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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러시아, 대규모 경협 시동 건다 … 전략적 ‘관계 맺기’로 기회 잡아야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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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문재인 정부, 4강외교 지렛대를 찾아라!

러시아, 대규모 경협 시동 건다 … 전략적 관계 맺기로 기회 잡아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9월 4일 블라디보스 토크의 루스키 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극동 지역 가스 산업 근로자들과 만남을 갖고 연설하고 있다.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9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의 루스키 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극동 지역 가스 산업 근로자들과 만남을 갖고 연설하고 있다. ⓒ연합

지난 5월 10일 풍전등화(風前燈火)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문재인 새정부가 출범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겸허한 처신과 파격적인 소통 행보로 높은 국정 지지율을 얻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앞길에는 중대한 국가적 과제들이 놓여 있다. 분열된 사회를 통합함과 동시에 식어가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되살려야 하는 책임을 안고 출발한 것이다.

우선 시급한 과제는 지난한 외교·안보 현안 해결이다. 한반도를 휘감고 있는 일촉즉발의 전운을 제거하는 문제를 비롯해, 미국이 요구하는 FTA 재협상과 한반도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 설득, 사드 배치에 따른 대중 반작용 해소,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재논의, 한반도 관련 국제이슈 논의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소위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현상 타파, 북한의 핵실험 동결과 비핵화 유도, 남북관계에서 위축된 한국의 역할 공간 확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외교·안보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주요국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정상외교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다.

한반도 주변 4강을 열거할 때 보통 중요도 순으로 따져 미·중·일·러로 표현하지만, 전통적으로 한국의 진보 정권은 러시아와의 협력에 상대적으로 높은 외교적 비중과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반대편에 있는 러시아에 대해 거침없는 접근을 시도했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미국의 역린을 건드린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 찬성 사건이 적절한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 러시아만의 가치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도 한·러관계는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일 정도로 우호관계를 유지했고, 여러 분야에서 협력의 밀도를 높여 나갔다. 당시 주변 4강 정상 중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코드가 잘 맞은 지도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제사회의 예상을 뒤엎고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는데, 이 역사적 쾌거는 일면 한·러 정상 간 찰떡궁합에 기인한 바가 크다. 러시아가 미국의 대표적 동맹국가인 한국 출신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진보 정권이 한·러관계를 중시한 이유는 다양한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북한 정권의 성립과 발전의 결정적 후원자로서 대북 영향력 행사의 유용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했던 진보 정권은 러시아가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서 북핵문제 해결을 포함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고 많은 기대를 걸었다. 지난 2003년 러시아를 끌어들여 북핵 6자회담을 성립시킨 것과 러시아를 연결고리로 남북한을 잇는 유라시아 대륙철도망을 구축하고 가스관 연결 사업에 합의를 이루어 낸 것은 바로 이러한 러시아만의 가치에 착목했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의 자기주도성과 독자성 고양이라는 측면에서도 러시아 친화적 정책을 펼친 배경을 설명할 수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총체적 국력 약화로 오늘날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역학관계에서 열세에 처해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 기조로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유는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과정에서 자국의 입장이 불리하게 반영될 수 있다는 점과 미·중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발현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남북한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은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자국의 지정학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지만, 크렘린의 이러한 정책 기조는 진보 정권이 추구하는 탈(脫)외세지향의 대외 정치적 정체성에 부합한다. 말하자면 위축된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미·중 양자 관계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는 한반도 정치의 민감성을 이완시키는 데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러시아가 일종의 세력균형자로서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외교적 딜레마를 해소하는 출구가 될 수 있다.

동맹 및 우방국들의 불편한 시선을 뒤로 한 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과감하게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이나,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사업을 개시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대화와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진보 정권 집권 시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일정 수준 러시아의 이러한 정책적 조응에 힘입은 바가 컸던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며 북방의 유라시아 대륙이 식어가는 한국 경제의 신성장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진보 정권의 대러 밀착을 유인한 요인이다. 러시아가 제공하는 이러한 일련의 지정학·지경학적 ‘기회의 창’이 대러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야 할 당위성을 부여했지만 양국의 관계는 기대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한·러 우호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은 지난 2008년 보수 정권 출범 이후 난관을 맞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한·러관계는 대북 강경정책 기조와 미·러 갈등 속에서 전반적으로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한·러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선언했지만, 외교적 수사와 실질적 협력 사이에는 적지 않은 괴리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도 남북 간 ‘강 대 강’ 대치국면의 장기화와 미·러관계 악화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의 러시아가 한국의 진보 정권 출현을 내심 환영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크렘린은 대결보다는 대화를 선호하고 독자성 강화를 모색하는 대외정책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노선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국에서 진보 정권의 등장은 러시아가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을 열어주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줄여주며,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그간 추진이 중단되었던 다양한 경협 프로젝트들을 소생시킬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한·러 간 주요 경제협력 분야 ⓒ연합

