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4월 1일

통통 인터뷰 | ‘북한에는 여자가 없습니다’ 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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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인터뷰 |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

북한에는 여자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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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

용기를 낸 여성들이 나섰다. 세계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북한의 여성 인권실태를 고발하는 탈북 여성들이 자리했다. ‘북한에는 여자가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여성들은 열차 승무원, 안내방송원, 협동농장원, 꽃제비, 군 간호사 등으로 살아오던 지난날을 회고했다.

 

성문제 만연해도 감추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은미 씨는 열차 승무원이었다. 기차는 연료 부족으로 늘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한번 열차에 오르면 짧게는 3일, 길게는 1주일의 노정이 시작됐다. 당국에서는 밝은 미소와 품위 유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간단한 세안조차 할 수 없었다. 열차에는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한 식용유로 화장을 지우고 덧입히곤 했다. 찜찜했지만 승무원 사이에서 전해지는 최선의 비법이었다. 정말 난감할 때는 월경기였다. 일회용 생리대는 쌀 1kg과 맞먹는 금액이어서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면 생리대를 여러 차례 말려 사용하며 빼곡히 들어앉은 승객들 틈에 악취의 주범이 됐다. 가장 힘든 것은 전기가 차단되는 저녁, 승무원을 노리는 탑승자들이었다. “강간, 성추행이 만연했지만 감추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공연히 문제를 일으키면 손해보는 것은 자신이었다. 이러한 실태 때문에 열차 승무원은 결혼 기피대상자였다.

거리에서 셀 수 없는 시간을 지낸 김은실 씨는 꽃제비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앞선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14세 소녀는 동생과 하릴없이 길을 걸었다. 어린 소녀가 견뎌야 했던 것은 비단 배고픔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살기 힘든 그곳에서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친척들조차 외면하며 방치되었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길에서 동생과는 영영 소식이 끊겼다.

최수향 씨는 6년간 군 간호사로 일하며 목격한 여성 군인들의 참담한 실태를 털어놨다. 늦은 밤이면 상급자는 여성 분대장을 부르곤 했다. 사업보고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얼마 뒤 임신을 했고 이 사실이 알려져 불명예 제대를 했다. 분대장은 죄책감으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대해 표현을 하면 아래 대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처벌이 돌아올 걸 알기에 기꺼이 자신을 던졌다.”며 충격적인 사례를 폭로했다.

이 여성들은 용기를 내어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다. 흐르는 눈물은 자신의 영화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자들을 위함이었다. 그 사회를 고발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떠올리기 싫은 과거와 치부를 드러내야 했다. “우리의 증언이 작은 목소리로 여겨질 수 있으나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실상을 재조명할 수 있도록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행사를 주관한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는 이와 같은 고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예고했다.

 

지난 3월 7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뉴코리아여성연합은 북한의 참담한 여성 인권유린 사례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연합

지난 3월 7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뉴코리아여성연합은 북한의 참담한 여성 인권유린 사례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연합

피해자만 따가운 시선 속에 사회적 시스템·해결의지 없어

이 대표가 북한 인권운동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가족의 비보를 접하면서부터다. 장교 출신이었던 두 오빠는 이 대표로 인해 강제 제대 당하고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여전히 저곳에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했다. 이에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자 2011년 탈북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뉴코리아여성연합을 조직했다.

“군부대에서 강간, 성희롱, 여성에 대한 비하가 제일 빈번하게 일어납니다.”라고 말하는 그 역시 북한에서 10년간 군 복무를 했다. 보통 만 16~17세에 입대하는 북한 여성들은 7~10년의 군 생활을 하며 조직과 군 복무자에 의한 인권침해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다. 모든 통제기관과 관련 종사자가 유착관계에 있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가해자가 권력을 갖은 자로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북한에는 ‘인권’이란 단어 자체가 없다. 자유, 권리를 강조하지만 인권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으니 인권 침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부당함을 고발한다고 해도 규제가 없으니 해결될 리 없고, 인권 실상을 증언할 구조가 뒷받침 되어 있지 않다. 보호장치 하나 없는 사회와 조직의 무관심 속에 문제는 반복될 뿐이었다.

