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4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꽃에 싸인 전사 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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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52

꽃에 싸인 전사

이용백, , 영상화면

이용백, <앤젤 솔저>, 영상화면

화면에 꽃들이 만발해 있다. 너무 화려해서 우리의 시선이 끌려들어가 화면 안에서 울려나오는 새소리에 신경이 머물 때 쯤, 새 소리가 멈추고 바스락, 바스락 움직임이 느껴진다. 화려한 꽃들의 움직임에 예민해질 때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꽃으로 뒤덮인 총을 들고 적군에게 들킬까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꽃밭 속에서 꽃으로 위장한 군인들. 처음엔 낯설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군복이란 전투가 벌어지는 야외 환경에 맞춰서 색과 디자인이 결정되는 복장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숨기고 환경 안에 하나가 된 듯 자신을 위장하는 복장이 군복이었음을 상기해보면 꽃밭 속에선 꽃으로 위장해야하는 것이 군복의 필수적인 기능이다.

화면의 움직임에 익숙해질 무렵, 꽃으로 위장된 총을 들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군인들 바로 앞쪽에 이 군인을 총으로 겨누면서 다가오는 또 한 무리의 꽃으로 위장한 군인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한 무리의 군인들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한 무리의 군인들. 서로 총을 겨누며 점점 더 다가서고 있다. 서로의 총구가 가까워질수록 그 긴장감은 극도로 상승하고, 보는 우리의 심장박동수도 최고도를 향해 간다.

앤젤 솔저(angel-soldier). 작가 이용백의 영상 작품이다. 이 작품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발표되었을 때 세계인들의 집중된 관심을 받았다. 꽃으로 위장한 군인들이 상대방을 겨누면서 조심스럽고도 치밀하게 움직이는 발걸음들이 주목을 끌었다. 꽃의 화려함과 총의 공포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천연덕스럽게 가까워지는 이 화면은 여전히 정전시대를 살아가는 한반도의 정세뿐만 아니라 지금 현실 세계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실제 전쟁을 떠올리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주목되는 점은 이 작품에는 화려한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경쟁과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은 당혹감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바니타스(Vanitas)’라는 단어가 겹쳐졌다 사라지곤 한다. ‘바니타스’는 인생무상을 뜻하는 라틴어다. 세상에서의 삶이 한시적이고 덧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미술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들에 이 바니타스가 많이 표현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흔히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고 말하는 왕관이나 보석, 또 쾌락을 상징하는 술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꽃 등이 한 화면에 표현되어 바니타스를 표현해낸다.

총과 꽃의 역설, 전쟁과 평화를 묻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보이는 화려한 꽃과 총 또한 언젠가 시들어 없어질 덧없는 미(美)라는 점과 함께 소위 영혼 없는 맹목적 추구라는 의미를 지닌 조화(造花)가 빚어내는 공허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람은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고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철학을 떠올리게도 한다. 바니타스의 사상처럼, 이용백의 <엔젤 솔저>의 움직임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삶은 저 매혹적인 꽃처럼 아름답지만 유한하고 한시적인데, 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죽음의 언어를 내뱉으며,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자신이 영생하고자 하는 것일까 묻는 듯하다.

한편 작가는 이 작품의 제목을 <엔젤 솔저>라고 했다. 그는 죽음의 그림자 대신 천사를 호출했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현실의 굴레를 깨는 통쾌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이 작품의 소중함을 응축하고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총을 든 군인과 화려한 꽃의 결합이 주는 통쾌함은 총 싸움이 벌어지는 이 전쟁터를 죽음이 아닌 ‘엔젤’로 드러내는 그의 목소리에서 한 번 더 드러난다. ‘엔젤’의 호출을 통해 결국 꽃은 군인들이 자신들을 위장하기 위해 사용한 단순한 도구만은 아니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여전히 시끄럽다. 군사훈련이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고, 북한의 위협이 지속적으로 보도될 때 불현듯 떠오른 것이 이용백의 작품이었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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