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6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P, 북한 계정 리트윗 하다 법정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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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 北 54

P, 북한 계정 리트윗 하다 법정에 서다

 

옥인 콜렉티브, , 영상 캡쳐

옥인 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 영상 캡쳐

남북 간의 긴장이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분단’ 문제에 대해 다양한 예술적 상상력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은 여전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발표된 작업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20세기에 작업했던 작가들은 분단의 문제를 한민족 통일의 당위성과 엮어 낸 작업으로 선도했고, 21세기의 작가들은 분단이 만들어낸 다양한 일상의 장면을 포착하여 되묻고, 때론 해체하는 작업들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상에 내재된 분단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있는 작업들은 여전히 소중하다. 옥인 콜렉티브의 <서울 데카당스>는 북한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의 내용을 리트윗하였다는 행위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았던 사건을 소재로 제작한 미디어 영상 작품이다.

<서울 데카당스>는 법정에 전달된 최후진술서에서 출발한다. 사건의 당사자인 P는 북한의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하고 ‘멘션’을 보내는 등 이적표현물을 취득 및 반포했다는 이유로 2년간에 걸친 구속과 수사, 재판의 과정을 거쳐 국가보안법 위반 1심 판결을 받았다.

미술가 옥인 콜렉티브는 P와 P의 트위터를 지켜본 주변인들의 진술이 이 판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가 공판을 위해 작성한 최후진술서의 내용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당시 25세였던 P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개의 트위터 멘션을 ‘반포’하며 또래 친구들과 농담하는 것이 일과였고 북한 트위터의 계정 역시 농담의 소재로 삼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새롭게 북한 인식하는 세대와 제도의 충돌 그려내

옥인 콜렉티브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주장의 자료를 살펴보면서 아마도 법원의 판결은 P의 진술이 문자 그대로 전달되지 못했거나 P의 태도나 몸짓 혹은 심지어 외모의 어떤 부분이 대한민국 법정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서울 데카당스>는 ‘P가 작성한 진술서를 어떻게 하면 원래의 뜻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여 전문적인 연기 지도자의 도움을 요청하고 그 과정을 기록한 영상이다. ‘서울 데카당스’는 실제 P의 트위터 계정이기도 하다.

연기 지도자와 P의 대화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이들의 고민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번 재판을 통해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P는 ‘성욕 감퇴’에 대해 말한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변호사들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이야기했지만 자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으며, 이 법이 자신의 성욕을 감퇴시킨 것에 대한 치명적인 괴로움 때문에 힘들다고 고백한다. 법정에서도 이 괴로움을 이야기했더니 법정이 웃음바다가 되었고, 자신은 그 이후로 점점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북한을 가볍게 바라보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이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국가보안법을 타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법이 자신의 성욕을 감퇴시킨 것에 대한 치명적 괴로움을 차마 법정에서 말하지 못하는 진실과 연극 사이에 존재한다. 지극히 사적인 일상에 드리워진 분단 트라우마의 폭력성이 무심한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북의 정치적 대치 상태가 매우 심각해진 지난 5년 동안 미술계는 남북교류가 화려했고 떠들썩했던 10년 전보다 더 차분하게 우리 안의 분단 문제를 직시하는 미술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흥미로운 화두다. ‘미술과 정치’라는 화두가 지루하다 싶을 만큼 유행하는 세계 미술계의 현상 때문일까? 덕분에 1980년대 그림마당 민이라는 대안공간에서 용기 있게 시작했던 선배들과는 달리 이들 세대는 대표적 미술관이나 상업 화랑, 또 해외에서 관심을 받으며 작업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세계주의 시선에서 한반도를 바라봄으로써 분단 문제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기검열을 해체하고 있고, 다양성과 발랄함을 갖추면서도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이는 점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작업에서 보이는 일상에 천착하는 진정성의 깊이는 보다 높은 수준의 후속 작업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여기서 추신 하나, P의 사건은 이후 2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P는 “‘우리민족끼리’를 팔로우 한 것은 북한을 찬양하기 위함이 아니라 비판하고 희화화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었다.”고 주장했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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