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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WHY? | 사우디-이란 일촉즉발 … 1,400년 전 피의 역사 재현?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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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WHY?

사우디이란 일촉즉발 … 1,400년 전 피의 역사 재현?

지난해 1월 3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거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는 자국 내 시아파 성직자 님르 알님르를 테러 혐의로 체포해 같은 달 21일 처형했다. ⓒ연합

지난해 1월 3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거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는 자국 내 시아파 성직자 님르 알님르를 테러 혐의로 체포해 같은 달 21일 처형했다. ⓒ연합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 6월 18일 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동북부 데이르 에조르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6발을 발사했다. 이란이 국외로 미사일을 실전 발사한 것은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종전 이후 처음이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IS의 고위 간부와 조직원 65명을 포함해 무기고, 보급품 창고, 장거리미사일, 탱크, 자살폭탄용 차량들이 파괴됐다.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은 사거리 750㎞인 ‘졸파가르’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졸파가르는 이슬람 시아파가 숭상하는 이맘 알리가 전쟁에서 쓰던 칼의 이름이다.

알리는 이슬람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로 제4대 칼리프였다.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무함마드의 종교·정치적 권한을 이어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린 최고통치자다. 이란이 각종 탄도미사일들 가운데 졸파가르 미사일로 IS를 공격한 이유는 IS가 이맘 호메이니 영묘와 의사당에 감행한 테러에 보복하기 위해서였다. IS 대원 6명은 지난 6월 7일 이 두 곳에 침입해 자폭 테러를 벌여 AK-47 소총 등을 난사해 17명이 숨지고 52명이 부상했다. IS가 이란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이맘 호메이니 영묘에 테러 공격을 자행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호메이니(1902~1989)는 이란에서 신적 존재다. 그는 1979년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키면서 현재의 신정체제를 구축한 이란의 국부이다. 생전에는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종교와 정치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란에서는 호메이니를 아야톨라(고위 성직자)가 아닌 이맘으로 호칭한다. 이맘은 수니파에서는 단순히 종교지도자 또는 설교자라는 의미지만, 시아파에서는 무함마드의 후계자이자 신앙의 지도자를 말한다.

이란, IS 근거지 폭격 사실상 사우디 겨냥한 것

이란은 시아파에서도 주류인 12이맘파에 속한다. 열두 명의 이맘은 모두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 받은 후계자들이다. 12이맘파는 예수의 부활과 비슷하게 열두 번째 이맘 알 마흐디가 최후의 날에 재림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12이맘파에서 알리와 후손인 열두 명의 이맘 이외에 이맘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인물은 오직 호메이니뿐이다. 호메이니가 사실상 ‘열세 번째 이맘’인 셈이다. 호메이니는 수도 테헤란 외곽 베헤시트 자흐라에 세워진 영묘에 잠들어있다. ‘이맘 호메이니 영묘’라고 불리는 이곳은 이슬람 혁명과

12이맘파의 성소나 다름없다. 때문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해 이란의 종교계와 정부 고위 인사들은 물론 국민들도 수시로 참배한다.

이란의 IS에 대한 공격은 사실상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것이다. 이란의 신정체제를 수호해온 혁명수비대는 “IS의 테러 공격은 미국 대통령이 테러를 지원하는 사우디 정부의 지도자를 만난지 일주일 뒤에 일어났다.”면서 미국과 사우디에 보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혁명수비대 부사령관인 호세인 살라미 준장도 “우리 국민을 순교자로 만든 테러리스트와 추종자들에게 복수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란은 그동안 수니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사우디 왕조가 수니파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와 IS의 후원자라고 주장해왔다.

와하비즘은 사우디 출신 신학자인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1703~1745)가 창시한 이슬람 사상이다. 핵심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와하브는 무함마드 이외의 우상숭배 및 외부 정치체제 배격, 음주·도박·간통 등 금지, 여성의 외출 및 사회활동 제한, 엄격한 종교적 생활 등을 구체적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니파 테러 단체들은 와하비즘을 따르고 있으며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도 와하비즘에 근거해 서방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벌여왔다. IS도 마찬가지다. 사우디 왕가는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테러 단체들을 은밀히 지원해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의 관계는 현재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다. 양국은 국교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다. 사우디가 지난해 1월 자국 내 시아파 성직자를 사형에 처하자 이란의 과격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불을 지르고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양국은 단교하게 됐다. 양국은 이미 시리아와 예멘 내전에서 대리전까지 벌이고 있다. 사우디는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을, 이란은 정부군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예멘 내전에서는 사우디가 정부군을, 이란은 후티 반군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IS가 호메이니 영묘에 테러 공격을 벌인 이유도 사우디와 이란 간의 종파 분쟁을 더욱 촉발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IS는 사우디를 비롯해 수니파 국가들이 지난 6월 5일 친이란 성향을 보여온 카타르에 대한 단교와 봉쇄 조치를 단행한 지 이틀 만에 테러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IS는 그동안 시아파를 이교도로 지목하고 ‘종파 청소’를 선동해 왔다. IS는 지난 3월 이란을 정복하겠다는 내용의 아랍어 선전물을 유포하기도 했다. IS는 이번 테러로 종파 갈등이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경우 수니파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군의 공세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궁지에 몰린 IS의 속셈은 종파 갈등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사우디와 이란, 수니파와 시아파 간 오랜 갈등의 역사

