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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 러시아의 고민, 북카프카스 지역과 체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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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24

러시아의 고민, 북카프카스 지역과 체첸

체첸 자치공화국 정부 수장 람잔 카디로프가 이끄는 전투원 약 2만명이 2014년 12월 28일(현지시간) 체첸 수도 그로즈니의 한 스타디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용대로서 러시아를 지키겠다는 충성 서약을 하며 카디로프의 연설을 듣고 있다. 카디로프는 2007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으로 들어선 이래 러시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이슬람 반군 세력 소탕에 앞장섰다. ⓒ연합

체첸 자치공화국 정부 수장 람잔 카디로프가 이끄는 전투원 약 2만명이 2014년 12월 28일(현지시간) 체첸 수도 그로즈니의 한 스타디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용대로서 러시아를 지키겠다는 충성 서약을 하며 카디로프의 연설을 듣고 있다. 카디로프는 2007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으로 들어선 이래 러시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이슬람 반군 세력 소탕에 앞장섰다. ⓒ연합

넓은 국토와 다양한 인종은 국가의 통합을 어렵게 하는 러시아의 고민이다. 러시아는 46개 주, 21개 공화국, 4개 자치 오크룩(Okrug), 9개 크래이(Kray), 2개 연방시(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1개 자치주(예브레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북카프카스 지역의 공화국들은 중앙정부에 대항하며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카프카스 산맥은 고대부터 문명의 교류와 확산에 커다란 장애물 역할을 하였다. 카프카스의 북부지역은 넓은 스텝 평원으로 비교적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러시아의 남서부에 해당하는 카프카스 지역에는 체첸을 비롯하여 다게스탄, 잉구시, 북오세티야, 카바르디노-발카리아, 카라카예보-체르케스, 칼미크 등의 많은 자치공화국이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2014년 한해에만 러시아 중앙정부와 자치공화국 간의 충돌로 341명이 사망하고 180여 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체첸은 현재 러시아 연방공화국으로서 러시아 정부로부터 제한된 자치를 부여받아 통제되고 있다. 지리적으로 체첸은 러시아 남서부의 흑해와 인접해 있는 카프카스 산맥의 북쪽에 위치한다. 체첸에는 험준한 카프카스 산맥의 영향으로 해발고도 4,000m 정도의 고지군들이 많이 분포하며, 북쪽은 기복이 완만한 스텝지대가 펼쳐져 있다. 체첸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상북도와 비슷한 약 19,300㎢이다. 약 100만명의 인구가 거주했으나, 두 차례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체첸족은 소수민족에 해당하지만 러시아 연방공화국의 전체 인구에서 8번째로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카프카스 산맥에 거주하는 수많은 소수민족 중에서 러시아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자기들만의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무장투쟁과 다양한 테러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수민족이 체첸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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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반발 체첸족 따른 분리·독립 도미노현상 경계

체첸은 공식적으로 1859년 러시아 제국에 의해 강제로 합병되었다. 러시아 혁명기에 체첸인들은 자신들의 저항을 성전으로 규정하고 이슬람 교단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1920년에 고르나야 자치공화국을 선포했으나 1921년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어 소련 영토로 편입되었다. 1936년 스탈린에 의해 체첸 자치주와 잉구시 자치주가 합쳐져 자치공화국이 만들어졌으나 1944년 2월 소수민족 말살정책을 추진하면서 체첸인들은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되었다. 1957년 후루시초프의 복권조치로 체첸인들은 원래 살던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소련 정부의 체첸인에 대한 차별 대우는 여전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체첸이 러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선포하자, 체첸의 탈러시아를 묵과할 수 없는 러시아가 억압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발했다. 러시아가 체첸의 독립을 끝까지 허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체첸의 분리·독립이 실현된다면 북카프카스 지역에 도미노현상을 일으켜 러시아 연방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해로 이어지는 송유관의 일부가 체첸을 통과하고 이 지역이 러시아 남부 국경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이슬람 세력의 확대를 방지하는 최후 교두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1차 체첸전쟁은 1994년 12월 11일 시작되어 1996년 8월 31일까지 약 1년 8개월간 지속되었다. 러시아군은 처음 2만4천명을 투입했으나 점차 인원이 늘어나 종전에는 9만5천명까지 동원했다. 체첸군은 약 3만명 규모였다. 전사자는 러시아가 8천~1만명, 체첸은 1만5천명 이상이었다. 이 전쟁은 러시아의 전략적 패배라고 평가되고 있다. 체첸군은 러시아에 비해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1년 8개월간 러시아와 전투를 치르며 선전했다. 러시아는 체첸을 러시아 연방으로 바로 편입시키지 못하고 체첸의 지위를 2000년까지 유보한다는 휴전에 합의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제2차 전쟁은 1999년 9월에 시작되어 2000년 2월까지 6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전쟁에 동원된 병력은 러시아가 9만3천여 명, 체첸은 2만2천여 명이었다. 전사자는 러시아 측 1만명, 체첸은 1만4천명이었다. 제2차 체첸전쟁은 막 등장한 러시아의 푸틴이 주도했다. 작전지휘권을 연방보안국으로 이전하고 연방보안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테러작전 통제단을 설치해서 운용했다. 이 전쟁으로 러시아는 체첸을 연방공화국으로 편입시키고, 친러 정치가들을 체첸공화국 주요 지도자로 임명해 연방의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체첸군은 두 차례의 전쟁으로 전력상 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바사예프를 비롯한 군 지도부가 부상을 당하는 등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렇지만 러시아군도 체첸군의 주력을 완전히 섬멸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수천 명의 체첸군이 남부 산악지대로 자리를 옮겨 러시아를 상대로 한 게릴라전과 테러에 나서고 있다. 체첸군은 2014년에도 얀디마을 부근에서 보병전투장갑차 공격, 그로즈니 자살폭탄 테러 공격을 감행하는 등 제한전쟁 수준의 무력충돌을 이어갔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된 현재 상황에서 체첸군이 대규모 전쟁에 나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러시아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느슨해지고,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 개입되어 있는 러시아가 균형을 상실했을 때, 체첸을 비롯한 카프카스 지역은 2000년대 초 일었던 분리·독립 움직임이 재개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어 보인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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