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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 “나를 소중히 여기기, 실패해도 도전하기”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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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15 

나를 소중히 여기기, 실패해도 도전하기

내가 나가는 탈북학교 졸업생 중에 반드시 만나고 싶은 학생이 있었다. ‘이은수! 전국 대입 검정고시 전교 수석에 이어 명문 대학 입학’ 10여 년 전, 탈북 학생으로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은수가 잠수를 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나는 여러 루트를 통해서야 비로소 은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서른 살이 다 되었고,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탈북 학생들이 그렇듯, 은수 또한 자기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지 않았다. 첫 날은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한참 후, 그녀를 다시 만난 건 탈북학교 ‘홈커밍데이’에서였다.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모여 친목도 다지고, 정보도 얻으면서 자신들의 학교를 ‘명문’으로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행사다.

학업, 정체성, 사람들의 시선으로 힘들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은수와 조용한 자리에서 단 둘이 만났다. 은수는 너무 연약한 몸매라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별로 말이 없는 그녀의 눈빛은 고요하면서도 슬퍼보였다. 은수는 나를 약간 경계하는 듯 싶었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긍정적이었다. “반가워요. 만나고 싶었어요.” 내가 먼저 악수를 건네며 물꼬를 트자 은수가 수줍게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작가님은 무슨 글 쓰세요? 전 소설은 체력이 안 되어서 쓸 수 없을 것 같고요. 시나리오나 에세이를 쓸까 해요.” 은수는 다짜고짜 글 이야기부터 치고 들어왔다. 문청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열정과 불안이 깃든 눈빛이었다.

“실은 제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M대학 문예창작과에 다시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명문 대학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 전공을 바꾼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나의 질문에 은수는 한참을 생각한 뒤,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검정고시에서 수석을 했을 때는 잠시 우쭐했지요. 하지만 대학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알았어요. 우월감이 컸던 만큼 절망도 컸어요. 남한의 아이들과 모든 면에서 경쟁할 자신도 없었고요. 그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쏟은 시간과 공부한 양에 비하면 저는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거였어요. 사막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무섭고 외로웠어요. 무엇보다 대학 수업을 제대로 따라잡기가 힘들었어요. 자연히 전 세상을 피해 동굴 안으로 칩거했지요.”

“그래도 주위의 기대치를 생각해서라도 인내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난 의도적으로 다음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아픈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은수는 약간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다.

“학업에 대한 어려움만이라면 아마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보다 힘든 건 정체성에 대한 문제였어요. 고향을 떠나 이곳에 와 정착을 하면서도 구름 위에 떠도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사람들의 시선 또한 힘들 때가 많았고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나날이 지속되면서 저도 모르게 동굴 안에 칩거하게 되더군요. 3년간 그 누구와도 연락을 끊고 지냈어요. 점점 몸도 나빠지고 힘들었지요. 거기다 같이 내려 온 동생이 사고도 많이 치고… 동생 뒤치다꺼리 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탈진되었어요. 아무튼 암흑기였어요.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시작한 일이 글쓰기였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하세요

여기까지 말을 마친 은수의 모습을 보니 정말 안쓰러웠다.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더는 무엇을 묻는다는 것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편한 날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지만, 그 후로 더는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나의 연락을 피했다. 나는 얼마 후, 은수가 학교 후배들에게 남긴 짧은 글 한 토막을 발견했다.

한국에 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지독히도 힘겨운 터널을 지나왔다. 한 때는 끝없이 컴컴한 굴속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며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 그때의 시간은 나에게 흐르지 않는 황하 같았다. 나는 무연히 펼쳐진 시간이란 바다 속에서 끝없이 유영하는 미생물이 되어 허우적거리며 느리게 흐르는 날들을 지겨워하는 인간이었다. (중략) 다시 나를 향해 외친다. 나를 소중히 여기기,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아끼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꿈꾸기. 실패해도 도전하기.

‘실패해도 도전하기’ 이 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은수는 지금도 이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며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은수처럼 탈북 학생 중에는 명문 대학에 들어갔으나 적성에 맞지 않거나, 진도를 따라 갈 수 없어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 것이다. 은수는 ‘홈커밍데이’에서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명문 대학보다는 내가 누구인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세요.” 은수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은 시간들을 후배들은 겪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은수가 자신이 살아 온 평범치 않은 삶을 토대로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쓰는 작가로 우뚝 선 날을 기대해 본다. 은수는 제3자가 결코 쓸 수 없는, 자기만의 글을 쓸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Q. 힘들게 공부해서 남들이 원하는 대학에 오긴 했는데 교수님의 강의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어쩌면 좋을까요?

 A.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비단 친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의 탈북 대학생들이 직면한 현실이에요. 작년 남북하나재단이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탈북 대학생 20% 정도가 휴학을 경험하고, 26%가 자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어요. 왜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휴학 또는 자퇴를 할까요? 2명 중에 1명은 수업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워서 휴학했다고 해요. 그리고 3명 중에 1명은 영어공부를 위해 자퇴했다고 하고요. 아무래도 남북한의 교육과정이 너무 다르고, 탈북과정에서 교육공백이 큰 이유일 거예요.

먼저,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 본인의 적성에 맞는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해요. 혹시라도 명문 대학 입학이라는 외형에만 치중했다면, 진지한 고민 끝에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대학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본인의 적성과 진로에 알맞은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입학했어도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어떤 친구는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모든 수업 내용을 녹음해 반복해서 듣고, 부족한 공부를 채워나갔다고 하네요. 그리고 함께 수업 듣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교수님께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이해를 구하는 것도 필요해요. 사실 이 모든 노력들은 많은 시간과 인내,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해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고생해서 공부 한만큼 분명 원하는 꿈에 가까워지고 있을 거예요.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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