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7년 11월 1일

만나고싶었어요 | “북한 1호 사진에 김정은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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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싶었어요 |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북한 1호 사진에 김정은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죠

이동훈 / 본지기자

변영욱  사진부 차장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북한이 스스로 기록해 배포하는 사진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최고권력자 김정은의 행보에 대해 북한이 내보내는 사진들은 해석의 방법을 정교하게 다듬기만 한다면 그간 알지 못했던 의외의 정보를 수확할 수 있다. 변영욱 차장은 1996년 <동아일보> 사진부에 입사해 21년간 사진기자로 국내 사건사고 현장과 국회 및 청와대에 출입했다. “북한 ‘1호 사진’의 변화”로 석사학위, “남북한 최고통치자의 보도사진 프레이밍 비교”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위 ‘찍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으로 김정은이 찍힌 사진의 현상을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탄탄한 실무를 바탕으로 풍부한 이론을 접목해 보다 다양한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이미지 정치 및 전략 분야 전문가인 변영욱 사진기자를 통해 북한이 외부 세계에 내보내는 사진의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들어봤다. *편집자주

Q. 사진이라는 틀로 북한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A. 지난 2003년 개성공단 착공식 취재를 위해 생애 처음 방북했을 때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여대생의 신분이 궁금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아, 우리는 북한을 끊임없이 보도하면서 정작 북한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고 있구나” 그때부터 북한 공부를 시작했죠.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고요. 북한 사진을 챙겨보면서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1호 사진’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북한의 최고지도자 사진의 특성과 변화를 분석하며 북한의 이미지 정치를 연구하고 있어요. 지금은 <노동신문> PDF 파일을 매일매일 중국 특파원으로부터 받아 이를 확대해서 살펴보고 있어요. 한 달에 1~2번씩은 국립중앙도서관의 북한자료센터에 가서 실제 신문으로 배달된 <노동신문>을 훑어보며 사진 편집의 ‘맥락’를 살펴보기도 하고요.

Q. 가장 인상적으로 평가하는 북한 사진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지?

A. 김정은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달리 젊어서 이미지 정치를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 내부에는 김정은의 사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이른바 ‘카운터 프레임’도 존재하지 않죠.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면서 북한 <노동신문>은 현란해졌고요. 김정은의 출현 빈도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과도하게 늘었습니다. 하루에 많아야 1~2장씩 사진이 배출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20~30장의 사진을 쏟아내고 있거든요.

인터넷의 발달로 이미지는 이제 국경을 넘어 전달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정은의 얼굴은 이제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대상이죠. 세계가 북한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 역시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김정은은 사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요. 이전의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시각과 전략이 보이죠. 미국 대통령의 사진에 근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김정은의 사진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시대와는 다른 형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체 기념사진을 찍는 행사에서 김정은의 몸과 얼굴을 부각하고요. 계단에 도열한 인민들이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사진이 <노동신문> 1면에 게재되기도 하죠. 망원렌즈로 주인공에게만 포커스가 맞는 사진도 많이 올라오고 있고요.

인상 깊었던 것은 북한이 2014년 5월 <노동신문> 1면을 통해 김정은의 전용 비행기를 처음 공개한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에서는 김정은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북한 공군의 전투비행기술경기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비행기 외부의 계단을 따라 지면으로 내려오고 있었는데요. 비행기 몸통에는 북한의 국호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검정 글씨와 인공기 마크가 새겨져 있었고 꼬리 부분에는 최고지도자를 상징하는 왕별이 그려져 있었죠. 전문가들은 이 행사가 치러진 곳이 북한 평안남도 순천기지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평양에서 멀지도 않은 거리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는 김정은의 전용기가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그 후 김정은은 몇 차례 더 전용기 트랩에서 내려오는 모습과 레드카펫에서 열병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서방 세계의 퍼스트레이디 이미지와 유사한 부인 이설주가 동행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북한의 1호기는 각국 정상들이 타는 전용기의 겉모습과 형식상 유사해요. 전용기를 배경으로 레드카펫 좌우에 도열한 병사들의 열병의식을 받는 김정은의 모습은 정상회담을 위해 상대방 국가를 방문한 세계 각국 정상들의 이미지 같아 보입니다. 저는 김정은 사진의 촬영 기법이 서구의 정치 사진을 닮아가고, 전용기를 배경으로 찍는 이유가 김정은이 국제사회를 향해 자신이 ‘정상국가의 지도자’ 또는 ‘서양의 대통령급’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Q. 북한의 최고권력자가 등장하는 1호 사진이 어떻게 촬영되는지, 더불어 김일성 및 김정일 시대와 비교하여 기술적인 측면에서 현재 김정은 시대에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은 무엇인지?

