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0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 北 | 생략된 죽음 속에서 애도의 의미를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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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 北 70

생략된 죽음 속에서 애도의 의미를 다시 묻다

안정윤  영상, 2017

안정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 영상, 2017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이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넘어 태평양 해상에 낙하되었고,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동해를 날았다. 서사를 상실한 긴장감이 점차 높아가는 TV 속 현실은 어느 틈엔가 영화 속에도 존재하는 리얼리티조차 없는 게임 속의 현실로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외국 여행을 갔다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어진 ‘묻지마’ 테러를 당해 죽었다’는 소식이 전달된다면 그 이후 당신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테러의 현장에서 그 사람은 주인공이 아니라 익명의 존재, 즉 ‘길을 걸어가는 행인’으로 등장한다. 특별한 이슈가 되지 않을 이 뜻밖의 희생자에 대해 우리들 대부분은 그리 크게 괘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눈을 감은 그 사람이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사랑하는 딸이나 애인 또는 부모였다면 우리는 이 죽음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까? 안정윤의 작품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 는 죽은 자를 애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 작품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2013년 캐냐 나이로비에서 발생한 테러 소식이 인터넷 뉴스로 스쳐 지나갈 때 그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보였다. 세계 곳곳에서 언제가 벌어지고 있는 일, 먼 나라 이야기로 말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친구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달되자 그 사건은 자신에게 더없이 큰 비극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그로부터 3년간 나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슬픔을 가능한 누르고 덮어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의 기억과 슬픔은 지우거나 없애도 곧 다른 형태나 질문으로 되살아나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죽이지 않은 친구의 죽음에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친구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그의 죽음은 사고인가 살인인가? 책임은 감정인가? 책임은 도덕인가? 테러는 무엇인가?”

테러는 개인적인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테러에 희생당했던 한 익명의 개인은 공중의 애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애도할만한 것’으로서의 자격마저도 얻지 못하곤 한다.

전시를 기획한 아이공 디렉터 김장연호 씨는 주디스 버틀러를 인용해서 ‘애도의 서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었는데,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애도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묻는다.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 애도의 서열에서 밀려나 있거나 폭력의 희생자라는 관점에서의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실제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이러한 이들의 삶은 공적 담론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생략되어 사라진다고 말한다. 이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읽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죽음 역시 공중으로 분해된다는 것이다.

테러로 스러진 사람들 애도 대상으로 인식?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상실은 무엇이고, 어디로부터의 상실인 것이며, 상실에도 서열이 있는 것인지, 그러한 익명의 희생자가 나의 지인이거나 가족이었다면 이 슬픔과 우울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말이다.

영상 속 주인공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 누군가 자신에게 그럴싸하게 세상의 논리나 진리를 토대로 설명해주기를, 그래서 스스로를 다독여주길 바라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가능할지 묻는다. “보험료도 탈 수 없었어요”라고 낮게 읊조리며 결국 그는 슬픔과 우울을 견뎌내기 위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하기 시작한다. 포스터와 영화를 편집하며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지나가는 행인1’로 죽은 사람과 잔인했던 사건에서 그는 하나의 그림자일 수 있지만, 그 역시 누군가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고 자신의 삶 속에선 단 하나뿐인 생명을 잃은 자다.

영상 속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그나마 제가 위로를 받는 것은 저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의 영화나 다큐를 보는 것이에요. 영상 속에서 어떠한 눈빛이나 표정이 지나 갔을 때 그나마 조금 위안을 받아요. 나한테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사람, 나랑 유사한 마음의 상태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포스터를 모아요” 그렇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을 한다.

이 작품을 통해 미술가는 공적인 담론에서 ‘생략된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방법을 묻고 있다. 그 질문이 비수처럼 꽂히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의 위협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애도의 기능성 너머 애도의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 앞에 한동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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