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12월 1일

기획 | ‘리틀 베를린’ 뫼들라로이트의 과거와 현재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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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통일독일의 저력, 그들이 분단을 기억하는 법

리틀 베를린뫼들라로이트의 과거와 현재

 

1990년 무너진 장벽 사이를 통과해 서독 측 뫼들라로이트로 나오는 주민들

1990년 무너진 장벽 사이를 통과해 서독 측 뫼들라로이트로 나오는 주민들

독일이 통일된 지 올해로 26년이 되었다. 통일과 관련된 유산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분단을 겪지 못한 세대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필자는 여기서 독일 분단 시절의 상징으로 남겨져 온 뫼들라로이트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뫼들라로이트는 하나의 마을이 과거 동·서독으로 나뉘었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인들은 뫼들라로이트를 ‘작은 베를린’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뫼들라로이트는 작은 규모의 마을인데, 특이하게도 마을을 가로지르는 ‘탄바흐’라는 실개천 하나로 동·서독의 경계가 되었다. 물론 이는 냉전시대에 갑자기 형성된 것은 아니다. 수백 년 전부터 탄바흐 하천은 바이로이트 변경백(邊境伯)령과 로이스 슐라이츠 백작령의 경계선이기도 했고, 근대에 접어들어서는 튀링엔 주와 바이에른 주로 나뉘는 구분선이기도 했다.

마을 가로지르는 실개천 탄바흐가 동·서독 국경선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뫼들라로이트 마을은 일종의 ‘분단’ 상태를 지속했지만 주민들에게는 단순히 행정구역의 의미였을 뿐,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구속이나 속박도 없는, 그야말로 지도 상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상황은 바뀌게 된다. 1945년 튀링엔 주 뫼들라로이트가 소비에트령으로 귀속되어 소련군이 주둔하기 시작했고, 바이에른 주 뫼들라로이트가 미국령으로 들어가 미군이 관할하게 되면서 바야흐로 고통스러운 분단이 시작된 것이다.

1952년 동독에서 내독(동·서독) 간 경계선에 장애물을 설치함에 따라 뫼들라로이트 탄바흐 하천을 경계로 나무장벽이 세워졌고 1958년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었으며 급기야 1966년에는 콘크리트 장벽(길이 700m, 높이 2~3m)까지 쌓이면서 마을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서독 지역 뫼들라로이트는 ‘분단의 현실이 가장 적나라하게 투영된 작은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면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당시 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 등 유명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잇기도 했지만 동독 지역 뫼들라로이트의 상황은 엄혹하기 그지없었다.

동독 지역 뫼들라로이트 주민들이 서독 쪽을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대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은 국경수비대의 감시 속에서 철저히 봉쇄되었다. 베를린 장벽과 흡사한 콘크리트 장벽은 금속 격자형 울타리를 덧대어 견고해졌고 급기야 1983년에는 자동발사장치까지 설치되어 발포권을 가진 수비대에 의해 통제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통일이 되어 함께 살고 있지만 마을 양쪽에 살다가 분단으로 인해 헤어졌던 한 형제의 이야기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형은 동독의 통제 아래 있던 뫼들라로이트에 살았어요. 분단 당시에도 동서독 주민의 왕래가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매우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상호 방문이 가능했죠. 65세 이상의 은퇴자여야 하고, 상대방 이산가족에 특별한 경조사가 발생했을 시에 한정되는 경우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형의 집을 방문할 수는 없었습니다. 형과 저는 제3의 지역에서 따로 만날 수밖에 없었어요.”

동·서독 분단 이후 뫼들라로이트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분절된 상황을 이어나갔지만 그럼에도 동독 주민들의 서독 지역으로의 탈출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드디어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고, 약 한 달 뒤인 12월 5일 뫼들라로이트에서는 양쪽 마을 사람들이 모두 촛불을 들고서 시위에 나섰다.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거센 요구에 의해 이틀 후 동독 국경수비대는 동·서독 뫼들라로이트의 경계를 짓던 담을 허물었고, 이후 1990년 6월 17일 700m의 장벽 중 100m만 남기고 모두 철거됐다. 장벽이 모두 철거되지 않은 것은 마을 사람들의 ‘분단의 고통을 기억’하고자 했던 의지 때문이었고 바로 이로 인해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뫼들라로이트 마을 전경. 가운데 흐르는 개천이 탄바흐 하천이다.

뫼들라로이트 마을 전경. 가운데 흐르는 개천이 탄바흐 하천이다.

분단의 고통 상징물 그대로 보존 시민 향해 열려 있어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은 철거하지 않고 남겨둔 장벽의 일부를 시작으로 동독 시절의 군사시설을 포함해 장애물이나 군사차량 등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으며 분단과 관련한 약 5만 점의 슬라이드 사진을 통해 당시의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통일독일을 살아가는 시민들을 위해 열려있다. 전문적인 내용의 세미나는 물론 통일이나 평화를 주제로 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고 다큐멘터리 기록물의 촬영 현장이 되기도 한다.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은 공식적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뫼들라로이트는 행정 상 여전히 탐바흐 하천을 경계로 바이에른 주 소속의 뫼들라로이트와 튀링엔 주 소속의 뫼들라로이트로 나뉘어 있다. 양쪽 마을을 더하여 40~50호 정도의 작은 규모지만 마을 이장도 2명이고 자동차 번호판도 다르며 전화를 걸 때 지역번호도 다르다. 그러나 이제 뫼들라로이트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에 같이 눈물짓는 일상을 공유한다. 함께 기억하고 살아가면서 분단의 고통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은 아픈 과거를 딛고 통일독일의 평화적 역사를 묵묵하게 다지고 있다.

 로베르트 레베게른 / 독일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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