A.  ‘누가 찍느냐’,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사진이 주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어요.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은 ‘1호 사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요. 북한의 ‘1호’를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은 선별된 ‘1호 사진가’들입니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사진을 촬영할 사진가를 북한 최고의 학부인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졸업생 중에서 선발했다는 기록도 있을 만큼 선발 과정에서는 당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됩니다. 김정은을 촬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동영상을 유심히 보며 파악해 봤더니 김정일을 전담하던 사진기자가 그대로 전담하고 있었어요. 김일성 사망 때와는 달리 이른바 기술 서기들은 교체 없이 가고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겠죠.

김정은 시대의 ‘1호 사진’은 테크닉 측면에서 몇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젊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각적으로 시선을 끌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우선 김정은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외국 기자들의 카메라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의 카메라도 김정은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굳이 건강 상태를 숨길 것도 없는 데다 활달한 표정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둘째, 김정은의 사진은 이제는 칼라 사진으로 게재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칼라로 싣고자 하는 욕망은 김일성 시대에 김정일의 지침을 통해서도 발표된 적이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2013년 7월 26일자 ‘전승 60돌 경축행사’ 사진 이후 김정은의 사진은 <노동신문>에서 칼라 사진으로만 실리고 있습니다. 2017년 10월 현재 김정은을 제외한 다른 정치인의 사진은 흑백으로 게재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셋째, 김정은을 부각시키는 앵글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김정일과 김일성의 경우 수십, 수백 명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에서 주인공은 화면 한가운데에 있지만 크기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죠. 하지만 김정은의 경우 주인공만 몸이 크게 보이는 경우도 많아요. 망원이나 표준 렌즈 대신에 광각 렌즈를 사용해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촬영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나마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북한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촬영법입니다. 게다가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을 흐리게 처리하는 아웃포커스 기법도 자주 사용되고 있죠.

넷째, 뒷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김정은 시대가 들어오면서 북한은 각종 건축물의 준공식에서 현지지도를 하는 김정은의 뒷모습과 건축물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진을 촬영해 보여줍니다. 군사 훈련을 참관하는 김정은의 뒷모습과 포신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는 무기들의 화염을 함께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장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죠.

Q. 김정은이 등장하는 사진을 통해 북한이 대내외에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하는지?

A.  현대 정치에서 대중매체를 통한 정치인의 이미지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요. 서울대학교 오창룡 박사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와 위기 리더십’이라는 논문에서 “과거와 달리 정치인 이미지는 핵심 관리 대상이 되었으며, 언론 및 여론에 대처하는 능력은 정치적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라고 말합니다. 나이 서른도 안 된 젊은 시기에 무한 권력을 이양 받은 김정은은 자신에게 권력을 넘긴 아버지 김정일과 이를 수용한 자신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목받아야 하고 또 주목받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대중매체를 100%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북한으로서는 권력의 정당화에 미디어와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1948년 정권이 수립된 후 특히 김정일이 북한 정치에 첫 발을 디딘 1967년 이후 45년 이상 북한의 선전 담당자들은 노하우를 축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죠. 김정은의 이미지는 고도로 숙련된, 그리고 좀처럼 교체되지 않는 프로페셔널에 의해 생산되어 세계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권좌에 오른 지 5년이 넘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자리를 지킬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는 권력을 넘겨받은 지 2년이 채 안된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하는 몇 장의 사진을 세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힘’을 과시했습니다. 굳이 보여줄 필요도 없고 여태껏 보여주지도 않았던 정치 엘리트의 숙청 장면을 공개한 것은 김정은의 이미지 정치가 이전의 독재자들과는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민생 현장을 둘러보는 애민 행보를 보여주면서 미국을 향해 전쟁 위협을 하는 사령관의 모습도 보여주죠. 북한이 보여주는 사진은 북한의 의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고 믿고 있어요.

북한이 내놓은 사진은 엄연한 북한의 현실입니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진단하고 읽어내는 데는 사진 뒤의 논리와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죠. 이제는 북한 사진을 읽으면서 사진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의 이미지 정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예요. 사진기자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사진을 잘 보면 우리가 모르는 북한의 숨겨진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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