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9월 1일

장용훈의 취재수첩 | 태영호 주영국 북한공사 망명 어떻게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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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의 취재수첩

태영호 주영국 북한공사 망명 어떻게 봐야?

 

지난 8월 17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 관련 보도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

지난 8월 17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 관련 보도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가족과 함께 최근 한국에 들어왔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부인, 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며 “이들은 현재 정부의 보호 하에 있으며 유관기관은 통상적 절차에 따라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입국 시기는 8월 상순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태영호 공사는 가족과 함께 10년 동안 영국에 거주해왔고, 아내 등 가족과 함께 대사관이 있는 런던 서부에서 몇 주 전에 자취를 감췄다. 이 방송의 서울·평양 특파원인 스티브 에번스는 그와의 개인적 친분을 소개하는 글에서 태 공사가 올 여름에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복귀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태 공사의 막내아들과 같은 반 친구인 루이스 프리어(19)의 말을 인용해 이들 가족이 7월 중순께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프리어는 자신의 친구인 태 공사의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주재 지역이던 덴마크에서 태어났다가 북한으로 돌아간 후 4년 전 영국으로 왔고,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태 공사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 고위 간부 자녀들과 함께 중국에서 유학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으며, 귀국해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고 당시 탈북 외교관들이 전했다. 덴마크어 1호 양성 통역(김정일 전담 통역 후보)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했으며 1993년부터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일했다.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바로 귀국해 유럽연합(EU) 담당 과장으로 승진했다. 태 공사는 200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 외교 무대에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지배계층 내부결속 약화되고 있다고 판단

정부는 태 공사의 입국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통일부 대변인은 태 공사의 한국 망명 의미에 대해서 “북한의 핵심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 더 이상 희망이 없고 또 북한 체제가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지배계층의 내부결속이 약화되고 있다는 판단을 해본다.”면서 북한 엘리트층 탈북이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외교관의 탈북은 있었고 고위층의 한국행도 새삼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정부의 희망이 현실이 될지는 미지수다. 1990년대 망명한 고위층 탈북자들은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의 연쇄 붕괴를 목격한 데다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이 계속되면서 생긴 체제 불안 및 회의로 인해 탈북을 결심한 사례가 많았다. 2000년대 들어 북한 체제의 안정 등으로 고위층 탈북 사례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기는 했지만 외화벌이 종사자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탈북한 북한 고위층은 1991년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의 1등서기관 고영환 씨, 1994년 강성산 정무원 총리의 사위 강명도 씨, 1994년 조명철 김일성대학 교수, 1995년 북한군 상좌(남한의 중령~대령의 중간) 최주활 씨, 1995년 북한 대성총국 유럽지사장 최세웅 씨 일가, 1996년 현철해 북한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대장)의 조카인 잠비아 주재 대사관의 현성일 서기관, 1997년 노동당 황장엽 국제담당 비서, 1998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북한대표부 김동수 서기관, 2000년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홍순경 참사관 등이 있다. 또 1990년대는 동유럽에서 공부하던 북한 유학생들의 탈북 러시(rush)도 있었다. 1997년 장승길 이집트 대사와 그의 형 장승호 프랑스 경제참사관, 1999년 독일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김경필 서기관 등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2000년대 들어서며 북한 체제가 비교적 안정되고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고위층 탈북은 급격히 줄었다. 북한 군수공업 부문에 종사했던 70대의 전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외무역과 외화벌이 부문에 종사하던 장·차관급의 자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지방책임자 등이 있었다.

대외무역과 외화벌이 부문 고위층 종사자들의 탈북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금전 문제로 조사를 받는 경우 단순히 개인비리 조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북한이 체제 단속을 위한 기강확립 차원에서 남한 및 외국과 연루된 간첩 혐의 등을 적용해 가혹하게 처리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09년 탈북한 중국 상하이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대표의 부인 이 모씨는 남편이 2~3년 전 부하 직원의 밀고로 간첩 혐의를 받아 고초를 겪으면서 탈북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이탈 가속화 및 체제 붕괴 전망은 과도한 해석

최근에는 자녀교육 문제 때문에 탈북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방 세계에서 가족들과 근무하며 자유로운 문화와 교육에 자녀들이 노출된 상황에서 평양으로 돌아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발길을 남쪽으로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통일부 대변인이 태 씨의 탈북 동기에 대해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이 북한 주민들의 체제 이탈 가속이나 김정은 체제의 급속한 이완을 통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과도해 보인다. 올해 들어 7월말까지 국내 입국한 탈북자는 815명(잠정치)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6% 증가했다. 그럼에도 2천 명을 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 탈북민이 가장 많았던 2009년에는 2,914명까지 늘었다가 계속 하락세에 있으며 2015년에는 1,276명에 그쳤다.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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