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3월 1일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무대예술 스케일은 북한이 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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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92

무대예술 스케일은 북한이 클 수밖에

지난해 12월 26일 평양에서 열린 제1차 전당(전국 노동당) 초급당위원장대회 참석자들이 가극 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

지난해 12월 26일 평양에서 열린 제1차 전당(전국 노동당) 초급당위원장대회 참석자들이 가극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

 

남한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지역 사회복지관에서 탈북민들에게 연극 관람을 시켜준다는 연락이 왔다. 남한 연극이 어떨지 궁금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에 갔다. 안내를 맡은 복지사의 뒤를 따라갔으나 주변에 극장처럼 보이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연극 제목이 적혀있는 광고판만 드문드문 보였다. 극장이라면 건물이 웅장하고 앞에 넓은 공간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연극을 한다고?’

예상을 뒤엎고 도착한 곳은 아주 작은 빌딩이었다. 거기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들어가 보니 50명 정도 들어 갈만한 객석과 작은 무대가 있었다. 설마 여기가 극장은 아니겠지. 북한의 작은 공장이나 협동농장 회의실쯤이나 될 정도인데 이런 곳에서 연극을 한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극장이 맞았다. 그것도 얼마 안 되는 객석이 다 차지도 못했는데 공연을 시작했다. 막이 오르고 젊은 남녀 몇 명이 출연해 사랑싸움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재미가 별로 없었다. 내용, 연기, 무대장치, 음향효과 등 모든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남한 연극이 이런 수준밖에 안 된단 말인가?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이후에도 연극을 몇 번 봤지만 한 번도 만족해보지 못했다. 북한에서 보던 연극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북한에서 연극은 보고 싶어도 자주 보기 힘든 고급예술이다. 평양과 대도시들에 있는 대규모 극장에서나 상연이 가능하다. 그것도 아주 드물게 한다. 그만큼 연극 작품이 많지 않다. 남한의 연극은 대개 북한에서 화술소품 정도로 분류되는 토막극이나 촌극 정도의 규모로 보인다. 아주 큰 규모로 보이는 것들도 북한의 경희극 정도에 못 미친다. 북한에서 연극이라고 하면 대규모다. 영화에 버금간다고 할까. 장면이 바뀔 때는 무대자체가 회전하면서 전환되며, 배경음악, 효과음악을 담당하는 연주자만 수십 명에다 주제가를 부르는 가수들과 무대장치를 조종하는 보장성원들까지 많은 인원이 동원된다.

한마디로 국가가 투자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규모다. <성황당>, <돌아오지 않은 밀사>, <딸에게서 온 편지> 등 북한에서 ‘혁명연극’이라고 지칭하는 대규모 연극을 남한에서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개인이나 예술단체가 무슨 자금이 많아 그런 대규모 연극을 만들겠는가. 설사 만들었다 해도 적자가 날 것이 뻔하다. 도무지 손익계산이 맞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국가가 자금을 투자하기 때문에 예술가, 제작자들이 수익을 바라고 연극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도 워낙 작품이 적어 티켓을 사려면 길게 줄을 서 밀고 당기고 ‘전투’를 할 정도니 아마 제작비용을 몇 갑절 뽑고도 남을 것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북한에서 보지 못했던 공연이었다. 어찌 보면 가극 같지만 흐름과 형식을 자세히 보면 가극도 아니었다. 남한에서는 북한의 가극과 비슷한 공연을 본 적이 없다. 북한의 가극 규모도 대단하다.

<피바다>, <꽃 파는 처녀> 등 ‘5대 혁명가극’이라고 일컫는 가극들은 400~500명의 인원이 동원되는 공연이다. 일반 가극들도 최소 그 절반 정도의 인원이 등장하며 회전무대를 사용한다. 북한 가극만의 특성인 방창과 무용이 도입되기 때문에 동원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북한, 선전도구로 공연 활용 대부분 초대형 규모

북한에 있는 대공연 ‘음악무용서사시극’이라는 것도 남한에는 없다. 가극, 연극, 성악, 무용, 기악, 등 모든 예술형식을 조화시킨 초대형 규모의 공연이다. 북한 공연이 규모가 큰 것은 예술이 독재자 우상화와 체제선전, 주민결속과 대외선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공 들일 필요가 있고 그 덕을 크게 보고 있다. 예술이 문화적 수요 충족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를 세뇌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남한의 연극, 뮤지컬, 가요무대, 콘서트 등 공연예술은 북한처럼 규모는 크지 않아도 그 종류가 다양하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선전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다. 공연 규모는 대규모가 아닐지라도 관객은 대규모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다. 잠실경기장에서 가수 싸이가 공연하는 것을 보러 갔을 때 장내를 꽉 채운 관객들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덩실덩실 ‘말춤’을 따라 추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건전치 못한 예술 아닌 예술이 다양성이라는 미명 하에 서식하는 현상도 있다. 야외에서 벌거벗고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한류라는 꽃밭에 서식하는 잡초일 뿐이다. 그것이 한류로 위장해 북한에 들어갈까봐 우려된다. 통일에 이로울 것이 전혀 없는 독초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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