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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어머니를 감춰라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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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72

어머니를 감춰라

2017년 새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이때껏 북한 지도자들에게서 들어볼 수 없었던 말을 늘어놓았다. 그의 난데없는 자아비판에 외신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과 같은 일인독재체제의 특성 상 최고지도자가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부족한 지도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일반 사람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우상의 대상으로 인식시켜야 하는데, 지도력의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수령우상선전에 해가 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올해 1월 10일부터 14일까지 필자는 새로운 탈북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북·중 국경연선과 중·러 국경인 흑룡강성 쑤이펀허 지역으로 답사를 갔다. 옌볜 옌지공항에 내려 룽징시 싼허와 투먼으로 이동해 두만강 지역의 수해피해 복구현장을 본 다음날 곧바로 쑤이펀허로 향했다. 쑤이펀허의 기온은 혹독할 정도로 추웠지만 최근 이곳을 통해 새로운 탈북루트가 형성되었다기에 이를 확인하고자 답사를 강행했다. 중국 경내의 이동수단 단속이 대폭 강화되면서 탈북자들은 쑤이펀허에서 러시아로 넘어가고, 다시 러시아 경내를 통과해 몽골과 동남아 쪽 국가를 거쳐 한국으로 향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중국 내의 열차 단속은 엄격했다. 마치 공항처럼 전자기기를 사용해 짐 단속을 하고 있었고, 신분증이 없으면 차표도 발급받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때마침 쑤이펀허에서 북·중 국경에 나온 조카와 통화를 하게 되어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의 신년사를 접하며 속으로 크게 웃었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주민들은 일명 위대한 수령이라는 사람이 일반 당 생활총화나 기타 조직 생활총화에서나 할 수 있는 자아비판을 하냐며 수군거렸다는데 그 원인이 뭐냐고 묻자 조카 녀석이 하는 말이 “원래 뒤가 든든치 못한 놈들이 대체로 꼬리를 내리는 것 아니오?” 하고 키득거렸다.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긴 했지만 설마 하고 머리를 기웃하는 찰나에 조카 녀석이 말을 이었다.

영웅 반열에 올랐던 강반석과 김정숙 고용희는?

“그간 김정은에 대해 젊지만 천리혜안으로 앞길을 내다보는 위대한 영도자라 칭송했는데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 출신이라는 엄마의 이력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평가하길 좋아하오. 엄마뿐이요? 이설주도 악단창가배우가 아니었소?”

사실 북한 사람들은 가수나 무용배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중앙예술단부문에서 이름이 나고 인물 또한 반반하면 으레 고위간부들의 수청이나 들겠거니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김정은은 모친 고용희를 ‘평양의 어머니’로 추대해 우상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얼마 못가 유야무야 되었다.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은 항일무장투쟁을 하는 아들 김일성을 위해 고군분투한 ‘조선의 어머니’로 추켜세웠고,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은 직접 항일무장투쟁에 동참했다고 해서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 ‘항일의 여성영웅’으로 부상시켰지만, 한갓 무용배우였던 고용희에게는 어울리는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좋은 집안 태생도 아니다. 성분 규정이 엄격한 북한 노동당 잣대로 따져보면 고용희의 가문은 분명한 친일파이고 고용희도 1961년에 귀국한 재일교포다. 다만 인물이 하도 출중해 누구의 눈에 들어 영부인으로 급부상했을 뿐이다.

“고용희에 대해 당에서 엄격히 단속했지만 이젠 삼촌같이 나라를 떠난 ‘역신’들에 의해 어떤 출신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그냥 입을 봉하고 있을 뿐이요. 그러니까 당에서도 더 내세우지 않는 것이고요. 원래 그런 것 아니오. 어떤 사람이 갑자기 턱하니 등장하면 ‘저게 누구냐?’ 하고 시시콜콜 따져보는 거 있잖소. 어쨌든 당에서는 지금 괜히 나섰다가 오히려 이쪽에 관심이 확 쏠려 여론화되면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이렇게 감추고 있는 거요. 안 그렇소?”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감추고 있는 거요

“맞다. 이 녀석아. 삼촌 보고 ‘역신’이라 말하는 그 말만 빼고. 근데 그게 김정은의 새해 신년사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냐?” “하, 이런 참. 북한이 아직도 옛날 삼촌이 있을 때 같은 줄 아오? 사람들이 얼마나 빨그라졌다구.” “빨그라지다니, 무슨 소리냐?” “할 말은 다한다는 말이요. 대놓고 하진 않지만 은근히 행동으로 불만이 터지니까 김정은 같은 반쪽짜리 백두혈통이 김정일처럼 무소불위로 날치지 못한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환심 사보려 어물어물하는 게지.” “그러니까 밝혀지면 안 될 혈통 때문이라 그 말이야?” “그저 그쯤 알고 있소. 분위기가 옛날 같지 않은 건 확실하오. 다들 신세지지 않고도 알아서 잘 사니까 김정은이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이제는 누가 귀담아 듣지도 않고요.”

북한 내부의 주민 동향이 어떤지 대체로 짐작이 가는 대화다. 물론 조카 녀석은 삼촌에게서 돈을 뜯으러 전화한 것이었지만, 나는 기꺼이 조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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