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9월 1일

통통 인터뷰 | “북한 음식 특유의 담백한 맛 살려보고 싶어”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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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인터뷰 | 안미옥 전 북한전통음식점 류경옥경영인

북한 음식 특유의 담백한 맛 살려보고 싶어

 

안미옥 전 북한전통음식점 ‘류경옥’ 경영인

안미옥 전 북한전통음식점 ‘류경옥’ 경영인

Q. 북한에서 삶은 어떠셨나요? 탈북을 결심한 계기와 여정도 궁금해요.

A. 평양미술대학에서 조선화(동양화)를 전공하고 함흥예술대학 조선화 학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소조활동으로 예능이 발전되어 있는 북한에서 예술 분야의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괜찮은 축에 속했어요. 남편도 북한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니, 사회적 명예도 있었죠. 탈북하기 전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었는데, 당시는 오로지 배급으로만 생활했던 소위 지식인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저희도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면서 하루하루 견뎠죠. 그러다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던 2004년도에 남편이 먼저 탈북했습니다. 저는 1년 8개월 후에 남편이 보낸 브로커를 통해 딸과 함께 남한에 오게 됐죠. 여정은 굉장히 짧았어요. 탈북한지 13일 만에 한국에 도착했죠. 함흥에서 국경으로, 국경을 넘어 중국 다롄으로, 다롄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브로커가 인도해주는 대로 오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쉽고 빠르게 한국 땅을 밟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지불한 브로커 비용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있더라고요.

Q. 남한에 정착해서 음식점을 두 개나 운영하셨네요. 여러 업종 중에서 특히 요식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처음에는 다른 탈북민들이 하는 대로 정착금을 받기 위해 컴퓨터 학원을 다녔어요. 수업을 들으면 지원금을 받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가정이 있는 사람은 지원금 액수가 매우 적어서 차비와 식비를 계산해보니 지원금을 초과하더라고요. 학원이 끝나고 3시부터 12시까지 그 주변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마치고 집에 오면서 지하철이 끊기는 것을 경험하고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체질에도 집안 사정에도 맞지 않는 학원을 그만두고, 취직을 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잘 되지 않더라고요. 그 때 <벼룩시장>을 보다가 직업소개소에 찾아가게 됐고 모텔, 주방, 파출부 등 안 해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했어요. 북한에서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보다 못한 현실에 우울증도 겪고 많이 힘들었죠. 남한 사회를 피부로 경험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전향적인 생각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생각난 것이 요리였어요. 외가와 친가 모두 북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셨거든요, 해방 직후에 김일성이 저희 외할머니 냉면집에서 식사를 하고 갈 정도로 냉면으로는 북한에서 손꼽는 맛집이었습니다. 피는 못 속이는 것 같아요. 저도 할머니를 닮아 요리에 일가견이 있거든요. 북한에서 제가 하는 요리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었던 장면이 떠올랐고, 음식점을 개업하기로 마음먹었죠.

북한전통음식점 ‘류경옥’ 한정식 상차림

북한전통음식점 ‘류경옥’ 한정식 상차림

Q. 음식점을 직접 경영하면서 여러 애로 사항을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경영 스토리가 궁금해요.

A. 한국에서 음식점을 개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손맛’뿐만이 아니었어요. 그 외에 행정적인 절차를 포함해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죠. 간장을 하나 고르려고 해도 제품이 많아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일일이 기록해서 익히고 드디어 을지로에 순댓국밥집을 개업하게 됐습니다. 밑천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지인에게 2천만 원을 빌려 가게를 시작했죠. 입지가 썩 좋지 않은 외딴 골목에 위치한 가게였지만, 밑반찬 하나부터 직접 만들면서 정성들인 음식을 손님상에 내었습니다. 운영 초기에는 속상한 일이 많았어요. 탈북민이 운영하는 가게라는 이유로 이상한 방법으로 거부감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제가 할 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니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어요. 빚을 갚아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었죠. 그렇게 2009년에 모든 빚을 청산했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그 때 느꼈어요. 그런데 하루에 두 시간씩 잠을 자면서 식당을 운영하니 몸이 안 좋아졌어요. 출근을 하루 안 하니까 손님들이 제가 만든 음식이 아닌 것을 바로 알아차리시더라고요. 결국 건강을 위해서 휴식을 선택했고 마침 좋은 기회에 식당의 운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했습니다.

‘류경옥’은 2010년도에 ‘NK지식인연대’의 권유로 시작했습니다. 순댓국밥집을 운영하면서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음식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남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북한에도 한정식이 있어요?”였거든요. 류경옥을 운영하면서 북한 전통 한정식을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죠. 가게 이름은 제가 지었는데요, ‘류경’은 ‘평양’의 옛 이름 입니다. 그리고 ‘옥(屋)’자는 ‘한옥(韓屋)’을 가리키는 데서 따왔어요.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에 1년간 직원 월급의 80%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탈북민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운영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죠. 류경옥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탈북민들과 함께 일하면서 생기는 마찰이었어요. 공동체에 책임자를 두지만 계급이 없이 평등하게 지내도록 하는 북한 사회 특성상 사람들이 고용주나 고용인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예요. 제가 지시한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자존심을 세우고 수긍을 하지 않으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Q. 현재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A. 논문 주제는 북한 미술이에요. 대학에서 6년 동안 공부하고 교단에서 20년 넘게 미술과 관련된 길을 걸어왔는데 손을 놓기가 아깝더라고요. 여태껏 쌓아온 이론적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 북한 미술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논문 주제를 정하게 됐습니다. 기존에 한국에 있는 ‘북한 미술’에 대한 논문을 읽어 보니 내용이 많이 부실해 전공자로서 책임감도 있었고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도 ‘북한 미술’에 대해서 정확하게 논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자부심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주변 사람들은 제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아서 무엇에 쓰냐며 걱정도 해요. 당사자인 제 자신도 때로는 보이지 않는 미래가 불안할 때도 있지만, 제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더라고요. 무슨 일이든지 일단 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뒤돌아보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로 했어요. 그러다보면 길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남한에 정착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바쁘게 달려오신 것 같아요. 앞으로 삶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가요?

A. 미술은 제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영역이지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북한 요리 연구예요. 북한 음식은 남한의 전라도 음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내는 담백함이 특징이거든요. <KBS>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북한 음식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 음식을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제2의 ‘류경옥’은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적한 마을에 북한 전통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식당 한편에는 그림을 그리는 공간도 소박하게 마련하고 싶어요. 미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상상하고 그려볼 수 있는 지금도 무척 만족스러워요. 머릿속에서 그림이 완성되면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성시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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