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월 1일

만나고 싶었어요 | “샴푸와 커피믹스, 북한 주민 삶 바꿨죠”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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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어요 | 정은이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샴푸와 커피믹스, 북한 주민 삶 바꿨죠

정은이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정은이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Q. 북한의 변화하는 모습을 연구하기 위해 매년 수개월씩 북·중 접경지역에 체류하며 연구에 매진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A.  북·중 접경도시 단둥에 체류하면서 본격적인 현지조사를 실시하게 된 게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인 2009년 1월부터였죠. 제가 단둥을 연구의 거점지로 삼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에서 대북무역이 가장 활발한 국경도시로, 정보와 물자, 자본, 사람 등 모든 것이 집중되기 때문인데요. 오전에 단둥 세관만 나가보아도 중국을 왕래하는 북한 트럭이나 노동자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죠. 게다가 세관 주변에는 온통 북한과 관련된 상점과 무역대리회사들이 널려있습니다. 또한 단둥에는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조선족, 북한 화교, 한국인 등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대북무역이라는 명목으로 서로 얽혀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한반도의 문화가 공존하는 제3의 도시로 북한과 남한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거리를 가다가도 북한 식당, 한국 식당 등 북한과 남한을 구별해 놓는 상점 간판들을 통해 남북의 다른 점을 쉽게 접할 수 있죠.

또한 단둥은 북한 최대의 상업도시 신의주와 마주하면서도 수도 평양과는 불과 22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즉 중국 베이징과 북한 평양을 연결하는 관문 성격의 도시라 할 수 있죠. 현재 남한에 입국해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로부터 함경도를 포함한 북한의 북쪽 지역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단둥에서는 평양, 사리원 등 북한의 남쪽 지역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죠. 매우 역동적인 공간입니다. 따라서 단둥에 체류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참여 관찰이 가능하고요. 현지인과 대화를 통해, 혹은 수많은 상점들을 방문하거나 세관을 비롯한 물류창고, 보세창고 등 북·중 무역과 관련된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사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매력이 제 발걸음을 매해 단둥으로 이끄는 요인인 것 같아요.

Q. 유엔 안보리가 2270호에 이어 최근 2321호 결의안을 도출해 대북제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국제사회 제재안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역시 중국의 확고한 이행이 수반되어야 함을 대내외에서 지적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 성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은데요. ·중 접경의 현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A.  최근 대북제재의 영향에 대해 단둥 현지의 관계자들에게 물으면 “우리는 항상 제재 속에서 살아왔다.”, “앞문이 안 열리면 뒷문으로 나가면 된다.”라는 식의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는 그 만큼 북·중 간 비공식무역 통로가 발달되어 있으며, 제재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비공식무역 통로가 더욱 활성화될 수밖에 없음을 뜻합니다. 실제로 북·중무역은 접경무역 또는 민간무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만큼 접경도시의 역할이 중요하며 양 도시 간 무역 통로는 역사가 매우 깊죠. 예를 들어 평안북도의 중심은 의주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현재의 신의주는 글자 그대로 일제가 1920년 압록강 철교를 건설하면서 개발된 신도시입니다. 이는 압록강 철교를 통해 북한과 연결된 중국 단둥이 신의주와 하나의 구획으로 묶여 개발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두 도시의 도로가 바둑판 모양으로 매우 유사하며 애초부터 잘 닦여져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양 도시는 동질의 문화권을 형성해왔고요. 주민 간 경제적 교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지정학적 귀결입니다.

