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9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해장국을 팔아?

print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해장국을 팔아?

 

북한에 살 때 해장국이라는 메뉴가 있는 식당에 가본 기억이 없다. 남한에 와서 처음 식당에서 해장국을 파는 것을 봤다.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고 다음날 점심 때 일어났는데 친구가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해장국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근처에 해장국 잘하는 식당이 있다는 것이다. ‘해장국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도 ‘가보면 알겠지.’싶어 친구를 따라나섰다.

친구가 메뉴판을 들고 무슨 해장국을 먹겠냐고 물었는데 먹어본 적이 없어 “아무거나”라고 대답했다. 선지해장국, 콩나물해장국, 북어해장국 등이 메뉴판에 보이는데 그 중에 먹어본 메뉴가 없었다. 친구는 선지해장국을 주문했다. 나는 선지가 무엇인지 상상하다가 얼핏 선지피가 떠올랐다. ‘아, 짐승 피로 국을 끓인 모양이네.’라고 생각했고 나온 음식을 보니 예상이 맞았다.

선지해장국 짐승의 피로 국을 끓인다고?

북에선 짐승 피로 끓인 국을 먹어보지 못했다. 짐승을 잡으면 피를 버리거나 순대를 만드는 데 썼다. 피를 끓여 먹는 건 소뿐이다. 소 피를 끓여 순두부처럼 응고된 것을 숟가락으로 퍼먹었는데 맛있었다. 다른 짐승의 피를 그렇게 해봤더니 비려서 먹지 못했다. 특히 양의 피나 염소 피는 특이한 냄새가 났다. 짐승 피를 약으로 마신 적은 있다. 노루 피, 사슴 피, 왜가리 피, 오리 피를 날 것으로 마셨는데 별로 비린 느낌이 없었다.

사냥을 가서 노루나 사슴을 잡으면 심장이 멎기 전에 목 부위 동맥을 끊고 거기에 빨대를 꽂아 빨아 먹었다. 왜가리와 오리는 대가리를 단칼에 자르고 목에서 뿜어 나오는 피를 대접에 받아 마셨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야만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그때는 식기 전에 마셔야 약이 된다며 너도 나도 마시겠다고 입을 들이 댔다.

그런데 남한에 와보니 피로 해장국을 끓여 파는 것이 생소했다. 지금은 기회가 되면 가끔씩 먹지만 술을 해장할 목적이면 콩나물해장국이나 북엇국을 먹는다. 선지해장국이나 뼈다귀해장국은 오히려 술 욕구를 더 자극해 다시 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예 술을 마실 때 선지해장국을 안주로 먹어봤는데 차라리 그게 좋았다.

북한에는 남한처럼 다양한 해장국 레시피가 없다. 그저 고추장을 넣고 끓인 시레깃국이 전부였다. 하기야 먹거리가 이것저것 많아야 해장국도 끓여먹지, 선지든 뼈다귀든 북어든 귀하지 않은 게 없었다. 급할 땐 끓는 물에 고추장을 풀어 그릇째로 입에 대고 마셨다. 지금도 그런 방법을 쓰곤 하는데 해장 효과가 좋다. 다만 고향에서 먹던 맛과 다르다는 것이 아쉬운데, 우리 고향은 고추 맛이 좋고 고추장을 잘 담그기로 소문난 곳이라 그 맛이 잊히지 않는다.

다른 지방은 간장이 우선이지만 우리 고향에는 간장을 담그는 집이 거의 없다. 간장은 없어도 고추장이 없으면 안 된다. 보신탕을 끓일 때도 고추장을 풀어 넣고, 시금치 반찬을 만들어도 소금이나 간장 대신 고추장을 쓴다. 단연코 말하건대 해장국을 끓여먹든 그대로 풀어먹든 술 해장에 좋은 것을 꼽으라면 나는 지금도 우리 고향 고추장을 첫째로 꼽고 싶다.

속풀이엔 북한판 부대찌개 와리와리가 단연 최고

고향에서 술안주가 신통치 않을 때 먹던 것 중 한 가지가 일명 ‘와리와리’였다. 남한에서 먹는 부대찌개와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사전에도 없는 음식인데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렸다. 큼직한 냄비에 고기, 밥, 채소, 김치 등을 어감 그대로 와리와리 집어넣고 고추장을 풀어서 부글부글 끓여내면 완성된다. 이 안주가 있으면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탈이 없었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 속이 좀 불편하면 또 끓여서 술 한 잔을 반주해 먹었다. 그런데 이것도 술 생각을 자극하는 안주여서 해장을 하려다 도로 술에 취하는 일이 많았다.

북한 사람들은 술 마실 때 ‘선주후면’을 말하곤 한다. 문자 그대로 술을 먹은 후 면을 먹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취기가 얼근히 올랐을 때 시원한 물냉면을 먹으면 뒤끝이 좋다. 냉면 대신 온면을 먹어도 좋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술을 마시고 냉면이든 온면이든 먹고 난 다음 날엔 해장할 필요를 별로 느껴본 것 같지 않다. 북한에서는 이 문화로 인해 잔칫집에 가도 술을 대접한 후엔 국수 그릇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북한의 이런 문화 때문에 해장국이 발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남한에 와서도 ‘선주후면’을 할 때가 있는데 확실히 술 먹은 후 속이 좋다. 수육을 안주로 술을 마신 후 기분 좋게 냉면을 먹으면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선주후면’을 하려고 서울에 있는 평양 냉면집들을 거의 다 돌아봤다. 그리고 요즘은 의정부, 구리, 남양주 쪽으로 진출하는 중이다.

빨리 통일이 되어 북쪽에 있는 맛집을 탐방하고 싶다. 평양의 ‘옥류관’도, 함흥의 ‘신흥관’도 가고 싶다. 개마고원 여인들의 훈훈한 인심이 녹아든 ‘농태기술’에서 감자농마국수를 곱빼기로 시켜 놓고 서울 살던 얘기로 밤을 지새울 날이 언제쯤 올까?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