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12월 1일

기획 | 독일, 분단유산 어떻게 활용하나?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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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통일독일의 저력, 그들이 분단을 기억하는 법

독일, 분단유산 어떻게 활용하나?

   

구 동독 국경수비대가 발견되는 사람들마다 모두 사살했던 베를린의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에 설치된 동상. 지난 201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 착공 5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동상은 1962년 8월 17일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숨진 페터 페흐터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동상의 모습은 당시 동독 국경수비대원이 페흐터를 사살한 뒤 옮기는 장면

구 동독 국경수비대가 발견되는 사람들마다 모두 사살했던 베를린의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에 설치된 동상. 지난 201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 착공 5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동상은 1962년 8월 17일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숨진 페터 페흐터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동상의 모습은 당시 동독 국경수비대원이 페흐터를 사살한 뒤 옮기는 장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참담한 시절에 우리 민족의 대오각성을 위해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도 같은 말을 하였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으며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잘못된 전철을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미 26년 전에 통일을 이룬 독일은 과거 40년간 경험했던 분단의 아픔과 유산을 어떻게 치유하고 보존했을까? 향후 다가올 우리나라의 통일을 생각할 때 통일 선배인 독일이 분단 시절의 유산을 어떻게 처리 또는 활용했는지에 대한 문제는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동독 독재체제 시절, 폐쇄하지 않고 기억의 장소로!

서독과 동독이 각각 1949년 5월과 10월에 생겨난 이후 정확하게 40년만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독일은 분단 상황에 놓여 있었다. 1952년 1,394km에 이르는 내독(동·서독) 간 경계선에 동독이 일방적으로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고 1961년 8월 13일에 베를린 장벽을 쌓으면서 독일의 분단은 고착화되었다.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함께 생활하고 소통을 하던 친구와 동료들을 더 이상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 1952년 내독 간 경계선에서부터 시작된 동독의 장애물 쌓기 작업은 1961년 베를린 장벽 설치로 정점을 찍은 셈이다. 당시 동독은 이 장벽들을 쌓으면서 자본주의자들의 공격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전하였지만, 실상은 동독민의 계속되는 서독으로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자국민들을 가두어 막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철옹성 같던 베를린 장벽도, 견고해 보이던 내독 간 경계선의 철책도 자유를 갈망하는 동독 주민들의 의지 앞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불과 11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 흐른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

독일이 통일되자 동독의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던 시설들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기억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예를 들면 동독 체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국가보위부(슈타지) 본부와 각 지역 본부들, 슈타지 감옥, 베를린과 내독 간 경계의 장벽들, 탈동독 주민 임시수용소 등 많은 관련 시설들이 전시관 또는 기념관으로 바뀌어서 국민들에게 과거를 알리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슈타지 문서와 그뤼네스 반트 과거청산과 환경보호까지

그 결과 현재 독일에는 15개의 국경박물관과 11개의 동독 역사박물관 그리고 31개의 동독 시절 반(反)정권 저항세력 추모기념관이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박물관과 기념관에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특히 어린 학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과거의 분단 및 동독 시절의 억압과 독재체제를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세대들이 역사를 알지 못함으로써 되풀이될 수 있는 잘못된 전철을 피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분단 시절 유산관리 작업 중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바로 슈타지 문서다. 동독 정권이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방편으로 작성했던 슈타지 문서들을 보관하고, 이를 공공부문 종사자 채용 시에 과거 잘못된 전력 여부를 검증하거나 역사를 청산하고 평가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분단이 남긴 상술한 역사적인 유산들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유산이 있는데 바로 ‘그뤼네스 반트’(녹색띠)다. 그뤼네스 반트는 동독이 조성했던 1,394km에 이르는 경계시설에 40년 가까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이다. 환경 측면에서 커다란 가치를 지닌 이 지역을 서독 환경단체가 주도하여 환경보전구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것이 정치권의 화답으로 관철되었다. 이에 따라 40년 가까이 사람들을 가로막고 있던 이 경계선은 ‘죽음의 선’에서 ‘생명의 선’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독일은 이렇게 분단시절의 유산을 활용하여 과거를 잊지 않고 역사로부터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향후 다가올 우리나라의 통일과정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하겠다.

김영수 /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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