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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한 맺힌 아이스크림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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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95

한 맺힌 아이스크림

무더위를 식혀주는 아이스크림, 팥빙수, 코카콜라, 사이다 등은 여름철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식품들이다. 북한에 살 때는 무더운 여름날이면 아이스크림, 사이다, 맥주, 주스, 단물(설탕을 탄 물)을 먹고는 했는데, 그 중에도 유독 아이스크림과 단물, 맥주를 좋아했다.

남한에 막 왔을 때 ‘메로나’, ‘돼지바’, ‘누가바’ 등 다양한 아이스크림류를 보고 이것이 아이스크림인지 아니면 다른 간식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물어보기도 쑥스럽고 해서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서 사먹은 것이 ‘메로나’였는데, 지금도 그 많은 종류 중에 뭘 골라야 할지 몰라 ‘메로나’만 주로 먹는다. 그러나 이후에 북한에서 데려온 딸들은 나와는 달랐다.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스크림 종류를 줄줄 외울 정도가 된 것이다. 확실히 아이들은 어른보다 변화에 대한 적응이 빨랐다.

풀에서 얻은 단맛으로 아이스크림을?

북한에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아이스크림 종류가 한 가지밖에 없다. 다만 원자재가 어떤 비율로 들어갔는지에 따라 지역마다 약간의 맛 차이가 있다. 이외에는 개인이 만드는 아이스크림인 “까까오”라는 것이 있다. 설탕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관계로 아이스크림을 일명 “8월풀”이라고 불리는 작물에서 얻은 당분으로 만들기도 한다. 먹으면 “8월풀” 특유의 향이 나는데 그 냄새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이 때문에 “8월풀”로 만든 단물은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8월풀”보다 사카린이 많이 사용되기 시작되어 단물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에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카린을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 맛은 “8월풀”로 만든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개인들이 “까까오”를 대대적으로 만들어 팔면서부터 사카린을 넣은 아이스크림도 점차 사라졌다. 국영 영업소들도 개인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싸더라도 설탕을 구입해 아이스크림을 생산했다. 설탕 수입은 중국에 의존했다. 사카린도 중국산이다. 함흥에서 생산되는 사카린은 중국산보다 훨씬 질이 좋았지만 경제난으로 생산량이 보잘 것 없어 구경하기 힘들었다.

필자에게는 아이스크림과 관련한 아픈 추억이 있다. 무더위로 숨 막히는 삼복철, 북한을 탈출하던 날이었다. 보위부 감시망을 따돌리고 압록강을 건너기 위해 평소 봐두었던 적합한 장소로 가야 했는데 그곳까지의 거리는 20km가 넘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에 그 먼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더구나 감옥살이 후과로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지나가는 화물자동차를 불러 세우고 타면 되는데 돈을 내야 했다. 지갑에 있는 돈은 겨우 차비나 될 액수였다.

아버지, 아이스크림 사먹게 돈 줘

나는 혹시라도 감시자의 눈에 띌 것을 우려해 일부러 골목길을 요리조리 돌고 돌아 자동차를 탈 수 있는 길목으로 접근해 갔다. 그런데 별안간 어느 골목에서 불쑥 “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6살 난 막내딸이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골목에 어떻게 불쑥 나타난 건지 놀라웠다. 대뜸 “아버지, 나 아이스크림 사먹게 돈 줘.” 하며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어린 딸을 보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빨리 자리를 떠야 했다. 차비로 쓰려던 돈을 손에 꼭 쥐어줬다. 주면서도 아이스크림 두 개 값 20원은 남겼다. 가는 도중 길가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먹으면 끝까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아이스크림 파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스크림 두 개 값 20원은 그날 밤 압록강 물결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 20원을 딸에게 마저 쥐어주지 않고 떠나온 것이 얼마나 마음 아팠던지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때문에 남한에 온 후 아이스크림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가족을 데려올 수 있었다. 헤어지던 그날 아이스크림 사먹을 돈을 달라고 손 내밀던 6살짜리 막내딸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예전의 아픈 추억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살찐다는 말에도 개의치 않고 먹고 싶어하는 만큼 실컷 사주었다.

남한에서는 흔하디 흔한 이 아이스크림조차 북한의 가난한 집에서는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남의 집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조각을 구걸해 입에 물고 다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북한 당국이 폐쇄적 노선을 고집하는 한 이 같은 상황은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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