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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트럼프에게서 레이건이 보인다 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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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럼프에게서 레이건이 보인다

최근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범인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우려에 대해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경계태세에 돌입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는 역사적 교육을 되새겨 본다.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이 재임기간(1981~1989) 미하일 고르바쵸프와 4차례 회담을 가지면서 구소련을 해체시킨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을 롤 모델로 삼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핵폐기 수순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국방정책에 관한 한 강경론적 보수주의자였으며 핵무기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 패전과 경제적 위기로 인해 길거리로 뛰쳐나온 청년 실업자들, 이름하여 ‘히피(hippie)족’들이 범람하고 사회적으로 위기의식이 팽배한 시기였다. 레이건도 트럼프처럼 철저한 보호무역을 통해 미국만을 위한 미국을 강조하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무역불공정 행위에 대해 반덤핑 판정을 내리고 무역 상대국에 압력을 가했으며, 소련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핵감축 어젠다를 제시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전술화하기 시작하였다.

레이건의 SDI, 소비에트를 향한 회심의 일격

미국에서 이상주의자 레이건이 등장할 때 소련은 늙고 병든 공산당 서기장들에 의해 경제가 마비될 뿐만 아니라, 동유럽 통치를 위한 군사비용 지출, 핵무기 확산 배치 등으로 미국과 싸울 수 없을 정도의 재정 파탄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계 공산화의 의욕을 상실하고 있을 때였다. 이 상황에서 소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당시 소련은 빅5로 불리는 국방부, 외무부, 국가보안위원회, 군사산업위원회, 당 중앙위원회에 KGB까지 군산복합세력을 형성, 체제유지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던 시기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핵감축과 함께 우주전략방위구상(SDI)을 꺼내들었다. SDI란 우주에 배치된 레이저빔 위성 등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으로, 핵미사일을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파괴하는 구상을 말한다. 소련이 핵탄두가 탑재된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이를 미리 간파하고 있다가 인공위성에서 레이저빔을 발사하여 파괴함으로써 결국 소련 영토 내에서 핵이 터지게 한다는 전략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미국 레이건의 SDI 전략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고, 군비축소 없이는 거대한 소련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며 고민에 빠졌다.

냉전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두 정상은 대담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카비크에서 만난 이후 4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레이건은 미국 상하 양원을 설득했고 고르바초프는 소련 내 강경파와 싸우며 냉전의 유령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며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과감하게 돌진했던 것이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힘의 우위 정책에 백기를 들었고 핵감축에 동의했다. 고르바초프의 선택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였다. 이를 통해 동유럽의 독자 노선을 지향하도록 하는 ‘베오그라드 선언’을 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소비에트를 해체하기로 결심했다. 러시아로 회귀하는 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레닌 혁명 이후 69년 만에 제정러시아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공산주의의 종언과 함께 동구에 연이은 자유화가 일어났고, 분단되었던 독일도 동독 정권 수립 40여 년 만에 베를린장벽이 철거되면서 서독으로 흡수 통일되었다.

현재 한반도 위기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모험주의에서 유발된 것이다. 북한의 핵 폐기 없이는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안정 그리고 미·중·러·일의 평화 체제구축이 불가능하다. 북한 핵과 미사일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이 바로 핵을 관리하는 김정은의 불안한 리더십이다. 김정은은 정상적인 지도자가 아니다. 북한 전체 인민의 식량공급을 중단하고 인민을 볼모로 잡아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의 정치를 자행하면서 자기도취에 취해 ‘핵과 경제의 병진’이란 이름으로 핵위협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이다.

중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이 궁극적으로는 자국에도 위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따른 중국 인민들의 정치·언론·종교 등에 대한 자유화 요구, 소수민족 독립 문제, 시진핑 주석 권력 연장에 따른 내부투쟁, 빈부격차 심화, 농민공의 실업대란, 개혁·개방 이후 쏟아져 나온 신세대들의 욕구불만 등을 잠재울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필요했다. 이것이 곧 북핵 억제에 소홀하게 대응해온 원인이다. 그러나 중국이 내치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집중해오다가 방향을 바꾼 것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할 수 없는 강력한 방식의 외교정책 추진때문이다. 트럼프가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국 역할론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여러 조건들, 즉 대중 환율조작국 지정, 무역불균형 해소 등을 통해 손익을 따져볼 때, 여전히 소극적인 행동에 머무르며 입게 될 손실보다 북한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나은 방향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대북·중 압박, 통할 것인가?

탤런트 출신인 레이건이 가장 강력한 공산종주국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붙들고 끈질기게 설득하여 공산주의 체제가 지속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고 종국에는 소비에트를 해체시켰듯, 비정치인 부동산 전문가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그간 정체되었던 한반도 국제정치판을 일거에 뒤집을 정도로 파괴력이 있다. 트럼프의 결심대로 중국과 빅딜을 하면서 세컨더리 보이콧과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경제제재를 통제하는 조치, 즉 자산동결, 무역거래 중단, 첨단기술 장비 반입 통제 등이 가해지면 북한 김정은의 권력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결국 핵동결 내지 폐기의 수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조심스레 전망한다.

그러나 두 가지 사항은 명심해야 한다. 첫째, 구소련은 경제적으로 최악의 위기에서 러시아로 회귀를 선언했지만 중국은 경제적으로 G2국가에 속해 있다. 미국은 자국의 재정과 무역에서 천문학적 적자를 보고 있는 동시에 국공채 상당량이 중국인의 손에 넘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는 북한이 최악의 궁지에 몰려 한국의 특정 지역을 볼모로 잡고 핵 위협을 가했을 때 대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에 대한 한국인의 국민적 안보의식과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만약 북한 정권이 붕괴되었을 때 우리가 주도하는 통일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최악의 경우 미·중·러·일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붕괴된 북한에 새로운 신탁통치 시대를 열고자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대책이 요구된다.

지난 1990년 10월 독일통일이 실현되고 27년이 지나면서 통일된 독일은 경제 강국이 되었고 유럽의 중심국으로 우뚝 섰다. 통일을 주도했던 헬무트 콜 총리는 그의 회고록에서 ‘역사는 독일인에게 통일의 문을 열어주었고 독일 시민들은 재빠르게 여기로 들어갔다.’고 쓰고 있다. 지금 한반도의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설용수 / 중앙노동경제연구원 이사장(전 <세계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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