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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흠뻑 젖어도 신났다!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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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85

흠뻑 젖어도 신났다!

 

 여름 풍경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물과 관계된 것들이다. 분수, 폭포, 워터파크, 해수욕장, 강과 호수, 모두 좋다. 그 중에도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분수에 옷이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좋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난다. 북한에서 어렸을 때 분수를 몹시 좋아했다. 누군가가 땅 밑에 숨어 물총을 쏘는 것처럼 신기했던 때도 있었다.

분수를 처음 본 것이 일곱 살쯤 된다. 도시 외곽에서 살았는데 한번은 아버지 손목에 이끌려 도심에 새로 생긴 아동공원에 갔다. 공원 가운데 연못이 있고 그 속에 시멘트로 빚은 두 개의 붕어 조형물이 반쯤 물에 잠겨 마주 보며 입으로 물줄기를 쏘아대는 것이 신기했다. 붕어 속에 누군가 숨어서 호스를 들고 물총을 쏘는 것처럼 생각됐다.

붕어 속에 누가 들었나?

그로부터 며칠 후 유치원에 간다던 내가 ‘실종’되는 일이 생겼다. 유치원에선 오지 않았다고 하고 집에선 유치원에 갔다고 하고. 아버지, 어머니, 고모와 동네 어른들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 그 시각 나는 전에 갔던 아동공원에 있었다. 집에서 그곳까지 시내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비를 낼 돈이 없어 어른들 다리 사이로 숨어 날쌔게 탔다.

공원에서 나처럼 혼자 떠도는 아이를 만나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리곤 연못에 떠다니는 물고기에게 돌멩이를 던져도 보고 분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도 안 되는 해석을 붙이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인적이 뜸한 사이 연못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붕어 조형물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기웃거리며 두드려 보고 하다가 아예 조형물을 말처럼 타고 붕어 입으로 나오는 물줄기에 손을 대며 장난질을 했다.

그러다 공원의 관리원 할아버지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물에 흠뻑 젖은 우리를 혼냈다. 집은 어디며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 직장은 어딘지, 누가 먼저 연못에 들어가자고 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곤 아이를 찾아가라고 아버지 직장에 연락했다. 그날 저녁 파리채가 부러지도록 얻어맞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심사가 이상하게 삐뚤어져 버린 것인지, 이후에도 그런 사고를 여러 번 반복했다. 도심 공원에 인공폭포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고 평양에 사는 이모에게 갔을 때도 그랬다.

평양에서 본 분수는 지방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게 멋있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도 처음 봤고 만수대예술극장 주변에 넓게 조성된 분수광장에도 혼을 뺏겼다. 빨갛고 파랗고, 형형색색의 불빛과 어울려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도 변하는 분수들의 조화가 너무 신기하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평양에서도 호기심과 장난기를 참지 못해 종국에는 또 사고를 쳐 ‘촌놈’ 소리를 들었다.

현재의 북한을 생각하면 그 시절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분수 자체가 별로 없고 있는 것도 전기가 없어 무용지물이 됐다. 평양에는 몇 곳 가동하지만 정상적이지 못하고 대개 명절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분위기 띄우는 정도다. 평양과 도청 소재지들을 제외한 중소도시와 시골 아이들은 분수를 TV에서나 봤을 정도다.

그래도 수십 년 전에는 농촌에 가면 넓은 들에 물보라를 날리며 무지개를 피우던 분수식 밭관개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볼 수 없다. 전기가 부족하고 장치가 낡아 어느 구석에 처박혔는지도 모른다.

전기가 없으면 분수도

남한에 와보니 과연 경제력에 걸맞게 분수공원도 많고 가지각색의 분수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어렸을 때 내 혼을 뺏던 평양의 신기한 분수들보다 훨씬 더 멋지고 신기한 것이 많다. 몇 해 전 여수엑스포에 갔을 때 타원형으로 높이 세워진 분수식 장치로 사람의 얼굴까지 만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생각된다.

북한이 남한보다 분수에서 우월한 것이 있다면 주체사상탑 바로 앞 대동강 한 가운데 설치된 분수의 물높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니 북한이 분수 물높이를 올리는 기술은 앞서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껏 남한에서 만들지 않아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그쯤은 금방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직 안 만든 것은 그것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나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남한에서 그 많은 분수들을 가동시키자면 전기와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 살 땐 비용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전기가 없으면 분수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에 기분이 씁쓸했다. 그래선지 지금은 분수에서 나오는 물까지 아깝게 느껴진다. 북한에서 물 고생, 전기 고생 하던 생각을 하면 정말 모두 다 아깝다. 분수만을 비교해도 이렇듯 남북의 격차가 보인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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