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5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이 줄인가? 저 줄인가? 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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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94

 줄인가? 저 줄인가?

직장 내 대인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남한이나 북한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체제가 달라 그 양상과 정도에 차이는 있겠으나 존재감, 경쟁심, 이기심, 편 가르기, 시기와 질투 등으로 힘들어 하는 건 같다. 남한 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 오래전 탈북한 선배가 남한 직장생활에 적응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일러줬다.

선배가 갓 직장에 들어갔을 때 일인데 어느 명절날 당직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것을 모르고 집에 있다가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했다. 알려주지도 않았으면서 일부러 나가지 않은 것처럼 몰아세우는 것이 화가 났다.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다니 괘씸해

나중에 알고 보니 당직자 명단을 회사 내 컴퓨터 업무시스템에 들어가 스스로 확인하게끔 되어 있었다. 갓 입사한 직원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사무실에 아직 그 선배의 책상과 컴퓨터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남들이 만든 서류를 복사하는 일을 하는 처지였다.

괘씸한 것은 선배보다 조금 앞서 입사한 직원인데, 선배가 당직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내정치’라는 이야기가 이런 데서 나온 말인지, 아니면 사원들끼리 경쟁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질투하고 깎아내리거나 승진을 위해 아첨을 하는 데서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사내정치라는 말은 남한보다 북한에 더 어울리는 말이다. 북한 직장은 크게 기관장에게 줄을 선 사람과 당 간부에게 줄을 선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 물론 아무 쪽에도 속하지 않고 일만 꾸역꾸역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 내 모든 조직이 당과 행정의 두 축으로 구성되어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어진 것에서 기인한다. 당국은 기관장과 당 간부가 쌍두마차가 되어 조직을 잘 이끌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관장이 당 간부를 제압하고 독단적으로 나가거나, 당 간부가 기관장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실권을 행사하거나 둘 중 하나다. 기관장과 당 간부의 힘이 비슷하면 직원들은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고생한다. 직장마다 ‘지배인 편’과 ‘당 비서 편’이 있는데 자칫 줄을 잘못 섰다가는 불이익을 당한다.

누구에게 붙어야 할지 눈치가 빨라야

직원들은 누구에게 붙어야 할지 눈치가 빨라야 다치지 않는다. 싸움이 붙으면 대개 당 간부가 이기는 편이다. 행정 간부는 특성상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일을 시키려면 부득이 직원들에게 큰소리도 쳐야 하고 징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간부는 직접 작업 지시를 하고 총화하는 직책이 아니므로 직원들에게 큰소리 칠 일이 별로 없다.

또 노동당에 입당시키는 권한도 당 간부가 쥐고 있고 인사권도 당 간부에게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당 간부에게 줄을 서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행정 간부에게 줄을 서면 경제적 이득을 보거나 편한 일을 맡는 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당 간부는 상위 인맥도 주로 당 간부들인데 반해 행정 간부는 상위 행정 기관과 정권 기관에 인맥이 많다. 그러나 상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행정 기관, 정권 기관보다 당 기관의 권력이 더 세다. 군대도 비슷하다. 북한군은 행정 장교와 정치 장교가 서로 견제하는 체계다. 따라서 군인들도 은근히 줄서기를 하게 된다.

북한이 민주화되면 현재와 같은 두 줄짜리 ‘사내정치’는 사라질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지 궁금하다. 남한과 똑같아 질수도 있겠지만 가급적 좋은 점만을 취해 보다 나은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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