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3월 1일

전영선의 NK 애니공작소 | “분도기를 똑바로 맞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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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의 NK 애니공작소 <연필포탄>

분도기를 똑바로 맞추라!”

북한 애니메이션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소개된 작품으로 ‘령리한 너구리’가 첫 손에 꼽힌다. 북한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너구리와 곰돌이, 야옹이 세 친구가 대결을 펼치고 지혜와 착한 마음을 가진 너구리가 승리하면서 과학 원리와 생활 교훈을 알려준다. 북한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령리한 너구리’ 시리즈처럼 교양과 지식을 주제로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 <달나라 만리경>처럼 남북의 상황을 노골적으로 대비하는 작품도 있고, ‘황새박사’ 시리즈처럼 북한의 발전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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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숙제? 어차피 숫자 다 써있는 걸

<연필포탄>은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 아동영화창작단에서 제작한 9분 길이의 만화영화이다. 주제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인민군대가 되자’는 것이다. 학습도구인 각도기, 연필, 필통이 해안으로 쳐들어오는 군함과 맞서 싸우는 것을 통해 공부를 잘 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제작처가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 아동영화창작단’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오래된 작품임이 분명하다. 북한 만화영화의 초기 제작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원조격에 해당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로 치면 <똘이장군>에 비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연필포탄>의 주인공은 석팔이라는 소년단 학생이다. 석팔이는 오늘도 학습반에서 빠지고 혼자 숲에서 군사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 석팔이 앞에 친구가 나타났다. “석팔아, 너 수학숙제 안 했지? 오늘 처음 배운 건데, 우리 같이 공부하자.” 석팔이는 공부할 마음이 없다.

“참 걱정도 많다. 분도기(각도기)에 10도 20도 다 써 있는데, 보면 뻔한 걸 가지고 뭘 그래.”

집으로 돌아온 석팔이는 책상에 앉아서 숙제 준비를 하였다. 숙제는 분도기를 가지고 30도, 45도, 90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노트에 분도기를 올리고 숙제를 하려고 하였다. 생각보다 분도기는 복잡했다. 같은 숫자가 한 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른편에도 있고, 왼편에도 있고, 위아래에 숫자가 빼곡하게 써있었다. ‘어떻게 하라는 거야.’ 석팔이는 숙제가 싫어졌다. “미국놈 잡이라면 문제없는데.”라면서 ‘US’라고 쓰여진 헬멧을 그렸다. 그리고는 연필이 끼워진 콤파스로 헬멧을 겨누고 총을 쏘는 흉내를 내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석팔이가 잠이 들자 노트에 있던 미군 헬멧은 바다로 날아가 군함이 되어 해안선으로 쳐들어 왔다. 석팔이의 책상에 있던 콤파스와 연필은 포대와 포탄이 되었고, 필통은 자동차가 되었다. 완성된 포차에 석팔이가 올라타자 멋진 포대가 되었다. 석팔이와 친구들은 미국 군함이 쳐들어오는 해안가로 포차를 몰고 달려갔다. 석팔이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친구들은 해안으로 쳐들어오는 미군 군함에 맞서기 위해 각자 위치로 갔다. 석팔이 포차는 제1포차였다. 석팔이가 자리를 잡자 지휘소에서 “분도기 설치를 마쳐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수업시간에 주어졌던 바로 그 문제, 그대로였다. 수업시간에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석팔이는 분도기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몰랐다. 석팔이가 헤매고 있는 사이에 친구들은 각각 분도기 조절을 마쳤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석팔이는 분도기를 포대에 대충 맞추고는 설치를 마쳤다고 보고했다.

이어 지휘부에서 사격 준비 명령이 떨어졌다. 각 포대별로 맡은 적함선과 발사각이 전달되었다. 석팔이가 맡은 1포에는 적함선 1번, 2번을 맞추라는 명령과 함께 ‘41도로 발사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지휘부의 명령대로 각 포대에서는 연필포탄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해안선으로 쳐들어오던 군함과 상륙전차들이 파괴되었다. 연필 포탄을 맞고 물러나는 함선과 상륙정을 보면서 석팔이와 친구들이 환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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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대강 조준하니 빗나가는 연필포탄

석팔이도 신이 나서 환호하는데, 지휘부에서는 1포가 ‘헛발’이라면서 재차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다른 배들은 모두 파괴되었지만 석팔이가 쏜 포탄은 계속 빗나갔던 것이었다. 석팔이는 지휘부에서 불러주는 각도에 맞추어 사격을 하였지만 이번에도 맞지 않았다. 지휘부에서는 “분도기를 똑바로 맞추라!”는 명령과 함께 다시 각도가 주어졌다. 석팔이는 “분도기는 똑바로 맞췄다. 명령을 똑바로 내려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명령이 떨어졌지만 포탄은 맞지 않았다. 급기야 석팔이에게 사격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석팔이는 지휘부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까짓 거 맞추면 그만 아니야.”하면서 눈으로 대강 조준을 하고 포탄을 쏘았지만 맞지 않았다. 석팔이의 포탄이 빗나가는 사이에 군함에서 반격이 시작되었다. 상륙함도 해안 가까이 왔다. 지휘부에서는 위험하다며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맞설 생각만 하던 석팔이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가 미군의 포탄에 맞아 쓰러졌다. 석팔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친구들이 석팔이를 불렀다.

꿈이었다. 친구가 축구를 하자고 찾아와 석팔이를 부르는 소리였다. 석팔이는 꿈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친구는 “분도기를 어떻게 맞추었냐?”면서 석팔이에게 분도기의 각도는 중심을 가운데 두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석팔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석팔이는 “그걸 모르고 헛발만 쏘았구나. 공부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숙제도 잘 해야 훌륭한 군인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다짐하였다.

전영선 /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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