한·러 간 주요 경제협력 분야 ⓒ평화문제연구소

러시아의 불만은 한·러 경협 북한 리스크 극복해야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한·러 간 주요 외교·안보 이슈는 무엇인가? 현재 양국 간에는 한·중의 사드 문제와 한·일의 ‘위안부’ 문제처럼 갈등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특별한 현안은 없다.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와 미사일 도발을 용인하지는 않지만 압박과 제재만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의 ‘대화·제재 병행’ 방침과 같은 기조다.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도 양국 정부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우리 정부 간의 FTA 체결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현재 접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다만 현재 한·러가 이견을 보이는 이슈는 사드 배치 문제다. 러시아와 중국은 ‘외교적 공명’을 통해 한반도 사드 배치를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러의 대응에는 ‘온도차’가 있다. 사드 위협에 대한 평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전략적 종심이 한반도에서 서쪽으로 1만 Km 이상 떨어져 있는 러시아에게는 사실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게 보복을 가하지만, 러시아는 미국을 상대로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반도 사드 배치로 한·러관계가 전면적 갈등관계로 비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 가장 강하게 표출하는 불만은 원활하지 못한 경제협력 문제다. 지난 5월 12일 푸틴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에 이루어진 전화통화 정상회담은 양국 간 경제협력 활성화 필요성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남·북·러의 철도·가스관·전력망 연결, 북극항로 공동개척, 한국 기업의 러시아 극동 지역 투자확대,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 재개 등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는데, 사실 이 모든 경협 이슈는 오랜 기간 줄곧 논의되어왔던 단골 의제다. 이런 의제가 정권교체기 때마다 반복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협력을 약속한 사업들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러 양국이 협력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지정학·지경학적 공유이익이 많음에도 그것을 현실화하지 못한 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북한 요인이다. 그동안 북한은 한·러관계의 증진을 방해해왔던 지정학적 ‘급소’ 중의 하나였다. 러시아와 한국 사이에 낀 지리적 위치로 인해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지경학적 연계성을 가운데서 가로막아 왔다. 실제로 핵을 개발하고 군사적 도발을 일상화하는 북한 리스크 때문에 앞서 언급한 대규모 경협 프로젝트들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안정적 관리, 특히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는 한·러관계의 안정적인 발전도 쉽지 않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송영길 러시아특사(가운데)가 지난 5월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 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

송영길 러시아특사(가운데)가 지난 5월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

·러관계로부터 한·러관계를 분리할 수 있어야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 요인이다. 수교 이후 한·러관계는 미·러관계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아왔다. 뒤집어 해석하면 한국과 러시아가 지속가능한 협력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미·러관계로부터 한·러관계를 분리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이 위계적인 한·미동맹 구조 아래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다는 데 있다. 한국 외교가 미국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대러 정책의 자율성은 제한받게 된다. 한국이 경직된 틀 안에서만 한·미동맹을 움직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유지하는 한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전략적인 ‘관계 맺기’를 이루기 어렵다. 한·미동맹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유연하게 해석하는 창조성을 발휘해야만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4강과의 전략적인 ‘관계 맺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러관계를 명실상부한 전략적 관계로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양국관계의 발전적 도약을 제약하고 있는 북한 리스크와 한·미동맹의 경직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의 독자적인 대러관계 강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 한국이 한반도의 안보와 핵심적인 국가이익을 주도적으로 확보하려면 ‘친미·반러’, ‘반미·친러’ 등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맹 및 우방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발전시키는 가운데 체제와 가치를 달리하는 주변 국가들과도 협력의 틀을 확대해 나가는 중층적이고 선순환적인 대외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그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홍완석 / 한국외대 러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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