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6월 1일 0

윗동네 리얼스토리 | 화교(華僑)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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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76

화교(華僑) 수난시대

요즘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제5차 핵실험에 걸쳐 연일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정권의 행태에 북한 주민들의 반응도 많이 엇갈리는데, 뭘 좀 아는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못살아도 힘은 강하구나.’ 하며 엄지를 흔들며 으스대기도 한단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은 초라한 자기 행색과는 대조적인 영웅적 존재를 찬양하는 분위기가 아직 사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수십 년간 북한 정권이 주민들을 상대로 벌여온 세뇌의 기본 골자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북한 정권은 김일성, 즉 수령의 위대성에 대해 “한 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때려눕힌,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강철의 영장”이라는 힘의 논리로 표현해왔다.

“태어난 지 2년밖에 안 되는 인민군대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제를 때려 부수고 그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었다.”며 “그런 강한 힘은 모두 위대한 영도자를 높이 모셨기 때문”이라고 선전했다.

선전의 효과는 대단했다. 마치 자신이 강한 힘을 가진 위대한 인간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힘의 우상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변했다. 굶고 헐벗어 아사가 일상이 된 환경 속에서 힘은 바로 하루 세끼 무엇을 먹고 사느냐는 것에서 출발한다.

좋은 옷을 입은 비대한 몸으로 길거리에 나와 필터가 달린 담배를 척 꼬나문 사람을 보면 자기도 그렇게 될 수 없나 하면서 별의별 짓을 다한다. 도적질이면 도적질, 강도면 강도, 사기면 사기, 닥치는 대로 말이다. 돈 제일주의 사회로 변한 북한에서는 돈을 꾸어 주는 놈을 ‘일등 바보’라 하고 그보다 더 큰 ‘왕 바보’는 빌린 돈을 갚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간부든 귀국자든 학력자든 초등졸업생이든 돈 없으면 손가락질 하고 주머니가 불룩하면 엄지를 흔든다.

우쭐대던 북한 내 화교들, 갑자기 천대 받아?

2000년대 초부터 일본 귀국자들보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북한에 거주해 사는 화교들이 사회전반에서 선호를 받았다. 식량 미공급과 상관없이 화교들이 중국을 드나들며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근 20여 년 동안 대우 받던 화교들이 요즘에는 북한 주민들의 노골적인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고 한다. 어떤 멸시를 받는지는 5월 초 국경에 나온 조카 녀석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옮겨보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카는 “요즘 우리나라를 제재한다며 중국이 바짝 나서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지요. 말하자면 중국이 사상과 의리의 배신자니까, 눈앞에 보이는 화교들이 대신 욕을 보는 거요.”라고 했다. 자세히 말해보라고 하니 조카는 북한에서 화교 통제를 대폭 강화하여 조금만 미심쩍어 보여도 구금하고 심지어 고문까지 한다고 한다. 때에 따라서는 집을 수색하고 값진 물건들을 모조리 몰수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고 국경 장사로 돈을 모으고 으스대며 사는 화교들이니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트집을 잡아 역적으로 몰아도 무방한 일이라고 했다.

“그건 보안원들이 하는 짓일 테고 일반 사람들이야 화교들을 통해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렇게 괄시까지 할 게 뭐가 있어?”라고 묻자 조카는 “좀 가진 게 있다고 화교들이 이제껏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깔봤는데요. 힘 있는 보안원들이나 간부들 앞에서는 꼬리 치며 뇌물이나 바치고요. 그러던 화교들이 정부 시책이 바뀌면서 대접이 아니라 괄시를 받게 된 건데, 일반 주민들로서는 ‘때는 이때다.’ 싶은 거죠.”

중국이 배신하니까 눈앞에 화교들이 대신 욕보는 거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아도 눈앞에 그림이 그려졌다. 조카 놈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저도 몇 놈 패주는 데 동참했다나 뭐 어쨌다나. 마치 무슨 영웅적 행동이나 한 사람마냥 말한다. 이해는 갔다. 이번 기회를 타 돈 좀 있다고 사람 깔보고 우쭐대던 놈들을 마음껏 혼내주면서 마음이 시원했을 것이다. 남쪽 사람들은 그런 심리를 잘 모른다. 평소 억눌린 감정이 그런 때를 만나 폭발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억울해도 참아야 하고 말 한마디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이니 억눌린 감정은 자연히 쌓여간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중국 화교들은 북한 땅에서 활개 치며 살았다고 한다. 중국 번호판을 붙인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장사를 위해 곳곳을 쏘다녀도 단속은 별로 없었다. 다 보안기관이나 주요 간부들에게 큼직한 것을 안겨주고 했던 짓이었으니까 말이다.

외화벌이 단위들에서도 중국차 번호를 위조해 달고 마치 중국인인 것처럼 이곳저곳 누비며 장사 물건을 모았다는데 요즘은 그런 일들이 싹 다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도루묵이 되기는 하겠지만 요즘 같아서는 풀이 죽은 화교들 모습이 참 씁쓸하고 측은하기까지 하다며 조카 녀석은 즐겁다고 깔깔 웃었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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