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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 꽃제비 민수의 청첩장 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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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14

꽃제비 민수의 청첩장

 

탈북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만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나 왔다. 주로 대입반을 맡아 글쓰기 지도를 하다 보니 학생들의 사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사연이 없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힘든 과정을 잘 견뎌내고 대학에 가 잘 적응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감회가 깊다.

모든 친구들이 다 귀하고 소중하지만 그래도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는 민수가 아닐까 싶다. 탈북 학교에 갈 때마다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 주던 민수는 참 특별했다. 나는 처음부터 솔직한 민수에게 친밀감이 느껴졌다. 민수를 통해 북에서는 ‘꼬장떡’을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연길 농촌 사정’에 대해 실질적인 정보를 많이 얻었다. 가끔은 우리 집으로 불러 책도 읽고 음식도 나누면서 깊은 정이 들었다.

모교에 돌아와 조리선생님이 된 민수

민수는 탈북한 친구들 모두가 그렇듯 기막힌 사연을 안고 이 땅에 왔다. 북에서 돈 벌러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풍비박산이 된 집안을 지탱하기 힘들어 강을 건넜다. 아버지와 남동생이 함께 중국으로 나왔지만 중국 공안의 눈이 무서워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 민수는 국경지대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며 희망 없는 나날을 살았다. 그러다 잡혀 북송이 되어 꽃제비 수용소에서 모진 학대를 받기도 했다. 다시 강을 건너 우여곡절 끝에 남한에 들어오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어찌 그 길고 험난한 길 위에서의 이야기를 이 짧은 지면에 다 옮길 수 있으랴!

스물 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공부하겠다고 무작정 탈북 학교를 찾은 민수는 참 성실했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일에 앞장 서 궂은일은 물론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도맡아 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 ‘앎’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밤새워 교과서를 외우기도 하는 등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많이 힘들어 했다. 컴퓨터공학이라는 전공이 맞지 않아 방황하다 결국 자퇴를 하고 다시 도전해서 조리학과에 갔다. 다행히 잘 적응하게 되었고 앞날에 대한 비전도 갖게 되었다.

민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가끔 내게 편지를 보냈다. 주로 현실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이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결국은 자신이 스스로 이겨야 한다는 결심을 적은 글을 볼 때마다 뭉클했다.

민수와 내 아들은 동갑내기다. 어른스런 민수를 볼 때마다 내 아들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웠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민수는 조리학과를 나와 자신의 토대인 탈북 학교에 ‘조리 선생님’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졸업생을 안착시키기 위해 기꺼이 학교 선생님으로 채용을 하는 탈북 학교 교장 선생님 역시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의 배려와 기도 속에서 민수가 아이들의 세 끼 밥을 맡아 해 주는 ‘급식 선생님’이 된 것이다. 참 감격스런 일이었다. 나는 내 아들이 대기업에 들어간 것보다 더 기쁘고 뿌듯했다. 민수가 살아 온 세월의 고통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이제 민수라는 이름 대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꼭 붙인다. 그럴 때마다 어찌나 가슴이 뿌듯하던지.

“저도 제게 남한 생활에 뿌리를 내리게 해 준 모교에서 후배들의 밥을 해 주는 선생님이 될 줄은 몰랐어요. 감회가 깊어요.” 어느 날, 급식실에서 맛있게 밥을 먹은 뒤 내가 칭찬하자 민수가 감격스런 목소리로 하던 말이다.

남북청년의 사랑의 꽃, 통일의 꽃으로 이어지길

얼마 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새 학기가 되어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급식실에서 열심히 배식을 하던 민수가 내게 다가 왔다. 손에 든 하얀 봉투를 건네며 씨익, 웃었다. 하얀 백합이 우아하게 그려진 청첩장이었다. 실은 민수가 여자친구를 소개해 주어 만난 적이 있지만, 청첩장을 받으니 기분이 또 달랐다. 내 아들이 결혼 선포를 할 때만큼이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군다나 남한에서 자라고 피아노를 전공한 당당한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다니 그 또한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그야말로 남과 북의 청년들이 만나 사랑의 꽃을 피우는 것 아닌가. 머잖아 이들로 인해 통일의 꽃까지 이어질 것이라 믿고 싶다.

“정말 결혼하네. 축하해. 잘 살 거야. 잘 살아야 하고.” 내가 청첩장의 날짜를 확인하며 축복하자, 민수가 박꽃처럼 하얀 미소를 지었다. 성실과 열정으로 자기 길을 걷고 있는 민수가 그날따라 더욱 근사해 보였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당당한 자리매김을 할 일만 남았다. 그야말로 든든한 뿌리를 내려 ‘미리 온 통일’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했으면 좋겠다.

민수는 남한에 내려와서도 참 많은 역경을 겪은 편이다. 그 때마다 흔들리고 아파하다 다시 우뚝 서는 모습을 지켜 본 나로서는 청첩장을 받는 감회가 남달랐다. 앞으로도 어쩌면 생각지 못한 난관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간 민수가 내게 한 말을 꼭 기억해주면 좋겠다. “제가 꽃제비 수용소에 갇혔을 때 받은 학대와 모멸, 그리고 배고픔을 생각하면 지금 당하는 고난 쯤 아무 것도 아니다 싶어요.”

벚꽃이 절정에 다다를 주말에, 민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할 것이다. 민수의 아름다운 신부가 될 그녀에게도 미리 축하의 말을 전한다. 4월의 신랑이 될 민수는 강을 건너 온 청소년들의 멋진 롤 모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통일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더 많은 행복의 에너지를 전파했으면 좋겠다. 힘들지만 이 땅에 와서 멋지게 뿌리내리며 잘 살고 있는 민수의 삶을 통해 많은 후배들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돼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A. 답답해하는 친구의 마음이 읽혀지네요. 사실 진로문제는 북에서 온 친구들뿐만 아니라 모든 청소년들의 공통된 고민이에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요즘 청소년 진로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시험 대신 직장체험과 같이 진로교육을 받는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는 이유예요.

남북하나재단이 실시한 탈북청소년 실태조사(2014)에 의하면 북에서 온 친구들 10명 중 3명은 진로상담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어요. 탈북청소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많은 연구·지원기관이 있지만 보다 쉽게 찾아가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각 지자체(시·군·구)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추천하고 싶어요. 인터넷, 전화, 방문 등을 통한 상담과 다양한 검사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친구들 스스로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해요. 친구들이 살다온 북한에 비해 이곳은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직업이 존재해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함께 다양한 직업탐색이 뒷받침되면 좋겠죠?

전지현 / 화성시청 북한이탈주민 담당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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