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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 집어 개념풀이 | 속도전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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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어 개념풀이

속도전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 대해 ‘빨리빨리 서두르는 문화가 인상 깊다.’고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기도 하는데요. 이는 비단 한국만의 사회상이 아닌가봅니다. 북한도 줄곧 최단기간 내에 최상의 성과를 이룩해 나가는 사업방식으로 ‘속도전’을 주창해 왔습니다.

속도전은 북한 당국이 노동자들의 혁명적 열의를 최대한 동원하여 기술·자본‧설비 등의 부족함을 극복하고자 등장시킨 개념입니다. 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구호를 제시하고 빠른 속도와 높은 질을 담보하는 천리마운동을 발기한 것이 그 시작이었죠. 이때 제기된 ‘천리마속도’에 이어 1950년대 말부터 각 부분에서 ‘평양속도’, ‘비날론속도’, ‘강선속도’ 등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명명은 어느 한 생산부문에서 높은 효율의 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모범으로 삼아 전파시키고 본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죠.

속도전이 모범사례를 넘어 전 사회의 작동원리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를 통해서였습니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제시하며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속도전을 힘 있게 벌일 것을 요구하였고, 1974년 10월 하순부터 12월 말까지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실시된 ‘70일 전투’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이는 당시 후계자 김정일에 의해 추진되었는데,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 교양 등 사상전을 기본으로 하여 전국 2천여 개의 단위에 1만1천여 명의 간부를 파견하였고, 12개의 중앙예술단과 48개의 지방예술단으로 구성된 경제선동대를 통해 현지공연을 하는 등 경제사업의 높은 성과를 촉진하였습니다.

이후 김정일은 속도전을 계속 추진했습니다. 제2차 7개년 계획(1978~1984년)이 시작되던 해인 1978년에는 그 해의 목표를 앞당겨 달성하자는 취지에서 ‘100일 전투’를 전개했으며, 1988년 2월에는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 주요시설 공사의 기한 내 완공을 위해 ‘200일 전투’를 추진했습니다. 이 전투가 끝난 직후인 1988년 9월에는 ‘제2차 200일 전투’를 전개하기로 하여 이듬해 4월까지 속도전을 연장했고요. 2009년에는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돌파구 마련과 체제 단속 및 내부결속 강화를 목적으로 ‘150일 전투’를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속도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6년 제7차 노동당 대회를 전후로 ‘70일 전투’와 ‘200일 전투’가 진행되었는데요. 가장 최근에 진행되었던 ‘200일 전투’ 기간에는 함경북도 지역에서 수해가 발생하여 주민들의 피해가 커지자 대표적 건설 과제인 여명거리 건설장을 비롯해 주요 건설장에 투입되었던 인력과 장비를 수해현장으로 재배치하여 수해 복구에 진력하기도 했습니다.

속도전은 사상전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경제적 효과에 있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동원경제의 성격을 강화하면서 내포적 발전의 필수요인인 창의력에 바탕을 둔 기술혁신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죠. 특히 계획의 양적 달성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어 제품의 질 하락, 낭비와 비효율의 악순환 등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속도전이 단순히 경제건설의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정치 사업과 연계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김정일에 의해 추진되었던 속도전은 그의 지도영역이 문화·예술 분야에서 경제 분야로까지 확산되는 계기로 작용했는데요. 과연 김정은의 속도전은 향후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될지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뉴스 돋보기

북한이 과거 누수 논란이 일었던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속도전’을 독려한 일화를 청소년 교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5월 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의 월간 대중잡지 <천리마> 2017년 제3호(3월 발간)에는 북한 도서 ‘원수님과 백두산영웅청년 신화’의 내용 일부를 발췌한 글이 실렸다. 최용해를 1인칭 화자로 설정한 이 글에서 김정은은 지난 2014년 10월 27일 간부들과 백두산에 오른 자리에서 “(백두산) 발전소 건설을 국가적인 힘을 넣어 빨리 끝내도록 하여야 하겠다.”며 “착공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 2017년 5월 5일

김가나 /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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