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월 1일

기획 | 북한식 경제자구책 등장 … 역사적 맥락 이해해야 2017년 1월호

print

기획 | 한·중의 신진학자한반도를 새롭게 보다!

북한식 경제자구책 등장 … 역사적 맥락 이해해야

북한 이 2015년 8월 6일 보도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농기계 전시장 시찰 모습. 이날 농업성 농기계공업관리국 산하 공장에서 생산한 모내기 기계, 토양관리 기계, 파종관리 기계, 수확 및 탈곡 기계, 축산 사료가공 기계, 소형 양수기 등 113종 510점의 기계가 전시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연합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5년 8월 6일 보도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농기계 전시장 시찰 모습. 이날 농업성 농기계공업관리국 산하 공장에서 생산한 모내기 기계, 토양관리 기계, 파종관리 기계, 수확 및 탈곡 기계, 축산 사료가공 기계, 소형 양수기 등 113종 510점의 기계가 전시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연합

1948년 9월 9일 정권을 창건한 북한과 이듬해 10월 1일 정권을 수립한 중국의 국가적 위상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 너무나 대조적이다. 공산주의 혈맹으로서 어려운 처지에서 출발하였지만 중국은 경제총량 세계 제2위로 발돋움한 반면 북한은 아직도 심각한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일어났을까?

이에 대해 중국은 덩샤오핑과 같은 탁월한 지도자를 가졌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반면 북한에는 이러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관점도 있다. 하지만 위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지도자의 능력 여부를 논하기보다 두 나라의 지도자 집단이 당면한 현실에 대하여 어떠한 진단을 내리고 정책을 펼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국 선부론과 북한 혁명적 경제전략’, 차이점은?

중국과 북한의 발전 양상이 확연히 달라지는 시점은 제2세대 지도자 혹은 영도집단으로의 권력 이행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제2세대 영도자로 등장한 덩샤오핑과 김정일은 나라의 장기 침체에 직면하면서 서로 완전히 다른 발전전략을 선택하였다. 중국은 사회주의에 대한 재해석과 경제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을 확보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형성했고, 북한은 혁명적 경제 전략을 펼쳤지만 경제의 곤경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삼았지만 체제불안정과 경제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선부론은 중국이 경제위기 및 새로운 국제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제기한 국가전략으로서, 문화대혁명 시기의 평균주의를 부정하고 ‘가난이 사회주의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제창, 노력을 통해 부유해지는 행위에 합법성을 부여했다. ‘가난한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가 무엇이고 지금의 중국이 사회주의의 어떠한 역사적 단계를 지나고 있는가?” 등의 질문들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부론으로부터 제기된 사회주의 정의에 대한 사고는 사회주의 초급단계 담론을 통해 체계적으로 발전하여 이데올로기 차원의 중요한 변화이자 후속 개혁·개방 정책 및 노선의 이론적인 근거와 지침으로 작용했다.

또한 중국의 개혁은 인구수의 80%를 차지한 농촌지역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어 농업생산과 농민수입이 증가한 각 지역의 선부 경험들을 전국적으로 보급하여 제도화 하였다. 이 과정에 대해 덩샤오핑은 “농촌 가족청부제는 농민들의 창조물이다. 농업 개혁 중에 많은 부분은 기층조직에서 창출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게다가 중국은 선부론을 통해 경쟁원칙을 도입해서 인센티브 혜택이 보장되는 조건을 마련했다. 명령식 경제체제에서 집단 전체에 대해 성과금을 지급하는 방식과 달리, 인센티브를 통해 개인의 창의성을 유도하는 방식을 강조했다. 이와 같은 제도는 도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시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발전하였다.

마지막으로 선부론은 불균형 발전전략을 내포하고 있다. 제1차 5개년 계획 시기부터 지역경제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균형 발전전략을 채택하여 내륙지역에 국가투자를 치중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 생산력 구조의 재균형에 일정 정도 기여했지만, 1964년 삼선(三線)건설 시기에 내륙지역에 대한 과도투자 및 이 지역 경제발전 여건의 부족으로 인해 수익성이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1978년 선부론에 등장한 “일부 지역으로 하여금 먼저 부유케 한다.”라는 내용은 균형 발전전략에서 불균형 발전전략으로 전환하려는 지도층의 의도를 드러냈다. 덩샤오핑은 1980년 7월 체제개혁을 논의할 당시 “불균형 발전을 인정하고 이용해야 한다. 이를 계속 견지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 일부 지역이 먼저 부유해져야 국가가 낙후된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력이 생길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반면 북한은 1993년 12월초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6기 21차 전원회의에서 제3차 7개년계획(1987~1993)의 실패를 인정하고 “앞으로 3년간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완충기로 하고 이 기간에 수행하여야 할 혁명적 경제 전략을 제시”했다. 혁명적 경제 전략이란 “농업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무역제일주의로 나가는 것이며 이와 함께 인민경제의 선행부문인 석탄공업과 전력공업, 철도운수를 확고히 앞세우고 금속공업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이 경제노선은 적어도 1998년 초까지 지속되었다.

북한식 경제자구책, 단순한 수동적 위기대응용 정책?

많은 선행 연구들이 ‘혁명적 경제전략’은 북한이 1990년대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대응책이나 수동적 적응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으로 인해 발생한 북한의 자원 및 에너지 부족이 중공업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자구책이 왜 농업, 경공업, 무역 중심의 경제정책이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결여되었다. 또한 김정일 권력승계 과정에 북한이 일관되게 견지해 왔던 중공업 우선노선의 갑작스러운 전환은 단순히 위기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선대로부터 권력승계를 받은 지도자들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여 새로운 정책을 펼칠 때 당국이 근본적으로 중시하는 요인은 무엇이며 과거의 정책과 어떠한 연계성을 가지는지는 역사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중국과 북한은 지리조건, 문화, 역사 등에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간단한 비교를 통해 중국의 선부론과 북한의 혁명적 경제 전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경제 전략의 시기적 특징과 내용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연구를 확장시켜나갈 충분한 가치가 있다. 특히 과거 북한 당국이 취했던 정책을 분석하는 것은 향후 북한이 위기에 대응할 수단으로 취할 정책을 전망함에 있어서도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위뤄잉 /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수료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