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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음주운전 천태만상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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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88

음주운전 천태만상

남한은 일상에서 음주운전에 대해 늘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성인만 되면 거의 다 면허를 취득하고 운전기사가 되는 셈이니 음주운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자동차 대수가 적은 북한에선 음주운전이 전업 운전기사에게나 해당되지만 남한은 다르다.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친구와 술 한 잔 나누자고 해도 음주운전이 걱정돼 싱겁게 맨밥만 먹고 헤어질 때가 있다. 부득이 마신다면 취하지 않을 정도만 마시고 커피숍이나 다른 적절한 장소에서 술기운이 가실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장시간 무료주차가 가능하지 않으면 주차요금이 부담스러워 망설이게 된다. 밤이면 대리운전이라도 부르겠지만 낮에는 어쩔 수 없다. 그럴 땐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음주운전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양심에 찔려 그만두곤 한다. 회식이 끝난 밤에도 대리운전 이용이 어려울 때가 있다. 어떤 지역은 가겠다는 대리기사가 없어 요금을 더 주는 조건으로 불러야 한다.

성격 급한 사람은 투덜대며 음주운전을 감행하기도 하는데 아주 운이 좋은 이들은 단속에 걸리지 않기도 한다. 알고 보면 음주단속이 빈번한 위치와 경로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울고 갈 정도로 골목길까지 잘 아는 사람을 봤는데, 음주단속이 있을 만한 곳을 요리조리 피해갔다는 무용담(?)을 들으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참 재밌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집에서 열심히 음주운전에 단속되지 않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구입했는지 경찰들이 사용하는 음주측정기를 술 마신 상태에서 이렇게 저렇게 불어보며 음주량이 어떻게 나오는지 시험을 거듭했다. 그렇게 해서 되겠냐고 물으니 “그럼요.” 하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말로 그는 음주측정에 걸리지 않는 비법을 찾은 것 같다. 자신의 음주 상태를 정확히 확인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그가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재수가 없어서 다른 길로 갔더라면

여러 번 단속을 당하고도 음주운전 버릇을 고치지 못해 교도소에 간 사람도 봤다. 그런데 출소 후 만나보니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저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 “다른 길로 갔더라면 걸리지 않았다.” 등의 한탄뿐이었다. 처벌을 받고도 이 정도니 음주운전에 버릇을 들이면 도박을 끊는 것만큼이나 고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최근 연간 음주운전 적발 건수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느린 감은 있지만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아져 가고 있다. 단속기준이 강화되고 처벌수위가 높아진 효과일수도 있겠지만 시민의식이 나날이 성숙되어 간다고 판단된다.

북한에선 어떨까? 북한 역시 음주운전은 불법이다. 문제는 법과 규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 북한에서 음주운전 단속은 교통보안원의 ‘느낌’에 달려있다. 술을 많이 마셨든 적게 마셨든 교통보안원이 보기에 술을 마셨다고 판단되면 걸리고, 마셔도 티가 나지 않으면 무사하다. 술을 마시고도 얼굴색이 잘 변하지 않는 운전사는 괜찮고,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사람은 걸린다. 교통보안원은 운전하는 모양새가 이상해 보이면 무조건 차를 정차시키고 술을 마셨거나 졸았는지 조사한다. 음주운전이 분명하면 면허증을 회수하고 차량을 보안서로 견인한다. 그리고 차량 소유 기관에 통보하고 벌금이 부과된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거나 기물을 훼손하지 않았으면 운전기사에 대한 형사 처리는 없다. 다만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대신 운전기사는 직장에서 행정적·조직적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반드시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운전기사 직업은 북한에서 인기가 높은 일자리기 때문이다. 신분은 낮지만 먹고 살기 괜찮은 직업이다. 그러니 면허가 취소되고 운전대를 놓으면 생계가 위태롭다. 때문에 운전기사들은 필사적으로 자리를 지키려 한다. 인맥을 동원하고 뇌물을 바친다. 권력과 뇌물이면 다 통한다.

북한 교통보안원, 음주단속하고도 늑장부리는 이유?

흔히 교통보안원들은 음주운전 차량을 단속하고도 뇌물을 바라고 즉각 처리하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어떻게 나오나 시간을 끌며 지켜보는 것이다. 차량과 면허증을 회수한 후에도 조사 서류를 한동안 서랍에 넣어두고 사건처리를 마무리 하지 않는다. 조금 기다려보면 운전기사 본인이나 직장에서 뇌물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태가 이렇다보니 운전기사들이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단속돼도 교통보안원에게 차에서 기름을 조금 뽑아주면 웬만해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통보안원들도 그렇게 사는 데 재미를 들였다.

남한에서 보기엔 황당하겠지만,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과 처벌 정도가 이렇다보니 아예 술과 안주를 차에 싣고 다니는 운전기사들도 있다. 운전 중에도 술 생각이 나면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한잔씩 마시고 갈 정도다. 다행인 것은 음주운전이 이렇게 예삿일로 되었는데도 사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워낙 길가에 차가 적어 사고 날 일이 별로 없다. 주차 걱정도 없으니 힘들면 아무 곳에나 세우고 쉬고 가면 그만이다. 차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바짝 붙어다니는 남한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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