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6월 1일 0

윗동네 리얼스토리 | 망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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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64

망챙이

 

북한 제7차 노동당 대회가 끝난 일주일 후 나는 북·중 접경에 나온 조카와 전화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당 대회도 있었고 해서 북한 내부 군중 동향이 궁금했던 차에 이루어진 조카와의 통화가 내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대화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당 대회 끝난 분위기 어때?” “말도 마, 지금 조직별로 당 대회 보고서 암기에 정신이 나갈 정도요.” “김정은이 세 시간 걸려 내리 읽은 보고서를 몽땅 암기해?” “그러니까….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암송하라 하니 나 같이 머리 나쁜 사람 어디 견디겠소?” “안 하면, 아니 못하면 어떻게 되는데?” “뭐, 할 때까지 계속하는 거지. 아, 몰라. 청년동맹 비서한테 뭘 좀 찔러주고 어물쩍 넘어가야지 별 수 있나?” “그럼 뭐야? 너가 찔러주겠다는 그거 얻으려고 날 호출한 거야? 안 되겠다. 전화번호 바꾸든가 해야지.”

“에이, 그러지 말고 좀 도와줘. 암기 못 하면 나 죽어야 돼. 김정은 시대 청년동맹원이라면 새롭게 등장한 위원장 동지의 사상과 의도를 모르면 안 되니까… 안 된다는 그 말 뜻이 뭔지 알면서!” “야, 너희 그 위원장이라는 사람의 사상과 의도가 대체 뭐냐? 그 보고서라는 거 읽어보니까 새로운 내용은 아무 것도 없던데?” “아참, 거 서울 가더니 삼촌은 진짜 서울 사람 흉내만 내네. 새롭고 낡고가 어디 있어? 암기하라면 무조건 해야지.” “야, 사상과 의도를 안다는 건 말이다. 보고서 중점만 외우면 되지, 토시 하나 빠뜨리지 말고 다 외워야 그게 아는 거냐?” “거참 말이 안 통하네. 삼촌 그거 나보고 말하지 말고 저 평양에 있는 망챙이한테나 말해. 우리도 그렇게 해줬으면 얼마나 좋겠어.”

평양에 있는 망챙이한테나 말해!”

조카의 망챙이란 말에 흥미가 생겼다. “뭐? 망챙이? 너 지금 망챙이라고 했냐? 그 말 참 오랜만에 듣는다.” “왜? 남쪽엔 망챙이가 없어? 사람 사는 곳엔 그런 놈이 있게 마련인데?” “여기가 뭐 북한인 줄 아냐? 여긴 법치국가거든. 망챙이질 했다간 다 골로 가는 거지. 그리고 남쪽은 말이다. 망챙이처럼 놀다간 아니 그 비슷한 인식만 줘도 그 사람의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거야. 철저하게 신용 사회거든.”

북한에는 호수나 강에 망챙이라는 민물고기가 있다. 육식성 동물로 주변의 잔고기는 물론 수틀리면 제 종족도 마구 공격해 배부터 채우는 특성이 있어 주민들은 낚시나 어망으로 어쩌다 망챙이를 잡으면 저도 모르게 치솟는 반감으로 즉시 돌이나 땅바닥에 쳐 목숨부터 끊어놓는다. 그러해서 항간에서는 인간 도리에 어긋나거나 남이야 어떻게 되든 저밖에 모르고 또 헐뜯고 중상모략에 걸핏하면 폭력을 일삼는 안하무인의 인간을 가리켜 ‘망챙이 같은 놈’ 또는 ‘망챙이 제 새끼 잡는다더니’라며 손가락질한다. 아이들도 그물질을 하다가 망챙이가 걸리면 서로 달려들어 재수 없다면서 제가 죽인다고 야단법석이다.

북한 주민들이 젊은 독재자를 가리켜 ‘망챙이 같은 자’라고 부른 건 이미 오래전이라 한다. 남도 아닌 고모부였던 장성택을 처형한 그때부터 주민들이 달아놓은 별명이다. 노동당 제7차 대회 보고서라는 것은 철두철미한 김정은 우상화의 최고봉을 이루려는 독재체제의 포고이고 변화를 바라는 세계나 북한 주민들에게 현재와 다른 어떤 출로든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70여 년간 건재했고 한 나라를 통치했던 노동당이 그래도 36년 만에 여는 대회라면 뭔가 기대할 만한 것을 보여줘야 마땅한데 개회사를 한다고 나선 김정은의 몰골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옷차림부터 36년 전 제6차 당 대회에서 연설하던 김일성을 보는 듯한 광경이다. 개회사 역시 그때와 똑같고 억양도 똑같다. 김일성이 구축한 독재체제를 연장하겠다는 것 밖에 다른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다.

궁하면 제 종족도 잡아먹는 망챙이와 다를 게 뭔가

그래도 그때는 강냉이밥이나마 굶지 않고 먹었으므로 독재가 그런대로 먹혔다. 그런데 지금은 제대로 못 먹고 사는 주민들이 전국 방방곳곳에 널렸다. 김일성이 6·25전쟁이 끝난 이후 전후 복구건설 때 내놓고 시종일관 견지한 ‘자력갱생’이란 경제노선이 낳은 참혹한 결과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 북한에서 소위 최고지도기관이라고 하는 당의 대회에서 다시 자력갱생의 후칭인 ‘자강력 제일주의’를 제창하다니….

현대는 글로벌 시대다. 세계는 북한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멀리 앞서 있다. 살길은 새로운 개혁·개방임이 분명해도 독식하는 체제를 살리기 위해 낡고 고리타분한 자강력만을 운운하니 참으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새 경제노선이라며 전 주민을 상대로 무조건 외우라 강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상문제로 걸고 넘어가 못 살게 통제하니 ‘궁하면 제 종족도 마구 잡아먹는 망챙이’라는 북한 주민들 말이 틀린 게 무엇인가.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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