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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칼바람 속 운전사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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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70 

칼바람 속 운전사

 

어느새 추운 겨울철이 성큼 다가왔다. 북한엔 한 번 눈이 내리면 그대로 쌓여 다음해 4월이 될 때까지 녹지 않는데 눈이 펑펑 내릴 때는 기온이 마치 봄날처럼 푸근하다가도 일단 멎는 순간부터 쌩쌩 칼바람이 불어친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아우성치는 바람에 ‘싸구재’란 이름을 붙여 ‘싸구재 바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싸구재’라는 말은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 말하자면 정신이상자처럼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땔감이 없어 방을 덥히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칼처럼 불어오는 찬바람이 반가울 이유가 없다.

북한 주민들 중에 늘 도로와 함께 사는 운전사들의 경우는 어떨까. 밤새 기온이 내려가면 도로에 내린 눈이 얼어 빙판으로 변하는데, 그 위로 차들이 다닌다. 한국처럼 제설차가 앞서고 일부 지역은 약을 뿌려 도로 위 눈을 말끔히 제거하는 일이 북한에서는 없다.

또 내린 눈의 양도 만만치 않다. 밤새 분 바람에 의해 눈이 날려간 일부분만 도로 윤곽이 드러날 뿐 나머지는 도로인지 빙판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 천지다. 이런 길 위로 차들이 달린다. 달린다기보다 그냥 다닌다고 해야 더 정확한 말인지 모른다. 속도 면에서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과 별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도로에선 한국의 도로처럼 차가 정체되는 일이 없고 쉴 새 없이 다니지 못해 죽치고 앉아 지켜보지 않으면 겨울철에 자동차 보는 것이 힘들다.

열악한 도로 사정 고장나면 운전자가 셀프 수리

2003년 겨울에 필자가 탈북해 중국 옌볜에서 포장된 도로 옆 물도랑 청소 작업을 하는데 같이 일하던 조선족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북한 형님. 저 길로 자동차가 몇 분에 한 대씩 지나가는지 알아요?” 내가 모른다고 하자 이 친구가 하는 말이 “5분에 한 대씩 지나가오. 대단하지? 중국도 이젠 경제가 발전해 차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도로도 이렇게 어지러워지는 게요.”

그때 나는 언뜻 북한 도로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거기에 비하면 5분에 한 대씩 지나가는 옌볜 도로가 정말 너무 대단해 보여 고개를 끄떡끄떡했다. 그런데 1년 후 한국에 와 보니 5분이면 100대도 더 지나가는, 아니 아예 주차장처럼 한곳에 몰려 빠지지도 못하는 정도여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겨울철에도 한국 도로엔 차 정체가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필자도 이젠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한국 국민이라 길을 가다가 도로가 정체되면 자꾸 그 때 일이 떠올라 지루하기보다는 흐뭇한 감정이 먼저 자리 잡는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가 대단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속도로만 봐도 얼마나 많은가.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해 호남선, 중부선, 강원선, 서남선 도시고속도로 등이 거미줄처럼 늘여져 있는 반면, 북한은 6개의 고속도로, 즉 평양을 중심으로 평양-향산, 평양-원산, 평양-남포, 평양-개성, 평양-강동, 원산-금강산 도로밖에 없다.

가장 먼저 건설된 평양원산고속국도(1978년 완공, 총 길이 172km)는 이젠 노후돼 비포장도로로 전락할 만큼 낙후되었다. 도로가 망가져도 복구할 재력이 없어 최고 시속을 내도 80km지만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구간마저 점점 사멸되어 간다. 고속국도 외의 일반국도는 모두 비포장 길이라 운전사들은 낙후된 고속국도나마 들어서는 걸 매우 선호한다. 일반도로에선 시속 30~40km로 벌벌 기어 다니지만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70~80km로 달릴 수 있으니 그 속도감에 너무 신나 그런 것이다.

한편 북한에서는 운전사들을 가리켜 ‘깜둥이’, ‘기름때덩어리’로 부르기도 한다. 북한에서 자체로 생산하는 승리58형 화물트럭 운전사들은 늘 기름때로 반질반질한 옷을 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새 차를 배당받아도 열악한 도로 위를 일 년쯤 다니다보면 그 다음은 여기저기 기름 새지 않는 차가 없는데, 고장 나면 카센터나 공업사 등 서비스 업체가 없어 운전사가 스스로 수리한다.

이러한 까닭에 북한에선 운전면허를 따려면 운전만이 아닌 수리 능력까지 갖춰야 면허를 딸 수 있다. 무슨 고장이 그렇게 잦은지 운전사들은 차만 서면 방석만한 모포 조각을 가지고 차 밑에 들어간다. 기름이 새는 곳이 어딘지 살펴보고 보이면 이를 틀어막고 추진축을 연결한 고정 볼트를 스패너로 조인다. 사람의 힘으로 조이다보니 얼마쯤 달리다 보면 자꾸 나사가 풀려 제때에 조여 주지 않으면 큰일이 나기도 한다.

양복에 넥타이 매고 운전해보는 것이 소원

장거리를 가려면 차 적재함에 기름을 담은 예비 기름통을 싣고 다녀야 한다. 길 옆에 휴게소나 주유소도 없기 때문이다. 기름이 떨어지면 기름통 뚜껑을 열고 호스를 꽂아 입으로 빨아 올려 자동차 주입구에 대야한다. 그때 너무 힘을 주어 빨면 휘발유나 경유가 왈칵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하도 단련돼 일상사처럼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러니 옷에는 기름이 튀어 운전사라고 하면 기름때덩어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옷도 겨울이면 추워서 빨아 입을 처지도 안 돼 항상 찌들찌들 기름 배인 채로 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 있을 때 한 운전사는 자신의 소원이 딱 한 가지라고 했다. 양복에 넥타이 매고 운전해보는 것. “바빠도 옷 좀 빨아 입지?” 하고 눈살을 찌푸리니 이렇게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그런데 지금의 북한 실정에서 이는 희망일 뿐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넥타이 맨 북한 운전사들이 질 좋은 한국산 자동차를 타고 포장된 넓은 도로 위를 마음껏 운전할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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