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2월 1일

영화리뷰 | “영도자님 그 분이 곧 법이오”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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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이퀼리브리엄>

영도자님 그 분이 곧 법이오

CS_201602_74조지 오웰의 <1984>를 필두로 디스토피아적 미래세계를 그리고 있는 공상소설이나 영화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고 거의 독재사회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또한 조직에 의해 개개인이 아주 초라한 존재로 추락한다. 미래사회는 항상 강력한 힘을 가진 단 한 사람의 독재자에 의해 통제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강력한 독재자의 통제와 인간의 소외 등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북한과 많이 닮아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체제 내적으로 ‘황색바람’이라 부르며 금기시하는 자본주의 서양문물에 상당히 정통해 있다. 특히 영화 <이퀼리브리엄, 2002> 속 도시 ‘리브리아’에서는 “영도자님 그 분이 곧 법이오.”라는 말로 압축되는 독재시스템과 현 체제 운영방식의 필연성을 끊임없이 세뇌반복하고 있는데, 영락없는 전체주의사회의 모습이다.

감정 철저히 통제당하는 미래사회 리브리아

<이퀼리브리엄>의 무대는 제3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건설된 가상국가 ‘리브리아’다. 리브리아는 제1차, 제2차, 제3차 세계대전이 모두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감정을 죄악시 한다. 이곳의 시민들은 모두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의무적으로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을 주사한다. 리브리아에는 감정이 배제된 사람만이 기계적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우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화내는 사람도 없다. 이것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바로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즉 평형사회다. 아무런 기복이 없는 그런 사회다.

리브리아에는 일종의 종교 사제단과 같은 감시기구가 존재한다. 이들은 약을 복용하지 않거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며 처단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시를 읽거나 유명 미술작품을 소장하거나 클래식을 감상하는 사람, 즉 ‘감응자’를 적발하면 바로 현장에서 사살하거나 송치 후 화형에 처한다.

주인공인 프레스턴(크리스찬 베일 역)은 조직의 유능한 1급 요원이다. 자신의 아내가 감응자로 적발되어 화형에 처해졌지만 어떠한 슬픈 감정도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프로지움에 의해 감정이 삭제된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인간이다. 리브리아의 룰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할 뿐이다. 크리스찬 베일은 무술배우 견자단을 닮은 외모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액션 연기를 기대케 했는데 역시 ‘건 커터’라는 근접 속사기술은 시원한 볼거리다. 견자단의 <영춘권> 권총사격 버전이라 보면 딱이다. 이 액션장면이 워낙 부각되다 보니 영화 <이퀼리브리엄>은 액션장르로 구분된다.

영화 <이퀼리브리엄>과 유사한 세계관을 갖는 영화는 두 편 정도 있다. 바로 <더 기버 : 기억전달자, 2014>와 일본 애니메이션 <애플시드, 1988>다. 이 두 영화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이퀼리브리엄>과 일맥상통한다. <더 기버>는 동명의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감정과 기억이 배제된 흑백톤의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도 감정이 죄악시되는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애플시드> 역시 세계전쟁 이후 살아남은 미래인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감정이 제거된 우량종 복제인간인 바이오로이드와 최첨단 미래도시인 ‘올림포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애플시드>는 ‘사과씨’ 즉 인간의 원죄를 의미한다.

감정유발자, 재판없이 화형해야 합니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평형사회’는 주인공인 프레스턴의 감정회복을 통해 극적 반전을 맞이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절친 동료인 존 프레스턴이 예이츠 시집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즉결 처분하면서 찾아온 심리적 고뇌에서부터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프로지움의 투약을 중지하면서 서서히 감정이 회복되는데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감응자의 집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으며 감동에 오열하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감정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미묘한 감정선을 잘 연기했다.

베토벤을 듣고 ‘인간’이 된 프레스턴은 차츰 어두웠던 과거 속 자신의 행적인, 아내의 화형집행과 절친인 페트리지에 대한 처단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하며 감응자 그룹을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도부로부터 전달되는 명령은 변함이 없다. “영도자의 말씀에 감정유발자에게 더 이상의 교정절차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두 현장에서 총살하거나 재판없이 바로 화형에 처해야 합니다.” 북한 인권문제 이면에는 북한 지도부와 ‘리브리아’의 지도부 간에 공유되는 체제이탈자에 대한 무자비한 비인권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페트리지가 죽기 직전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던 예이츠의 시 ‘하늘의 천’의 한 구절은 현 세태를 반영한 듯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오직 꿈뿐 / 그대 발 밑에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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