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0월 1일

화폐타고 세계여행 | 흩날리는 벚꽃, 예술과 철학에 녹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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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타고 세계여행 7

흩날리는 벚꽃, 예술과 철학에 녹인 일본

예비 아빠로서 얼마 전 태교 여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주일 동안 교토의 기온 지역에만 머물렀다. 일본의 전통문화가 이곳저곳 숨어 있는 기온에서 시간을 보내며 제일 신기했던 것은 신용카드를 자주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동전과 화폐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동안 화폐만 연구하고 동전에 관심이 없었던 필자는 이번 계기로 동전을 깊이 살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본 동전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동전 뒷면에는 주로 꽃이 새겨져 있다.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바로 10엔이다.

10엔

10엔

10엔 뒷면에는 꽃이 아닌 건물이 새겨져 있다. 그 건물은 ‘뵤도인’이라는 불교 사원이다.

뵤도인 사원은 교토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우지에 있다. 거리가 멀지 않아서 뵤도인을 보려고 우지 여행 하루 코스를 짰다. 그동안 각국 화폐를 연구한 필자에게 뵤도인은 중요한 장소였다. 10엔뿐만 아니라 10,000엔 뒷면에 있는 봉황 동상도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10000엔

10000엔

불교 사원 뵤도인과 문학가 무라사키 시키부

11세기에 세워진 이 사원은 처음에는 종교 시설이 아닌 별장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 황제에게 딸들을 시집보낸 후지와라 미치나가가 최고 실권자로 지내면서 개인적 부의 상징으로 지은 곳이 바로 뵤도인이다. 그러나 훗날 그의 아들이 이 아름다운 건물을 승려들에게 기부하면서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

1053년에는 승려들이 이 별장에 호오도(鳳凰堂, 봉황당)를 세우고 지붕에는 남북을 대표하는 2개의 봉황 조각상을 장식했다. 그러나 이후에 발생한 내전으로 인해 뵤도인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호오도만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뵤도인은 현재 일본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2000엔

2000엔

여행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뵤도인을 보러 가는 길에서 의미 있는 만남을 가졌다. 우지 강을 건너서 뵤도인으로 향하는 골목 어귀에서 낯설지 않는 동상과 마주한 것이다. 그 동상은 2,000엔 뒷면에 있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동상이었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일본 화폐라면 대부분 1,000엔, 5,000엔 그리고 10,000엔만 안다. 일본 화폐 중 희귀한 것이 바로 2,000엔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2000년, 새천년을 맞는 첫해에 오키나와에서 열린 G8정상회의를 기념해 2,000엔권을 발행했다.

이 화폐가 희귀하다는 것만으로도 필자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무라사키 시키부를 소개한다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약 1천 년 전 역사상 처음 쓰인 소설로 알려진 <겐지 이야기>의 작가인 무라사키 시키부는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훌륭한 인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그녀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한자를 배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11세기에 한자를 터득하여 소설을 집필했다.

한 인간으로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길을 개척했던 그녀의 동상이 우지 지역에 있는 이유는 소설 <겐지 이야기>의 엔딩 신이 바로 우지를 무대로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겐지 이야기 뮤지엄’도 있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100엔

100엔

다시 일본 동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필자가 가장 유심히 본 것은 100엔 동전 뒷면에 보이는 벚꽃이다. 아시다시피 한국 동전 중에 가장 작은 단위인 1원 뒤에는 무궁화, 즉 한국의 국화가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가장 작은 단위가 아닌 가장 많이 쓰이는 동전인 100엔 뒤에 국화인 벚꽃을 실었다.

벚꽃을 보며 삶과 죽음을 동시에 느끼다

벚꽃 이미지는 뵤도인처럼 동전뿐만 아니라 화폐에도 등장한다. 1,000엔 뒷면을 보면 후지 산과 모토스 호수와 함께 벚꽃이 보인다. 일본인들에게 벚꽃은 단순히 국화로서의 상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1000앤

1000앤

매년 3월이나 4월 초가 되면 일본 전역에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 불과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만 피어 있는 이 꽃이 개화하면서 일본인들은 진정한 새해를 맞이하고 다시 태어남을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도 벚꽃을 보며 되새긴다. 일본의 문학과 철학 분야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벚꽃은 일본 예술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에도 시대에 그려진 많은 예술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벚꽃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5000엔

5000엔

일본 화폐에는 역사적인 장소나 문화적인 상징만 소개된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도 새겨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5,000엔의 뒷면이다. 5,000엔 뒷면에는 제비붓꽃이 보인다. 그러나 이 화폐를 디자인한 일본 중앙은행이 우리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은 제비붓꽃이 아니다. 이 사진은 일본의 10대 화가로 알려진 오가타 고린의 ‘카키츠바타-주’라는 명작이다. 17세기에 살았던 고린의 작품들은 화폐나 도자기, 파티션을 비롯한 많은 곳에 도안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은 5,000엔 뒷면의 그림을 통해 자국의 유명 화가와 그의 예술 작품을 동시에 홍보하고자 한 것이다.

태교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남은 일본 화폐를 한국 화폐로 환전하면서 여행 여정을 돌이켜봤다. 그간 여행 코스를 제안해오기만 하다가 실제로 화폐를 따라 하는 여행을 다녀보니 재미가 꽤 쏠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 여러분들도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꼭 화폐를 가이드로 삼아 볼 것을 추천한다.

시나씨 알파고(Şinasi Alpago) / <하베르코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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