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3월 1일

장용훈의 취재수첩 | 방랑자 김정남,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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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의 취재수첩

방랑자 김정남, 누구인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가계도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가계도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버림받고 평생을 풍운아로 살아온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피살됐다. 비정상적인 그의 출생과정은 그를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고, 자유분방한 삶은 틀에 갇힌 생활을 요구하는 북한 사회와 거리가 있었다.

그는 197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배우였던 성혜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성 씨는 영화배우 출신으로 월북 작가 이기영의 장남 이평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문예부문을 지도하던 김정일 위원장의 눈에 들어 전 남편과 이혼하고 김 위원장과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혼인은 김정일 위원장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모른 채 이뤄졌기에 성혜림뿐만 아니라 김정남의 존재까지 북한 내에서 베일에 가려져야만 했다. 김정남이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공부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혜이기도 하지만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아버지가 내친 것이기도 한 셈이다.

수많은 견제와 압박 권력 변두리서 평생 방랑생활

유학 후 평양에서 외가 쪽에 얹혀 생활하던 김정남은 1990년대 말 고향땅을 떠나야만 했다. 어머니 성혜림이 우울증 등으로 모스크바에서 요양을 하는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모친인 고용희의 괴롭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희는 자신이 낳은 두 아들 김정철·정은 중 한 명이 권력을 이어받길 원했고 이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이 김정남인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은 계모인 김성애(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와 싸워 이겼지만, 김정남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평양 땅을 떠나 주로 중국에 머물며 방랑생활을 하던 김정남이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일이 생긴다. 2001년 5월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위조여권을 소지한 채 일본에 들어가다 체포돼 추방당한 일이다. 위조여권 사건 이후 김정남은 중국에 주로 머무는 한편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방랑자 생활을 한다.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김정남은 2009년 4월 마카오에서 만난 일본 <TBS> 기자에게 장거리로켓 발사에 대한 질문을 받자 “북한 언론은 성공했다고 보도하고, 해외 언론은 실패했다고 보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발사’였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당시 북한의 입장과 궤를 달리하는 발언이었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만약 내가 후계자라면 마카오에서 이런 옷을 입고 여행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아사히TV>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 말해 당시 김정은에 대한 후계자 내정 결정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온 김정남의 피살사건은 점차 ‘북한 소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암살단은 외국 국적의 여성 2명을 내세워 단 5초만에 범행을 완수했고 쉽게 종류가 특정되지 않는 독극물을 사용하는 치밀함으로 ‘완전범죄’를 노렸지만 공항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수상한 행적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말레이 경찰의 공식 기자회견과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김정남은 2월 13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KLIA2)에서 가족이 있는 마카오로 떠날 항공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젊은 여성 2명이 다가가 앞뒤로 그를 막아섰다. 독극물로 보이는 물질을 김정남 얼굴에 분사 또는 투입한 이 범행은 단 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정남은 출국 대기장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고통을 호소했고 공항 의무실을 거쳐 병원으로 이송돼 공식 사망선고를 받았다. 공격받은 후 2시간 만이었다.

두 여성 용의자는 사건 이틀만인 지난 2월 15일 차례로 붙잡혔다. 베트남 국적의 엔터테인먼트 관련 직업을 가진 도안 티 흐엉(29)과 스파 마사지사로 일한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시티 아이샤(25)는 사건 당일까지 7일간 체류하는 일정으로 말레이에 있었다. 이들은 경찰에서 장난 영상을 촬영하는 줄 알았다며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여성 모두 범행 수개월 전부터 용의 남성들과 접촉해왔다는 사실 등 수상한 행적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지 매체를 종합하면 김정남 암살은 ‘독살’이었다는 추정이 가장 우세하다. 김정남은 사망 직전 고통을 호소하며 “액체가 뿌려졌다.”고 말했고 처음 검거된 베트남 여성은 범행을 사주한 남성이 어떤 물질을 장갑에 덜어줬다고 경찰 조사에서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 경찰부청장은 2월 19일 기자회견에서 김정남 사인에 대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독성 검사 중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김정남 암살 배후설, 조사 과정서 속속 드러나

김정남에게 독극물을 뿌린 것으로 보이는 두 여성은 ‘암살단’의 일부에 불과하고 범행을 시킨 주동자는 따로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주동자는 북한인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범행 현장 가까이에서 여성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남성 4명이 CCTV에 잡혔고 이들이 모두 북한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2월 17일 밤 말레이 경찰은 그중 한 명인 북한인 이정철(46)을 전격 체포했다. 그가 북한 대학에서 과학·약학을 전공하고 인도의 연구소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독극물 제조역’이 아니었느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경찰이 그를 북한 정찰총국 소속으로 파악했으며 그가 은신했던 아파트는 지난 2011년부터 북한 공작원들의 은신처(safehouse)로 사용돼 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뒤를 이었다.

이정철 검거로 탄력을 받았던 북한 배후설은 2월 19일 경찰의 공식 기자회견으로 더욱 힘을 얻는다. 이브라힘 부청장은 리지현(33)·홍송학(34)·오종길(55)·이재남(57) 등 북한 남성 용의자 4명이 모두 말레이시아 밖으로 출국해 도주 중이며 이지우(30)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사진만 공개한 북한인 2명도 사건과 연루돼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가운데 남성 용의자 4명은 이미 2월 17일 평양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싱가포르 보도채널인 <채널뉴스아시아>는 2월 19일 고위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이들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평양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말레이 당국은 사건의 배후를 북한으로 명확히 지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브라힘 부청장은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남성) 용의자들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말해 북한의 역할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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