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3월 1일 1

북에서 온 내친구 | 철이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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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13

철이의 우정

철이는 스물여덟 살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가 하고 싶어 탈북 학교에 온 학생이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훤칠한 키에 모델처럼 멋진 청년이라 처음부터 관심이 갔다. 그런데 철이는 소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걸 힘들어 했다. 늘 생각에 빠져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몹시 슬퍼보였다. 알고 보니 철이 역시 험난한 길을 통해 이곳에 온 케이스였다. 북에 두고 온 병든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 자신의 삶이 가시방석 같다고 했다.

“북한에 살 때부터 제대로 학교에 다녀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하나원에서 나와 곧바로 취직을 했지요. 일을 하면서도 평생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당장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의 유혹도 만만찮았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가 없었다면 정말 고독할 것 같습니다

철이가 내게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으며 한 말이다. 뒤늦게 시작된 학교생활이 답답하고 어색할 때마다 철이는 몸을 움직였다. 말없이 학교 쓰레기를 비운다든가 교실 청소를 하는 등 어린 동생들에게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초등 과정부터 공부하는 것이 몹시 힘들어 보였다.

“가끔씩 찾아오는 절망감과 회의가 가장 무서워요. 내가 지금 나이에 대학에 가서 무엇을 할까? 또 대학을 나오면 내 삶이 달라질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대학은 꼭 가고 싶어요.” 다행히 철이는 나를 볼 때마다 허심탄회하게 자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손을 꼭 잡아주며 응원한다는 말 외에는.

어느 날, <샬롯의 거미줄> 이라는 동화를 읽은 뒤 ‘우정’에 대한 주제로 글쓰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날 철이가 맞춤법을 틀려 가며 쓴 친구의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 중에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내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동네 친구다. 고난의 시절 먹을 것이 없어 산에 가 나무를 해 팔아오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새벽 5시에 산에 들어가 밤 9시에 내려오는 고단한 삶이었다. 만약 그 때 친구가 내 곁에 없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같이 중국으로 탈출하다 잡혀서 북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많은 고문과 한 끼에 세 숟가락 정도 주는 밥을 먹으면서 살다가 감옥에서 나왔다. 우리는 뼈에 가죽을 씌어 놓은 것 같이 말랐다. 친구는 각혈까지 하였고 나도 곧 죽을 것 같았다. 우리는 북한에서 하루라도 더 지체되면 죽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또 다시 낮에 군대들의 추격을 피해 중국으로 무사히 넘어갔다. 이번에는 중국 시내까지 들어가서 전보다 쉽게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에서 나쁜 브로커를 만났다. 브로커는 우리를 중국 시골에 일꾼으로 팔았다. 우리는 중국 시골에서 돈도 못 받고 죽도록 일만 했다. 이렇게 극한상황이 올 때마다 서로를 의지한 우리의 우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돈도 안 받고 일만 하는 우리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배가 아파서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위험한 위기를 넘기고 산속에 숨어서 살았다. 국적이 없는 우리는 결국 중국에서 살기도 북한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국으로 보내는 브로커를 소개 받았다. 비용은 후불로 하고 한국으로 출발하였다. 삼국을 걸쳐 차를 타고 가면서 몇 차례 중국 경찰의 추격을 받았다. 악어 강에서도 배가 뒤집혀 악어 밥이 될 뻔했다.

 

결국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남한에 같이 들어오게 된 친구. 지금도 철이는 그 친구와 많은 것을 나누며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글을 읽은 뒤, 철이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지금 뭐 하니?” “지금 공장 다니고 있습니다. 나처럼 안 되는 공부하고 싶지 않답니다. 그런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고민하지 말고 열심히 달려 가봐. 길이 나타날 거야

철이의 끈끈한 우정에 대한 자랑은 끝이 없었다. 남한에 와서 몇몇 친구를 사귀었지만, 너무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일 때가 많아 금방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북에 살 때나, 남에 와서나 내 곁에 친구가 없었다면, 정말 고독할 것 같습니다.” 황소처럼 순진한 눈망울을 껌벅이며 말하는 철이를 보며,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정말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믿을만한 친구가 있나?’ 단숨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철이는 정말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에 생사고락을 함께 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보배 중의 보배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내가 사형수일지라도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세상 전부를 가진 것이나 진배없다.

“이제 조금 더 어깨를 펴고 살아. 철아. 넌 지금이 늦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야. 그리고 대학 나와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열심히 달려 가봐. 길이 나타날 거야. 네 곁에는 든든한 친구도 있잖아.” 나는 철이에게 평소 너무 소심해 하던 모습이 떠올라 한 마디 했다.

“네. 친구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친구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네요.”라며 씨익 웃는 철이의 모습이 해맑아 보였다. 앞으로 철이가 원하는 세상에서 더 멋진 우정의 밭을 가꾸어 갔으면 좋겠다. 훗날, 그들의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깊은 우정으로 말이다.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탈북을 해서 남한으로 오는 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했어요. 대학입학을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하니 저보다 한참이나 어린 동생들과 학교를 다닐 자신이 없네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A.대학입학을 위해서는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고졸 이상의 학력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북에서 중학교(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면 국내 고졸학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학력인정’ 절차가 있어요. 친구의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해볼 때 ‘검정고시’가 좋은 방법이라 여겨져요. 검정고시는 학교를 직접 다니지 않아도,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초등학교 졸업(중입 검정고시), 중학교 졸업(고입 검정고시), 고등학교 졸업(대입 검정고시)과 동등한 학력으로 인정됩니다.

검정고시는 탈북과정에서 긴 학업공백으로 단기간에 남한 학교에 입학하려할 때, 나이가 많아 일반학교에 다니기 부담스러울 때, 일반학교에서 적응이 어려울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학교를 다니는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일정한 규율과 통제 없이 혼자서 공부해야하기 때문에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돼요. 그래서 학원이나 대안학교의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죠. 혹시 검정고시를 합격했다고 해서 대학에서의 수업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학력수준으로 준비되었다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원활한 대학공부를 위해 검정고시 합격 이후에도 꾸준히 기초학력을 다져야 할 거예요.

전지현 / 화성시청 북한이탈주민 담당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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