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7월 1일

기획 | 돈주, 그들이 돈을 버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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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붉은 자본가 돈주, 북한 시장을 흔들다

돈주, 그들이 돈을 버는 법

필자가 지난해 모 신문에 ‘북한의 지방 돈주들이 평양에서 원정쇼핑을 즐긴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북한에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들과 하루 벌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의 시장은 ‘만인평등’의 북한 사회를 ‘빈익빈 부익부’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바로 이 중심에 돈주가 있다.

지난 2011년 북한 농촌지역 의 한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모습 ⓒ연합

지난 2011년 북한 농촌지역 의 한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모습 ⓒ연합

돈장사꾼에서 돈주로 진화 돈이 돈을 낳는다

돈주는 북한의 경제·사회변화를 이용하여, 즉 시장을 잘 활용하여 많은 화폐자본을 축적한 북한의 신흥부자들이다. 이러한 돈주의 등장은 사금융의 발생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1980년대 중반, 전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외화상점이 생겨나면서 거액의 외화와 북한원화를 환전해주는 ‘돈장사꾼’이 발생했다. 당시 ‘돈장사꾼’은 외화상점에서 수입물품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가장 먼저 간파한 아주 약삭빠른 사람들이다. 이 시기 국영 공장·기업소 노동을 통한 생활비(인건비) 외에 여타의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로부터 약 10년 후인 19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시장에 뛰어들게 되지만, 이들 주머니에는 당장 물건을 살 수 있는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식량난 초기 장사행태는 물물교환의 방법으로 이뤄졌고 물건 구입을 위한 현금 마련이 시급했다. 이때 ‘돈장사꾼’들은 현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식량과 물건을 도매로 구입하여 중간상에게 넘겨주는 ‘물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중후반 이들은 환전, 고리대, 물주의 역할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돈주의 원형은 1980년대 생겨난 ‘돈장사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1990년대 중반 이후 기관·기업소·단체들이 외화벌이를 공식화하면서 국가물자로 큰 돈을 번 돈주들도 발생하게 되었다.

2003년 북한은 지역시장을 전국에 도입했다. 이때부터 장사 행위가 합법화되고 물건의 출처를 묻지 않게 되면서 식품가공·의류가공·신발제작·약품조제와 같은 가내수공업, 도매·소매와 같은 합법적 사경제 활동과 밀수·밀주·마약거래·부동산중개 등 불법적 사경제 활동이 확대되는데, 이러한 시장 활동으로 돈을 번 신흥부자들이 출현하게 된다. 사실 북한에서 합법적인 사경제 활동으로 큰돈을 벌기란 어렵다. 북한 돈주의 대부분이 불법적인 사경제 활동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단속에 걸려 본전까지 다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위험성이 크지만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마약, 귀금속과 같은 통제물품의 거래이다. 이들의 불법 장사를 뒷받침한 것도 바로 ‘돈장사꾼’이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돈을 벌려면 그만큼 밑천이 많아야 한다. 고리대로 돈을 빌려 밀수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그것을 밑천으로 다시 업종을 바꾸어 중국 상품을 구입하여 북한 전역에 공급하는 도매상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렇게 돈을 축적한 신흥부자는 돈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결국 돈주(사금융)를 통해 또 다른 돈주(사경제)가 탄생한 셈이다.

피라미드 형태 자금거래 계급분리 현상도 나타나

그러나 최근 들어 새로운 돈주의 탄생은 쉽지 않다. 지난 20년 동안 장사업종이 바뀌고 새로운 업종이 생겨나면서 북한 시장은 비교적 체계가 갖춰지고 있다. 말하자면 수요에 따른 물자공급의 균형이 보장되고 신속한 물자공급과 대금결제를 위한 장거리 물자운송 및 대금결제 시스템까지 갖춰졌다. 때문에 시장을 통한 합법적인 상업 활동을 통해 폭리를 얻기는 더더욱 어렵게 됐다. 그동안 북한 사회에는 돈주와 일반 상인이라는 사실상의 계급분리 현상이 나타났다. 이렇게 사금융과 불법적인 사경제 활동을 통해 돈주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불로소득으로 돈주가 된 사람들도 있다.

북한의 기득권층인 당 간부, 보위원(정보기관), 보안원(치안기관), 검사 등 관료들은 주로 권력을 이용하여 뇌물을 받거나 상인들의 불법 활동을 압박 혹은 묵인하면서 잇속을 챙기고 있다. 당 간부들은 간부사업(인사권), 보위원들은 반동색출, 보안원들은 시장단속, 검사들은 무역회사의 동향파악 등을 통해 많은 불로소득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형 돈주’들은 여타 돈주들과 달리 직접 고리대 등의 사금융 거래를 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일반 돈주들에게 돈을 맡겨 이자를 받거나 친인척들을 내세워 주택건설에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돈을 불리고 있다.

돈주의 또 다른 명칭은 ‘돈데꼬’이다. 이들이 돈을 여기에서 저기로 움직이며 돈을 번다는 의미에서 돈데꼬라고 부른다. 우선 외화가 있는 사람과 외화를 필요로 하는 기업 혹은 개인의 수요를 해결해준다. 이는 1980년대 ‘돈장사꾼’의 역할과 유사하나, 개인 대상의 달러 거래에서 개인과 기업 대상의 달러·인민폐 거래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일반인 돈주들의 역할은 환전에서 대부·예금·주택투자·물자대금결제 등으로 대폭 확대되었다. ‘권력형 돈주’들은 돈주 중에서도 담보가 확실한, 가장 규모가 큰 돈주에게 보유자금을 예금하고 이는 다시 그보다 규모가 작은 돈주들에게 뿌려지기도 한다. 돈주들 간 자금거래 방식은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다. 기업경영권이 확대되면서 경영자금이 부족한 기업들도 돈주의 현금을 빌려 경영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북한에서 돈주는 기업과 대규모의 물주를 움직이는 큰 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이 있어 중국에서의 물자유입, 국내에서 대량 제품생산, 주택건설, 도매·소매 등 시장이 작동하며 결국 시장물가를 움직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돈주는 북한의 시장을 견인하는 세력으로 ‘시장경제’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영희 / 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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