. 더불어 명단과 액수를 적어 담임에게 현금과 함께 건넨다. 성적총화 전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수업을 보여주면 자연스레 부모들은 흐뭇해하고 대견해 하며 저도 모르게 한 푼이라도 더 내게 된다. 결석하는 학부모는 사전에 선생님을 찾아가 인사로 돈을 전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학부모는 차후에라도 꼭 돈을 낸다. 그것을 내지 않았다가 아이에게 닥쳐올 타격을 부모가 막아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언론에 폭로할 수도, 인터넷에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문제는 이 돈으로 학부모들의 힘이 세지고 교권은 추락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학부모, 특히 권력과 경제력이 있는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학부모들은 권세가 보통이 아니다. 담임과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압력을 가한다. 교장이나 부교장(교감), 심지어 시나 도당, 교육부 간부들을 내세워 문제를 제기하고 담임을 갈아치우는 정도다. 정말 힘이 있는 학부모들은 학교장에게 압력을 넣어 교장의 고유권한인 담임 임명에까지 관여한다.

몇 년 전, 한 학교에서 신입생 담임으로 지리교사를 임명했다. 당시 교장이 그렇게 한 이유는 지리교사의 가정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도움이라도 받으며 살라고 학급을 맡긴 것이다. 그런데 입학식 전에 이 정보를 접한 2~3명의 학부모들이 교장을 직접 찾아가 뇌물을 주고 수학교사로 바꿨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교사는 수학, 물리, 영어와 같은 기본과목에 실력 있고, 교수방법이 좋으며, 학생들에게 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 교사이다. 실로 북한 치맛바람의 씁쓸한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담임의 생일을 맞이하며 또는 개별적으로 촌지를 주는 현상이 학부모의 성의와 도덕이라는 보자기에 싸여 공공연히 자행된다. 그리고 교사들은 이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서로 부러워한다. 그럴수록 교사는 학부모의 손 안에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되고 나중에는 교권 상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자행되고 있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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