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7월 1일

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 안 쓰이는 곳 없다 … 북한 농촌의 ‘감초’, 비닐방막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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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마당 인사이드 6

안 쓰이는 곳 없다 … 북한 농촌의 감초’, 비닐방막

지난 2월 초 중국 단둥 태평만수력발전소 인근에서 촬영한 신의주 지역의 농가에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어 있다. ⓒ정은이

지난 2월 초 중국 단둥 태평만수력발전소 인근에서 촬영한 신의주 지역의 농가에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어 있다. ⓒ정은이

북한 사람에게 ‘비닐하우스’는 매우 낯선 용어다. 대신에 이들은 ‘온실’ 또는 ‘비닐온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비닐은 우리와 같은 ‘폴리염화비닐(PVC)’을 지칭하는데, “옥이야, 비닐방막 내오라.”, “바깥에 비가 오니 구멍탄 젖지 않게 비닐방막으로 덮어야겠다.”는 식으로 ‘비닐방막’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이 비닐방막이 북한에서는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집 창문의 유리 대용으로 쓰기도 하고, 사용하다 닳으면 구멍탄(연탄)이나 기타 물건 등이 비에 젖지 않게 씌우는 용도로도 사용한다. 얇은 비닐은 밥이나 찬거리를 싸고 다니는 도시락 포장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고 비가 오면 우산 대용으로도 쓰인다. 무엇보다 깨끗한 비닐은 매 집 안방 벽에 걸려있는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 액자를 덮는 유리 대용으로 사용한다.

비누로 빨고 바늘로 기워서 쓴다

그만큼 비닐방막은 북한에서 다목적 용도로 사용된다. 단지 국내 생산이 한정되어 있어 사용에 제약이 많다. 심지어 낡고 찢어진 비닐을 비누로 빨아 바늘로 기워 재사용하는 모습이 북한에서는 특이한 풍경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공장·기업소 및 기관에서도 비닐방막은 필수자재다. 특히 북한 당국은 매해 설 명절이 지나면 농촌지원 정책과 더불어 전국 각 기관·공장기업소에 특별한 과제를 하달한다. 농촌에 필요한 영농자재를 일정량씩 상납하라는 것이다. 그 중 첫 번째 품목이 바로 비닐방막이다. 최근에는 많이 줄었지만 공장기업소 및 기관에서는 한때 비닐온실을 한 개 이상 갖춰야 했다. 이는 김일성·김정일의 교시와 관련된다. 인민생활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공장기업소 및 기관에 버섯이나 쑥갓과 같은 야채를 길러 공급하라는 지시를 한 해가 멀다하고 내렸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각 단위에서는 가는 곳마다 온실을 지어야 했다.

이렇게 용도가 많은 비닐방막은 북한 국내뿐 아니라 수출품 항목에도 포함되어 있어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는 금지 품목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에는 비닐방막이 시장에서 흔히 팔리는 품목이 되었다. 심지어 대다수 화학공장이 자금과 원료난으로 가동 중단되자 기관 공무원 및 기업소에서는 과제 수행을 위해 매 종업원에게 돈을 거두어 그 돈으로 시장에서 비닐방막을 사거나 무역업자에게 수입을 의뢰하였다.

이처럼 북한에서 희소성이 높은 비닐방막이 오늘날 시장에서 대중적으로 팔리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장사가 활발해졌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사실 장사를 위해서는 유통이 원활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원유와 자동차가 부족하여 상품을 배낭이나 리어카, 자전거 등의 수단으로 운반하는 사례가 많다. 길을 가다가도 아무 곳이나 자리를 잡아 펴고 누워 자는 데에는 비닐방막이 최적의 물건이 된다. 혼잡한 기차 안에서도 바닥에 깔고 앉는 용도로 비닐방막이 쓰인다. 이고 지고 가는 물건이 비에 젖지 않게 덮는 데에는 말할 것 없고 생선과 같이 부패하기 쉬운 음식이나 술 같은 액체를 담고 다니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물자를 옮길 용도로 포장을 할 때에도 비닐방막은 필수품이다.

북한 신의주 지역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비닐방막의 가격은 1㎡ 당 중국 화폐로 1~2위안(북한 화폐 약 1,500원) 선이다(2017년 2월 기준). 이에 비해 온실용 비닐방막은 약 두 배 가량 비싸 3~4위안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 북한 국경지대 비닐온실 증가 시장 확대 결과?

비닐 사용 증대와 함께 온실도 증가하고 있다. 사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국경지대 주민은 강 건너 보이는 중국의 현실을 통해 개혁·개방에 대한 환상을 갖기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눈앞에 보이는 비닐온실이다. 북한에서 그토록 귀하게 쓰이는 비닐로 중국에서는 온 땅에 펼쳐놓은 채 쉽게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북한에서도 비닐온실이 증가하고 있어 북·중 접경지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주민이 가꾼 텃밭이나 뙈기밭에서 비닐온실을 사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주민 삶의 질이 향상되고 시장이 확대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옥수수나 콩처럼 단가가 낮은 작물은 꼭 비싼 비닐온실에서 재배할 필요가 없다. 특히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채울 수 있는 옥수수가 절실했던 시기에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비닐온실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추, 오이, 토마토, 부루(상추), 담배 등과 같이 값나가는 작물 재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때 비닐온실이 필요하다. 특히 온실은 남한보다 북한에서 더 필요하다. 북한은 산악이 많고 평년 기온이 낮아 값비싼 작물을 안정적으로 재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전에는 밭에 작물을 심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김을 두세 번 씩 매야 열매가 열리는데 비닐방막이나 온실을 이용하면 김을 매지 않고도 많은 소출을 내면서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다. 조기 재배가 가능하며 잡초를 방지할 수 있어 수확량도 늘릴 수 있다.

이와 같이 비닐방막이 비싸기 때문에 웬만큼 돈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마음대로 쓸 수 없음에도 최근 북한 내 비닐온실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것은 주민의 삶의 질, 즉 소비가 전보다 나아지고 있으며, 시장의 확대를 통해 재화의 양이 증대되고 있는 증거로 판단할 수 있다.

정은이 /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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