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3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겨울 묵은 때 벗겨내는 봄철 교실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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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39

겨울 묵은 때 벗겨내는 봄철 교실꾸리기

세상만물이 소생한다는 춘삼월이다. 봄바람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산과 들이 기지개를 하며 하나둘 봄의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연이 연주하는 봄의 교향악에 맞춰 거리와 마을, 사람들 모두 기쁨에 겨워, 행복에 들떠 치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는 이 봄이 북한이라고 다를 바 없다.

북한의 봄에서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봄철위생관리이다. 그 중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게 봄철 학교 및 교실꾸리기이다. 새 학년도를 시작하며 겨우내 묵은 때를 벗겨내는 일종의 때밀이기간이다. 일명 봄철 교실꾸리기라고도 한다. 지금이 한창일 때다.

묵은 먼지나 털어내면 될 것을 특별히 소개할 필요가 있겠냐고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특성상 날씨가 춥고 겨울이 긴 북한은 사정이 다르다. 특히 모든 조건이 열악한 북한의 실정에서 봄철 위생관리사업은 TV와 신문, 방송에서도 떠들어댈 정도로 전 사회적인 사업이다. 물론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12월 1일 평양 김일성 벽화 앞에서 학생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일 평양 김일성 벽화 앞에서 학생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난로 연기로 누렇게 변한 벽에 회가루칠

교실꾸리기는 봄철과 가을철 이렇게 1년에 두 번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하고도, 힘든 일이 바로 교실 벽체도색이다. 북한말로 회가루칠이라고 한다. 회가루칠이란 석회석 가루를 벽에 바르는 것을 말한다. 봄철, 가을철 중 봄철 회가루칠이 더 힘들다. 왜냐하면 북한 교육기관, 기관, 기업소에서는 난방을 위해 난로를 때는데 자연히 연기에 벽이 그을리게 된다. 아무리 난로가 좋아 연기가 전혀 나지 않는 교실이나 사무실이라 해도 봄이면 벽이 누렇게 변한다.

특히 교실의 벽 상태는 말이 아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불을 지피다보니 장작이 젖어서, 그리고 장난이 심해 난로 연통의 연결 짬들이 벌어지며 자연히 연기가 나기 마련이고 벽이 누렇게 그을리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회가루칠이 교실꾸리기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고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벽에 회가루를 칠하는 것과 그 뒷수습이 얼마나 힘든지 남한에서는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회가루칠은 천장부터 칠해야 벽에 얼룩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교실 천장은 어른들이 책상 두 개를 겹쳐놓고 그 위에 의자 하나를 더 올려놓아야 칠할 수 있을 정도로 높다. 또 얼룩 없이 새하얗게 칠하려면 보통 세벌은 칠해야 한다. 자연히 회가루칠은 엄마들의 몫이다. 대체로 소학교나 초급중학교까지는 엄마들이 하고 고급중학교는 학생들이 한다. 문제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시간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일이 아주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모든 일을 금전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력으로 동원되지 못하면 식사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밥값을 내기 시작했다. 내 몫으로 수고하기에, 내가 가지 못해 미안해서, 회가루칠이 아니면 시장에서 돈을 벌수 있다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장의 원리가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까지 침범한 셈이다.

교원실, 실험실, 담당 복도, 마당의 담벽까지 해야 한다. 회가루칠이 끝나면 그 뒤처리가 더 힘들다. 바닥에 수없이 떨어진 회가루 흔적을 지워야 하는데 젖은 걸레로 닦아내면 잘 닦아진 것 같아도 금세 희미한 색깔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보통 톱밥을 사용한다. 톱밥에 물을 조금 묻혀 바닥을 닦아내면 웬만한 먼지나 얼룩이 다 벗겨진다. 학급별로 순위를 매기기에 두 번, 세 번 수도 없이 닦아낸다.

그런데 요즘 북한의 산들이 다 민둥산이 되다보니 톱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최근엔 디젤유를 사용한다. 밀대에 디젤유를 묻혀 문지르면 웬만한 얼룩들이 단번에 벗겨지지만 이 지독한 디젤유 냄새가 교실에 가득찬다. 하여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모빌유이다. 자동차 엔진용으로 쓰이는 윤활유로 냄새는 거의 없지만 구하기가 힘들다.

한편 청소에 반드시 필요한 게 물인데 북한에서는 수도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청소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집에서부터 물을 가져오고, 모자라는 물은 가까운 개울이나 강에서 길어온다. 그러니 회가루칠을 하는 날이면 온 학교가 난리통이다. 학교 마당과 복도에 온통 책걸상, 사무실 책상, 의자, 장들이 빼곡하다. 그 속에서도 책걸상이 없어져 학급마당 당번을 정하고 책걸상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저절로 웃음만 나온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물뼁끼(수성 페인트)라 부르는 도색재가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한다. 값이 비싸긴 하지만 한 번 바르면 보통 3년을 간다고 한다. 도회지 학교, 일부 학급을 중심으로 사용하는데 요즘은 국경지대 학교들에서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보통 한국의 학부모, 아이들은 업체를 불러 할 것이다. 이게 바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이고, 경제발전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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