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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북아일랜드, 분단된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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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한·중의 신진학자한반도를 새롭게 보다!

북아일랜드, 분단된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지난 2010년 8월 3일 북아일랜드 서벨파스트 폴스로드에서 학생들이 구교도와 신교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벽’을 보며 걷고 있다. 평화운동단체인 피스 피플의 1976년 평화적 시위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연합

지난 2010년 8월 3일 북아일랜드 서벨파스트 폴스로드에서 학생들이 구교도와 신교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벽’을 보며 걷고 있다. 평화운동단체인 피스 피플의 1976년 평화적 시위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연합

기존까지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는 성공적인 사례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북아일랜드처럼 폭력적이고 장기화된 정체성 분쟁이 균형 잡힌 결론에 도달한 사례는 드물고, 그렇기 때문에 북아일랜드 사례에 대한 관심은 타당하며 평화조성을 위한 지구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98년 성금요일협정 체결 이후 이행된 평화로의 도정은 분쟁 기간에 빚어진 피해, 상처, 공포 등을 완전히 치유하였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1998년 평화협정 체결 이후 출범하였던 권력공유정부는 1년도 지나지 못해 중단되었고 IRA 등 준군사조직의 무장해제 선언은 있었으나 실제적인 해제는 2010년에 이르러서야 완료되었다. 평화 프로세스에서 기대하였던 정치・경제・사회적 발전의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고 복잡하였으며, 한편으로는 평화협정을 이행하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분쟁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의 일상 깊숙이 스며든 분쟁의 상처

무엇보다도 북아일랜드 분쟁 기간 동안의 경험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분쟁의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인 벨파스트 시 북부에는 여전히 경계하고 있는 집단 간 평화의 벽이 설치되어 있으며,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 벽이 철거되지 않고 유지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즉, 1998년 성금요일협정과 2006년 성앤드류협정 등 정치엘리트 수준에서의 합의가 일상생활 차원까지 스며들어 장기 분쟁의 영향력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따랐다. 30년 이상 지속된 장기 분쟁은 1998년 성금요일협정의 체결과 그 협정의 이행만으로 완전히 해소될 수 없었다. 물론 통계적 수치로 볼 때 충돌의 양상은 감소되었지만, 지역사회에서 생활 영역이 분열되었고 분쟁의 당사자들은 여전히 긴장과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북아일랜드 지역에서 가장 피해가 심각했던 곳 중 하나인 벨파스트 시 북부는 현재까지도 분쟁으로부터의 심각한 영향을 간직하고 있다. 벨파스트 시의회는 2008년 이 지역에 대해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상당수의 지역사회들은 개신교계/통합주의자들과 가톨릭계/민족주의자들 영역으로 구분된다. … 서로 대립하는 지역사회들 간의 장벽과 경계는 만들어진 영역으로 폭력과 혼란을 통해 적대와 반감이 유지되고 갱신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벨파스트 갈등조사연구소가 진행한 심층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분쟁의 유산은 일상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비록 1998년 성금요일협정 체결 이후 유혈충돌과 사망 사건의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폭력적 사건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퍼레이드 시즌인 하절기에는 어느 때라도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뉴로지와 타이거 베이는 여전히 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학교의 경우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학교 안에서만 유효할 뿐이었다. 이 지역의 레저시설 또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레저시설을 이용하는 것에는 두려움이 수반된다.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서는 보다 안정적으로 지역 간 이동이 가능해졌지만, 타 지역 간의 이동에는 여전히 망설임과 주저함이 노정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가시적인 폭력과 충돌의 감소, 그리고 경제적 번영과 수입의 증대 등은 평화의 실현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없으며. 비록 비가시적인 것일지라도, 또한 폭력적인 형태가 아닐지라도 장기갈등의 경험은 여전히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다.

일상생활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는 북아일랜드 분쟁의 유산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제공해준다. 한반도형 장기 분쟁도 북아일랜드의 사례처럼 일상적 차원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한반도 분쟁의 일상적 측면은 한국전쟁 시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시기 미군, 한국군,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유가족들의 상처, 전후 독재정권 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비롯된 수많은 희생자 및 관련된 의문사 문제, 전쟁과 분단 이후 지속되고 있는 이산가족의 문제 등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는 한반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직접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무형의 냉전문화 및 군사주의는 교육, 학문, 사상 등의 분야로까지 퍼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온갖 형태로 뿌리내린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분단체제 극복운동의 일상화’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평화체제 및 평화협정 연구 지평 확대되어야

하지만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의 평화협정 논의는 다분히 분쟁의 일상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 연구자는 이미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더 지났기 때문에 전쟁범죄 및 보상 문제 등을 포함한 전쟁의 유산 문제를 협정에 포함시키지 말고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반도에 거주하는 주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을 강조하는 문헌들도 있으나, 분쟁의 유산과 일상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평화체제와 평화협정 연구의 지평이 확대되어야 한다. 아울러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정 이후 출범되어 2010년까지 활동을 수행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과 같이 한반도형 장기 분쟁의 일상을 비추고 분단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조우현  /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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