실제로 단둥은 북한과 친숙한 ‘친조(親朝)’의 도시입니다. 1992년 노태우의 북방정책에 의해 비로소 실질적인 국경선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둥 사람들에게 한국은 최근 한류(韓流)의 영향으로 겨우 인식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 사이에 이러한 접경도시는 매우 많아요. 다리로만 연결된 도시가 십 여 곳이 넘습니다. 두만강이나 압록강 상류 쪽에는 얕은 개울이 있거나 이마저도 없는 곳이 많고요. 이러한 곳은 모두 비공식무역 통로가 되죠. 중앙정부도 차단하기 어려운, 지역주민 생계와 직결되는 민간무역 통로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이를 막으면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역관료들과의 유착도 강하고요. 조금 더 나가면 북·중은 공해상에서 많은 교역을 합니다. 말 그대로 무법천지죠. 이곳에서는 수산물뿐 아니라 각종 값비싼 광물들이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어요. 이러한 요인에 의해서도 대북제재의 효과를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중국의 협조 없이는 근본적으로 대북제재의 효과를 차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Q. 장마당의 확산으로 대변되는 북한의 시장화 현상은 비단 거시경제 차원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의 생활모습에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켜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보도를 통해 일부 접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남한 사람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최근 북한 시장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 등의 천태만상에 대해 전해주신다면 어떤 모습이 있을까요?

A.  최근 5년 전부터 북한 시장에는 채소 하나도 가지런히 손질되어 진열되고, 젓갈도 종류별로 소량 포장된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1990년대 시장에 상품이 부족했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와는 상반된 모습입니다.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이 그만큼 높아졌고 이제는 양보다 질을 추구한다는 것이겠지요. 뿐만 아니라 90%가 중국산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종전에 없던 신상품이 북한 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되어 중국산과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담배와 식품만큼은 국내산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컵체육인종합식품공장’이 한 개 공장에서 사탕과자 등 30여 종이 넘는 식품을 생산하고 시장에서 독점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한국산을 모방한 상품도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쵸콜레트 단설기’는 우리의 초코파이를, ‘봉지커피’는 커피믹스를 모방하였고요. 포장도 유사하지만 맛도 비슷해요. 개성공단을 통해 유입된 한국산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자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이를 모방 생산해 시장에 선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류층에서는 한국산 분유를 매우 선호하고 있고요. LG생활건강에서 출시된 케라시스 샴푸나 커피믹스 등은 북한 주민의 생활 습관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의 발달로 인해 빈부격차도 심해져 소비패턴에도 계층별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평양의 1%도 안 되는 최상층부에서는 아침이면 밥 대신 버터나 치즈, 커피나 차를 곁들이는 서양식 식사가 유행이고요. 빵도 1kg에 15~20달러지만 특별히 주문하여 매일 가져다 먹습니다. 일반 밀가루 빵이 아닌 카스테라와 같은 고급빵류입니다. 기존에 고급식당에서 종사하던 제빵 기술자들이 부유층을 대상으로 질 좋은 빵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죠. 따라서 제빵사가 새로운 인기 직종으로 뜨고 있다고 합니다.

Q. 북한 정권과 주민 간에 형성된 시장을 중심으로 한 공생관계, 어떻게 보세요?

A. 북한 사람들은 몇 년 전부터 장마당에서 장사가 잘 안 된다고 불평을 합니다. 불황이라는 것이죠. 상품을 팔아도 종전에는 최대 10~30배 이상의 이윤을 올렸다면 최근에는 많아야 20% 미만이라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장마당은 이미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서 수요자 중심의 경쟁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동시에 사람들은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틈새시장은 무역을 비롯한 석유, 부동산, 운송업, 돈장사 등 장마당과 달리 100% 외화로 고부가가치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인데요. 즉 북한의 시장은 같은 시장이라고 해도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순수 내화로 거래되는 저부가가치의 장마당과 외화로 거래되는 고부가가치의 보이지 않는 시장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전자의 진입장벽이 낮다면 후자의 진입장벽은 높습니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관료들의 권력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게다가 고부가가치의 시장은 관료들의 시장 참여를 유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4년 평양의 평천구역에서 아파트 붕괴사고가 발생했을 때 준공검사도 마치기 전에 이미 주민이 입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파트 거래가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거든요. 게다가 고위관료가 나와 대대적으로 사과했다는 사실은 관료들도 부동산 시장의 이익배분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는 것이고요. 즉 관료도 점차 새로운 돈주의 계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정은 시대 간부의 시장 참여와 확대 여부는 향후 북한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에 있어서 큰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시장의 이중구조는 빈부격차나 부패의 문제를 더욱 크게 유발할 것으로도 전망돼요.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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