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5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강요배, 상처 한 가운데서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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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 北 53

강요배, 상처 한 가운데서 미래를 묻다

강요배, , 112x193.7cm, 1992, 캔버스에 아크릴

강요배, <한라산자락 사람들>, 112×193.7cm, 1992, 캔버스에 아크릴

강요배의 <한라산자락 사람들>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풍경화다.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한라산자락에 모인 사람들은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소원을 말하고 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거부하며, 한라산자락에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통해 분단이 아닌 통일된 한반도를 꿈꾸는 사람들의 바람을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 강요배는 제주도에 살면서 제주의 역사에 드리워진 분단의 상처와 치유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4·3항쟁 연작을 그려낸 바도 있지만 그를 보다 주목하게 된 이유는 그의 풍경화 때문이다.

그의 풍경화에는 4·3사건으로 대표되는, 분단으로 인한 상처의 역사를 비롯한 제주도 사람들의 삶이 응축되어 있다. 한 개인의 삶으로 상상해 보아도 한 인간의 삶을 한 장의 풍경화로 응축해내는 것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한 개인의 인생에 농축되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풍경화를 보고 있으면 제주도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가슴으로 스며들어 온다. 백 마디, 천 마디의 말보다 더 진한 잔영을 남기는 그의 작품은 회화의 힘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감동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힌트는 강요배의 작업 과정에 있다. 그가 1982년에 쓴 <민들레 – ‘세계’에 대해 생각하기>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작업 과정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여기서 작가의 창작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맞서다가 서로를 향하고, 감응하며 뭉쳐 통일한다

“1단계는 나와 그리려고 하는 대상인 너가 서로 맞서고 있는 대립관계다. 2단계는 나와 너는 분명한 별개이고 나는 너와 거리를 두고 너를 향하고 있다. 지향한다. 3단계는 나와 너가 한 점에서 만나 하나가 되는 즉 합일관계다.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감응한다. 4단계는 나와 너가 맞서 있지도 않고 또한 하나로 만나지도 않으면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뛰어넘는 초월관계다. 5단계는 나와 너가 서로 도와 서로 다르면서 하나로 굳게 뭉쳐진 통일관계.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된다. 상생한다.”

이러한 태도는 주체와 객체를 대립, 분리하는 서구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주객관의 합일 속에서 차원 높은 인식과 실천으로 나아가는 전통적 사고방식과 연관된다. 자신마저 잊는 상태에서 대상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상태에서 그려지는 것은 대상의 외형이 아니라 대상의 기운과 내재적 법칙인 것이다.

전통화론에서는 이것을 각각 숙간, 응신, 물화의 단계로 지칭한다. 그런데 강요배는 이 합일의 단계를 불안해 한다. 그래서 합일의 단계에서 다시 “나와 너가 만나지 않고 서로를 뛰어 넘기를, 합일된 나와 너가 다시 다른 차원으로 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강요배는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듯 현실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작품 안에서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 자유로운 형식 실험을 열어둘 때, 자신이 공감한 리얼리티를 화면에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합일한 후, 다시 이를 초월하여 독립된 객체가 된 나와 대상이 다시 우리로 통일되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강요배의 작품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남과 북도 서로를 더 많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단계를 지난하게 거쳐야 서로 합일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고, 여기서 머물지 않고 다시 서로를 뛰어넘어 합일된 남과 북이 다시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다.

강요배의 풍경화를 다시 본다. 제주도의 상처가 읽힘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낙관적 성찰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회화 작품과 소통은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야 비로소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아쉬운 독자들에게 현재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강요배 화가의 50년 화업 인생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이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린다. 오는 7월 10일까지 열린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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