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8월 1일 0

이달의 인물 | 채광묵·채규대, 박동진 2016년 8월호

print

이달의 인물 | 채광묵·채규대, 박동진

일제에 항거한 부자(父子) 의병, 채광묵·채규대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홍주성 전투에서 일제에 항거하다 전사한 채광묵(음력 1850. 7. 15. ~1906. 4. 8.)·채규대(음력 1890~1906. 4. 8.) 부자(父子) 의병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채광묵은 홍주 매평리(현 충남 청양)에서 당시 문장가로 활약하던 채동식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말 일제 하 홍주 지역은 항일 민족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1896년 홍주의병은 김복한을 총수로 반개화, 반침략론을 실천에 옮기고자 홍주 지역 유생들이 일으킨 반일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 투쟁이 관찰사의 배반으로 실패로 돌아가자 채광묵은 상경하여 송수만 등과 도약소를 차린 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에 복수할 것을 청하고 외부대신 이완용 등의 탄핵을 상소하였다.

1901년 8월에는 조정에서 내린 내부주사직을 “국모의 복수를 할 기약도 없는데 영예를 받을 수 있느냐.”며 강하게 거절하였다. 1904년 일본인 나가모리가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자 김기우 등과 함께 반대 통문을 작성하고 일본 공사를 만나 이를 질타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채광묵은 안병찬 등과 의병을 일으키고 전 참판 민종식을 의병장에 추대하였다. 홍주의병은 홍주성을 점령하고 일본 경찰대를 물리쳤다. 참모장의 직을 받고 항전하던 채광묵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명령에 따라 파견된 일본군 보병 제60연대의 공격을 받고 수백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순국했다. 병든 몸을 이끌고 출전한 부친과 함께 항전한 아들 채규대도 홍주성 전투에서 부친과 함께 전사하였다. 정부는 홍주성 전투에서 일제의 침략에 항거한 채광묵·채규대 부자 의병에게 각각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1992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동진,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를 확보하다

국가보훈처는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를 이달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하였다. 1950년 8월 계속해서 남침하던 북한군은 연안 가까이에 있는 일부 도서를 점령하여 아군 함정의 동정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이에 해군은 인천상륙에 필요한 정보수집과 교두보 확보를 위해 각 함정의 승조원들로 구성된 상륙부대(육전대)를 편성,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작전을 전개하였다.

1950년 8월 18일 아군의 함포 지원을 받으며 덕적도에 성공적으로 상륙한 해군 육전대 1소대 1분대장 박동진은 덕적도를 점령하는 데에도 성공하고 뒤이어 8월 20일 새벽 영흥도 탈환작전을 전개하였다. 해군에 있어 영흥도 탈환은 이후의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물러설 수 없는 지상과제였다. 북한군의 은신처를 발견한 분대장 박동진은 부하들의 전진을 중지시킨 후 수류탄과 함께 단독으로 돌진하였다. 두 번째 수류탄을 투척한 순간 탄환이 박동진의 가슴을 관통하였다. 분대장이 쓰러지자 이삼재 부분대장이 분대장을 대신해 또다시 수류탄을 잡고 나아갔다. 얼마 후 집중 사격을 받아 부분대장마저 쓰러지자 전 분대원들은 일제히 돌격하였고 해군은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할 수 있게 되었다. 영흥도 탈환은 이어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