북한에는 성교육이 없다. 피임기구가 있을리도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원치 않은 임신이 자주 발생한다. 앞선 사례에서도 성폭행을 당한 여성만 임신한 채 불명예 제대를 했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기득권의 보살핌 속에 있었다. 여기에 이 대표는 잘못된 사회의 인식이 한 몫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변의 시선도 따갑기만 하죠. ‘바보구만, 다른 사람은 안 당하는데 왜 너만 그러냐. 이제 시집은 다 갔다.’라는 식의 반응이 일반적이에요.” 이러한 낙인 때문에 피해자들조차 사건이 조용히 처리되길 바라고 가해자들의 득세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피해 여성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부조리는 다시 덮이길 반복한다.

탈북 과정에서의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중국에 체류할 경우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여성이라는 상대적 약자가 탈북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을 매매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탈북시 브로커가 필요한데 브로커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인도하는 비용보다 중국 인신매매로 인한 수익이 더 크다보니 북한 여성들을 쉽게 팔아버려요.” 신분을 숨겨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브로커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다. 만약 발각된다면 감옥, 수용소를 각오하는 것은 물론, 가족들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참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팔려 가면 또 다시 수렁에 빠진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지만 모성애는 생기기 때문이다. 비단 운이 좋게 한국에 들어와도 내 몸에서 낳은 자식이 눈에 밟힌다. 자식을 데려오려다 보면 아이 아버지도 데려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매정하게 새 삶을 찾아 나서면 좋으련만 결과는 비정상적 가정의 탄생이다. 결국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떠나왔으면서도 이러한 현실은 많은 탈북 여성들에게 숙제로 남는다.

한편 최근 북한 장마당이 확산되며 여성들의 지위도 높아졌다는 증언들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해석은 경계했다. “물론 여성들이 생계를 책임지며 가정 내 권위가 올라가고 있죠. 하지만 흐름이 바뀐 것 뿐,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가 바뀐 것은 없어요. 오히려 여성의 노동이 가중되고 경제적 의무를 부여하는 풍조가 확산됨에 따라 자신을 상품화하는 여성들의 일탈 현상도 증가하고 있어요.”라며 여전히 제도적 보호장치가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우리가 바란 것은 사람답게 일하며 대가 받는 삶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온 한국에서의 삶도 꿈꾸던 인생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한 탈북 여성이 생산직에 취직했어요. 북에서는 대학도 나온 분이었죠.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 불량품이 잦았나 봐요. 그런데 ‘배운 게 없어 그렇다, 못 사는 데서 와서 그렇다’ 갖은 멸시를 받았다고 해요.” 똑같이 미숙해도 북한에서 와서 그렇다는 편견이 그들을 다시 무너지게 한다. “우리가 모이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우리가 바란 것은 그저 사람답게 일하며 그에 맞는 대가를 받는 것이었죠.” 그들은 여전히 약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토록 원하던 새로운 터전에서의 냉소적인 시각과 차별은 애써 냈던 용기를 꺾이게 한다.

이 대표는 탈북 여성들이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뉴코리아여성연합을 조직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직업체험, 창업스쿨 등을 진행하며 탈북 여성들에게 그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생기길 돕는다. 또 토크콘서트, 세미나 등을 기획하며 북한 인권실상을 알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봉사활동도 전개 중이다. 기대보다 참여율도 좋다. “다들 순수하게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더라구요. 권력의 희생물이었던 여성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역할을 부여받으니 오히려 뭔가 할 수 있다는 용기도 갖게 되고요.”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나눔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역할과 마음가짐, 이것이야 말로 정착하는 데에 꼭 필요한 요소였다. “최근에는 ‘힐링 킹덤’이라는 정착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의 활동을 토대로 훗날 통일이 됐을 때 북한에 들어가 빠른 발전을 이루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이소연 대표. 그는 원하던 삶을 이뤘지만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을 독려하며 자신 또한 용기를 낸다. 아직 그 땅에는 평범함을 꿈조차 꿀 수 없는 이들이 부당한 현실 속에서 숨죽이는 하루를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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