사우디와 이란의 적대 관계는 큰 틀에서 볼 때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지난 1,400여 년간 대립해왔다. 두 종파의 갈등과 분쟁은 칼리프제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632년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사망한 이후 이슬람은 후계자 선정을 놓고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됐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족인 알리가 당연히 칼리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아파를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수니파는 무함마드와 혈연관계가 없어도 이슬람의 통치자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칼리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슈라(원로회의)는 만장일치로 무함마드와 피가 섞이지 않은 아부바크르(재위 632~634년)를 초대 칼리프로 선출했다. 2대와 3대 칼리프를 거쳐 알리(재위 656~661년)가 4대 칼리프로 등극했지만 수니파와 시아파는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했다. 그러다 두 종파는 알리가 661년 이라크 쿠파에서 암살되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니파는 680년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이끄는 시아파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이슬람의 주류가 됐다. 후세인이 전사하는 등 전투에서 패배한 시아파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수니파는 생후 몇 개월 밖에 안 된 후세인의 어린 아들 알 아스가르마저 무참하게 살해했다. 이런 ‘피의 역사’ 때문에 이슬람 전체 인구 15억 명 중 85%인 수니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와 15%인 시아파를 대표하는 이란은 실로 오래된 견원지간인 것이다.

양국은 현재 카타르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은 테러 단체들을 지원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카타르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 조치를 단행했다. 물론 이런 조치의 진짜 이유는 수니파인 카타르가 그동안 중립외교 노선을 표방하면서 친이란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는 등 세를 확대해왔다. 사우디는 이란의 부상으로 중동 지역 질서가 재편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게다가 이란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테러 단체들도 지원해왔다.

카타르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테러 단체들을 비호해왔다. 실제로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하마스의 고위 간부들의 망명을 허용해왔다. 특히 카타르는 수니파 왕정 국가들과 달리 가장 적극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왔다.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국왕은 지난 2014년 34세 왕세자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도 했다. 선왕이 죽어야만 왕위가 계승되는 수니파 왕정국가들은 카타르의 이런 행보가 불편하기만 했다.

카타르는 또한 자국 왕실 소유인 중동 최대의 방송 매체

<알 자지라>가 수니파 왕정 국가들을 비판하는 것을 언론의 자유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묵인해왔다. 카타르에 불만을 품어왔던 수니파 왕정 국가들은 셰이크 타밈 국왕이 이란에 대한 적대 정책을 비판하자 카타르에 대한 제재 조치에 나섰다. 카타르는 국왕의 발언은 해킹으로 인한 ‘가짜 뉴스’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이란과의 핵 합의 등으로 관계가 나빴던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향후 10년간 1,100억 달러(약 120조 원)에 달하는 무기 계약을 체결하는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밀월 관계를 다시 구축했다. 대규모 무기 계약에 고무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사우디를 방문해 이란에 대한 적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사우디에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게 된 사우디는 이란과의 단교 등 10개항 요구조건을 제시하면서 카타르를 옥죄고 있다. 반면 이란은 카타르에 해상과 공중을 통해 식료품을 직접 수송하고 있다.

이란은 또한 터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터키는 수니파 국가지만 쿠르드족 독립을 막기 위해 이란과 협력해왔다. 이란과 터키의 국민들은 비(非)아랍계라는 공통점도 있다. 사우디·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수니파 왕정국가 국민들은 아랍계다. 터키는 그동안 카타르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터키는 카타르에 군 병력 500~600명을 추가 파병할 계획이다. 터키 의회는 단교 사태 직후 카타르 추가 파병안 등을 골자로 하는 군사협력 법안을 통과시켰다. 터키는 지난 2014년 카타르와 3천여 명의 병력을 수용할 수 있는 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터키는 2015년부터 카타르에 150여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이란과 터키에 우호적인 러시아와 중국도 사우디에 카타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혼전에 혼전 국제전으로 비화될 수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동 지역 전체가 사우디와 이란 편으로 갈려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드레아스 크레이그 런던 킹스칼리지 국방학과 교수는 “사우디가 정말 원하는 것은 1980년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그 당시 걸프국 사람들은 국적이 무엇이든 메카 성지가 있는 사우디에 높은 충성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크레이그 교수는 “사우디는 통일된 대(對)이란 정책을 원하겠지만 걸프국은 통일 대신 분열이라는 도박을 선택했다.”고 진단했다.

이란은 호메이니 영묘에 대한 테러를 명분으로 시리아에서 IS 격퇴를 명분으로 삼아 직접 지상군을 파병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가 파병할 수도 있고, 시리아 내전에서 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 특히 혁명수비대는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비롯해 무장 단체들이 사우디와 수니파 국가들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할 수 있다. 이란은 또 수니파 성지 등을 겨냥해 사우디 내 시아파 과격 세력들이 ‘대리 보복 테러’를 감행하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 자칫하면 이런 혼돈 상태에서 1,400년 전 벌어진 피의 역사가 재현될 수도 있다. 국제사회는 사우디와 이란의 패권다툼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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