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9월 1일 1

윗동네 리얼스토리 | “괜찮을 거야 승진했다잖아”

print

윗동네 리얼스토리 79

괜찮을 거야 승진했다잖아

대기업의 건설 부문에서 차장까지 승진했다가 정년퇴직한 탈북자 A씨. 평소 형님·동생으로 가깝게 지냈던 이 사람에게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북한에 있는 아들이 군단 후방보급처 고급장교로 승진했다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A씨는 울먹거렸다. 실상을 아는 나도 적잖이 놀랐다.

‘반역’을 선택한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로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라 생각했던 아들이 군 고급장교로 승진하다니 말이다.

A씨가 탈북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는다. 북한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 때문에 장구한 기간 죄책감으로 늘 가슴 졸이며 살았다. 이따금 만나 술 한 잔 기울일 때도 조금 얼근해지면 “형, 나 이 가슴에 들어찬 죄책감을 어떻게 털어버려야 돼?”라면서 툭 하고 눈물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마주 앉은 사람조차 침울해지는 모습이었다.

형님, 우리 아들이 승진했답니다

그러던 A씨가 하늘을 통째로 안은 사람처럼 환히 웃으며 전화를 걸어왔다. 비록 그 얼굴을 마주하진 않았지만 어린아이처럼 퐁퐁 뛰고 싶은 그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그도 이젠 환갑이 된 나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떠나왔고 평생 처자를 버린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야만 했던 그에게 아들의 소식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았으리라.

“그런데 그런 희소식을 어디서 들었어?” 내가 물었다. 그러자 A씨는 웃으며 군단 후방보급처의 일로 중국에 출장 나온 아들에게서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말한다. “형님. 세상에, 아들이 내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글쎄 저를 보고 애국자라고 합디다”

“그게 무슨 소린가? 탈북자가 애국자라고? 그쪽에서 보면 반역자 아닌가?”, “그러게나 말예요. 아무튼 아들에게서 애국자란 말 들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녜요? 그건 아버지를 인정한다는 소리잖습니까. 이제는 조금 발 편하게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요”

혹여 독자들은 아들이 북한군 장교가 된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해 남한에 정착한 아버지가 그리도 기뻐하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탈북이라는 ‘반역’으로 인해 박해를 받을 줄 알았던 아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버젓이 군의 장교가 되어 외국 출장까지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희한하게 느껴졌을지, 마치 하늘의 별을 딴 것만치 반가웠을 것이다. 더구나 반역한 아버지를 애국자라고 치켜세워 줬으니 말이다. 필자도 두고 온 딸에게서 처음에는 반역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딸은 서울에 아버지가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A씨는 내게 북한 당국이 이제는 탈북자 정책을 바꾼 것이 아닐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즉각 대답은 않고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간 대기업 차장까지 하며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대체 북에 얼마나 보냈는지 말이다.

A씨는 10여 년간 매해 1억 원에 가까운 급여를 받았다고 했고 30% 이상을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고 했다. 그러니까 단순 계산으로 약 3천만 원의 돈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흘러들어간 셈이다. 최근에는 돈주와 같이 이른바 붉은 자본가들이 등장해서 돈을 조금 만지는 계층도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직까지 북한의 실제 가계 수준으로 보면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규모의 돈이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결국 돈이 아들을 승진 시킨 거네. 그렇지?” “그런가요? 근데 의문스러운 건 돈만 찔러주면 문제가 있어도 잡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승진까지 시켜줬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는 말예요”

나는 A씨에게 한국 체류기간 중 대북방송이나 집회를 하는 곳에 나간 경력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맡은 일이 바빠 그런 일엔 전혀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고 했다. 처음 한국에 입국했을 때부터 대학에 입학했고 직업학원에서 용접을 배우며 정착에 열중하다보니 정치적인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북한에서는 아직까지 자네가 어디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겠네.” 그런 것 같다는 A씨의 말에 나는 확신 있게 말했다. “요즘 북한 돌아가는 게 그래. 중요 시찰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는 이상 뜯어먹을 것이 있는 사람을 출세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지. 돈 많은 부자를 곁에 붙들어 두는 것이 북한 간부층들의 유행이라잖아”

돈 더 못 보내는데, 아들 목이 뎅강날아가는 거 아니요?”

A씨는 순간 어두워지며 말했다.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거요? 하긴 그간 내가 보낸 돈이면 그쪽에서는 부자 소리를 들을 만하겠죠. 그럼 어쩌죠? 나 이제는 퇴직해서 그만한 액수의 돈을 부쳐줄 수 없는데…. 바칠 돈이 없으면 어느 날 아들 목이 ‘뎅강’ 날아가는 거 아닐까요?”

나는 달랬다. “걱정 마. 이미 그쪽 고위급 군관들이 얼기설기 얽혀 아들에게서 먹은 돈이 많을 텐데, 아들이 잡혀가면 저들은 무사하려고? 그리고 아들도 이젠 고급 군관이 아닌가. 지금 차지한 자리를 이용하면 아버지가 돈을 안 보내 주어도 그만한 돈은…. 요즘 북한군 군관들의 비리가 얼마나 조직적인지, 동생은 잘 모르지?”

대화는 끝났지만 나는 한동안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기강이 해이해져 뜯어먹을 것에만 혈안이 된 북한군 장병들의 모습이 떠올라 괜스레 마음만 불편했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